[체육61 윤화자] 내 마음의 양식이 되어준 해외여행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1978년 늦은 봄으로 기억된다.
당시만 해도 관광 목적으로 여권을 신청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초청자가 경비를 부담한다는
조건이 붙은상용목적의 해외여행만이 가능했으며, 여권도 신청한 후 한 달 이상, 심지어 두 달 가까이
걸려서야 발급되곤 했었다.
요즘의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잘 이해가 안 가는 그런 암울한 시절의 일이었다. 어느 국제민간친선단체의
초청장을 입수(?)하여 힘들게 발급받은 여권으로 당시 외국항공사에 근무했던 남편과 함께 홍콩과 일본을
여행했던 것이 나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한 번 봇물이 터지고 나면 물이 쉽게 흐르듯이 그 후 남편이 해외의 모 국제기구로 전근함에 따라 해외 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해외여행을 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두 곳의 여행을 추억담 형식으로 적어보고자 한다.
한 곳은 1986년에 보름동안 다녀본 스페인, 특히 그 중에서도 안달루시아 지방이고, 또 한 곳은 1996년에 가 본
조그자카르타의 보로부두르 사원이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와 주변의 세고비아, 톨레도 등지를 둘러본 후
우리는 지브롤터 해협을 지척에 끼고 있는 말라가(Malaga)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 곳에서부터 북쪽의
바르셀로나까지 지중해를 끼고 펼쳐지는 지방,푸르고 맑은 하늘과 하얀 집들 그리고 코발트색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지방이 바로 안달루시아 지방이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지중해 연안을 'Costa del Sol(태양의 해변)'이라고 부르는데, 프랑스 남부의 푸에르타솔과
함께 유럽 최고의 휴양지로 꼽힌다. 우리가 갔을 때가 11월이었는데도 그 곳은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 때문인지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스페인 내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매력이 넘치는 지역으로 다양한 민속춤과 역사 그리고 약 8백년 동안 그 지방을 지배한 아랍인들이 남겨놓은
아랍문화와 관련된 유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볼거리가 너무도 많았다.
안달루시아 지방이 끝나는 스페인 동북부에는 바로 몇 년 전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가 자리잡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올림픽 이외에도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화가 '피카소'의
고향이기도 하고, 또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그의 생애를
통해 수많은 불후의 건축물들을 지은 곳이기도 하다.
가우디가 남긴 아름다운 건축물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 바로 '성가족교회(Templo de la Sagrada Familia)
이다.
지금부터 1백20년 전인 1882년에 가우디가 첫 삽을 뜨면서 시작된 이 성당의 공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
1백년 후에나 완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건축물 하나에 쏟는 그들의 정성과 혼이 마음 속에
진한 감동을 던져주었다. 비록 공사가 진행 중이긴 했어도 겉모양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었는데 그 기괴하리
만큼 아름다운 모습에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빨리빨리'라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특이한 행동양식과 의식구조가 바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이어진 것을 생각하면, 바르셀로나의
성가족교회는 지금도 내 머릿 곳에 많은 상념을 남겨주고 있다. 먼 나라 스페인은 제쳐두고 가까운 싱가포르의
경우만 생각해봐도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제 나라 안에서는 온갖 부실공사를 해 온 우리의 건설회사들이
싱가포르에서는 칭찬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것은 바로 그 공사와 관련된 철저한 계획과 감리,준공 및 사후관리에 있어서 싱가포르 정부와 공무원들이
갖고 있는 의식구조와 관리체제 때문이라고 본다.나는 남편을 따라 싱가포르에서 8년간 살았다. 그들은 하나의
건물을 지을 때 사전에 배를 타고 가까운 바다로 나가 그 건물이 도시 전체의 스카이라인에 미치는 미적
요소까지 심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전율을 느낀 적도 있었다.
바르셀로나 중심가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도 또 하나의 볼거리. 우리는 피카소 하면 이상하고 변태적인 화풍만을
머릿 속에 떠올리는데, 막상 그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청년 시절 초기 작품들을 보면 너무나 친근한(?)
구상화들이 많아서 그가 처음부터 추상화 쪽으로 흘렀던 것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바르셀로나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몬세라트(Montserrat)산. 바르셀로나에서 북서부 쪽으로
약 3시간 정도 가면 험준한 톱니 모양의 산이 나타나는데, 그 사이에 깊은 협곡들이 펼쳐지는 풍광은 가히
장관이었다.
이 산의 계곡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산타마리아 데 몬세라트'라는 베네딕트파 수도원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다. 이 수도원에 도착한 것은 거의 정오였는데, 마침 운이 좋아 그 수도원 안에서
공연되는 소년합창단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소년합창단의 그레고리오풍 성가는 너무나 청아한 음색으로 마치 하늘의
소리처럼 아름답게 울려 퍼졌으며, 내 주변에 앉아 그 합창단의 노래를 듣던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닦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깊은 감명을 주었던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
스페인 다음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곳이 조그자카르타에 있는 '보로부두르(Borobudur)'사원이다.
조그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약 30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옛날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 임시 수도로 사용했던 회교(이슬람교) 도시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백88년 전 당시 그 곳을 식민통치하고 있던 영국 사람들이 적도하의 밀림 속에 숨어 있는 이
거대한 사원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사원이 지어진 시기는 서기 8백년 전후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러니
대략 1천년이나 되는 세월의 잠에서 깨어나 그 모습을 드러낸 보로부두르는 처음에 황폐하고 무너지고 파손된
상태였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복원운동을 시작해 세계 각국에 협조를 구하고, 1973년부터 거액의 공사비를
투입해 10년 동안 대대적인 복원공사가 이루어진 끝에 마침내 1985년 지금의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 사원은 한 변의 길이가 120m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정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위에서 4층구조로
이루어진 회랑이 석축되어 있으며 총 회랑의 길이는 5km에 달하고 있다. 회랑 벽에는 석가모니의 일생과 불전의
내용이 부조로 석각되어 있는데 대승불교의 교리를 완벽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제 4회랑 윗부분에 4백32점의
등신대 좌불상이 있으며, 그 위에 3층의 원단이 구축되어 있고, 종 모양의 '스뚜빠' 속에는 72개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스뚜빠'에는 마름모 모양의 구멍들이 있는데, 손을 넣어 불상이 만져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나도 손을 집어넣고 소원을 빌어보았다. 우리를 안내한 인도네시아인 안내자는 이슬람교인이었는데도 그
회랑에 새겨진 석가모니의 일생과 불교 철학을 너무나 진지하게 설명해주어 그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글거리는 적도의 밀림 속에 위치한 이 거대한 사원은, 그래서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함께
오늘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흔히 우리나라를 '종교천국'이라고 부른다. 종교의 자유도 그러하거니와 일단 믿게 되면 그 믿음의 심도가
세계 여타 나라 사람들의 신앙의 깊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라 한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내가 다녀본 세계의 많은 곳 중에서 유독 이 두 곳, 몬세라트 산정의 수도원과
조그자카르타의 보로부두르 사원은 오랫동안 내 머리속에 깊은 상념을 드리우고 있다. 그 불가사의한 기억의
잔영(殘影)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들은 해외여행은 대부분 이름있는 관광지에서 증명사진이나 찍고
쇼핑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래서 나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여행은 하나의 뚜렷한 목적, 즉 테마를 갖고 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런 테마여행은 우리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양식이 될 수 있으니..
=출처 : 수지소프트21 애독자스페셜(2003년 4월호)
윤화자 동문(경희체육학과)
위 글은 경희대 분당수지동문회의 여성소모임인"경희워킹클럽"에서
만나 뵌 윤화자동문(경희대체육학과 무용학부61학번)께서 잡지에
기고하셨던 해외여행기입니다.
걷기클럽 행사 때 해외여행에 대한 좋은얘기를 듣던 중 해외여행에 대한
잡지기고글이 있으시다는 말씀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부탁을 드렸습니다.
항상 소녀같으시고 열정에 넘치는 선배님 덕분에 저희 "경희워킹클럽"은
언제나 활기와 웃음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습니다.
"깍두기 왕언니!~항상 건강하세요^-^*
(분당수지동문회 경희워킹클럽 총무-생물83 최경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