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만 되면 5남매에게 손수 뜨개질한 옷 입혀주셨던 어머니-이영희

경희대학교 총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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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만 되면 5남매에게 손수 뜨개질한 옷 입혀주셨던 어머니-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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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그립습니다게재 일자 : 2021년 12월 16일(木)
겨울만 되면 5남매에게 손수 뜨개질한 옷 입혀주셨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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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김향회(1926∼1999)

내 친정어머니 김향회 여사님. 요즘 서울은 많이 추운데, 하늘 위 계신 그곳은 춥지 않으신지요. 충남 조치원에 있는 안동 김씨 집안에서 가난한 8남매 중 맏딸로 태어난 당신은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당하고 일본식 국민학교만 겨우 나오셨다지요. 어린 시절부터 동생들 포대기에 업어서 키우는 데에 청춘을 다 쓰셨던 당신을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터질 것만 같습니다. 그 엄혹하던 일제강점기 정신대에 위안부로 ‘처녀 공출’당할까 서울 영등포에 살던 아버지에게 얼굴 한 번 못 보고 시집오셨다는 당신.

서울로 와서도 3남 2녀 낳고 키우며 고생만 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철없는 막내딸이었던 저는 가슴이 아픕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어머니는 겨울이면 5남매 각자의 개성에 맞게 손수 뜨개질한 옷을 만들어 입히셨지요. 특히 막내였던 제 옷차림에 신경을 쓰시곤 했는데, 그 시절 영등포 ‘팝 의상실’이라는 곳에서 고급 옷감을 직접 골라 미니스커트 세일러복을 맞춰 입혀주셨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초등학생 시절, 공부 잘하는 예쁜 막내딸 보겠다고 학교 운동회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당산국민학교 운동장에 오셔서는 “우리 영희 잘 뛴다”고 힘줘 외치셨던 우리 어머니. 환하게 박수 치며 웃곤 하셨죠. 그러나 당시 철부지 늦둥이였던 저는 친구 엄마들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당신이 부끄러워서 친구들 속에 숨으며 모르는 척했습니다. 당신은 그날 일을 너그러이 눈감아주셨겠지만, 저는 친구들 무리에 얼굴을 묻었던 그날을 지금도 후회합니다.

어릴 적 동네 교회에 다닐 때 성악 레슨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돈 많이 들어서 안 될 것 같다”며 “공부나 열심히 해서 교사가 되라”고 하셨지요. 재수는 안 되니 한 번에 합격해야 대학을 보내주겠다던 어머니,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 마음이 어땠을지 짠해집니다. 경희대에 합격했을 때 참 많이 기뻐하셨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막내딸 대학 학비 내야 한다고 허리띠 조르고 세입자 월세를 받아서 열심히 등록금을 대주셨던 그 고마움을 어찌 잊을까요. 살림의 여왕이셨던 당신이 장 담그는 날, 김장하는 날은 영등포 온 동네가 잔칫날처럼 떠들썩했지요.

그래도 그 시절 그때를 떠올리면 오래전 떠나보낸 당신의 살 내음이 생각나고 따뜻했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머니 당신에게 받았던 사랑은 지금도 제 가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나무들이 무성한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 맺듯, 당신이 뿌린 토양에 뿌리내리고 오늘까지 살아가고 있어요. 항상 내 편이 돼주셨던 어머니. 당신의 강을 따라 걷다 보니 저도 어느새 두 딸의 엄마가 돼 있더군요. 눈부시게 자란 나의 두 딸에게 내가 어머니 당신을 기억하듯,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강물 같은 존재로 제 마음속에 오늘도 흐르고 계십니다.

막내딸 이영희
1 Comments
총동문회 2021.12.16 13:03  
문화일보 [그립습니다}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애틋한 사연이라 읽다보니 '경희대 합격'이라는 문구가 보여 동문이라는 생각에 소개합니다.
'영희와 철수!' 많이 들어 본 이름이듯이 '이영희'라는 이름을 가지신 동문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70여명이나 계셔서 글쓴이가 무슨 학과 몇 학번인지 특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점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사무국장 김용석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