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학생 장학금’이란 8글자
경희와 인연 없던, 동대문 거주 90대 어르신 현금으로 5천만 원 기부
“경제적 여건 어려운 학생들 공부 돕고 싶어”
봄과 여름이 교차하던 5월 말, 90대의 어르신이 서울캠퍼스를 찾았다. 등에는 배낭을 멨고, 햇볕을 가릴 모자를 푹 눌러썼다.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걷던 어르신은 본관 1층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예고한 바는 없었지만, 그에겐 뜻깊은 방문이었다. 대외협력처 직원들이 그를 만났는데, 노환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대화가 쉽지 않았다. 그의 방문 목적은 명확했다. 그동안 마음 졸였던 일을 해결하는 날이었다.
대외협력처 라운지 의자에 앉은 어르신은 배낭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 속에는 신문지로 정성스럽게 싼 5만 원권 1천 장이 있었다. 경희와는 아무 인연이 없던 어르신의 행동에 대외협력처 직원들도 놀랐다. 어르신은 “그동안 돈을 집에 둬 불안했어. 이제 마음 놓고 있을 수 있겠어”라며 후련한 표정으로 기부 의사를 밝혔다.
절약해 모든 돈 ‘어려운 학생 장학금’으로
어르신은 기부 약정서 상단의 기부 목적을 적는 공간에 ‘어려운 학생 장학금’이라는 8글자를 꾹꾹 눌러서 썼다. 그는 “나는 많이 배우질 못해서 한이 있었어. 아끼며 모은 돈인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데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라며 기부의 이유를 밝혔다. 이번 기부도 자녀 한 명에게만 살짝 이야기했다.
기부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길 바랐다. 대외협력처의 예우품, 공식 행사, 사진 촬영 등을 모두 사양했다. 어르신은 “동대문구에 살면서 기부할 대상을 고민했다. 높은 곳, 정확하게 기부금을 써줄 곳을 찾았다”라면서 “기부금이 공정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하고 경희대로 왔다”라며 경희대를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긴 시간 소중히 모은 돈을 내주면서도 어르신은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더 모아 드리고 싶었다. 나이가 많아, 미리 갖고 왔다”라고 말했다. 오전 11시에 본관에 도착했던 어르신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캠퍼스를 떠났다. 그는 “앞으로 연락할 일 없을 거다”라면서 덤덤히 발길을 옮겼다.
경희는 기부자의 의견을 반영해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어르신의 기부에는 단순한 후원을 넘어 교육의 기회 확장이란 진심 어린 뜻이 담겼다. 대외협력처는 기부자의 뜻을 소중히 새겨, 장학금 지급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글 정민재 ddubi17@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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