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청년재단 이사장 정범구 동문(정외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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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청년재단 이사장 정범구 동문(정외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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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범구 청년재단 이사장 “‘도와달라’ 한마디에 운명이라 생각...”
윤철순 기자 승인 2021.07.28 13:55


DJ 직접 권유 거절 못해···초선 불구 불출마 결심
가까워지며 변화하기 출간···대사 귀임 ‘출장보고서’
평화공존 모색할 때···통일부폐지 주장은 포퓰리즘
청년재단 이사장, 새로운 도전···청년목소리 허브로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15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97년은 역대 최초로 대선후보 간 방송 3사 합동토론회가 열린 해였다. 첫 TV 토론이라 그래서였는지 당시 시청률 50%에 육박하던 드라마 ‘용의 눈물’에 버금갈 정도로 방송은 세간의 주목을 끌었었다.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의 날 선 신경전이 재미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멀끔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토론을 이끌던 사회자가 눈에 들어왔다. 안정감 있는 진행으로 당대 거물들을 요리하던 그의 모습에 시선이 꽂힌 거였다.

후보들의 공약보다 그의 이름 석 자가 더 기억에 남았던 건 순전히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 그를 다시 만난 곳은 ‘새천년민주당’ 여의도 당사였다. 정확히는 만났다기보다 당사를 출입하며 한두 번 스친 거였다.

2000년 총선 전후 그렇게 ‘스쳤던’ 그는 그해 4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 갑(현 일산동구) 지역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당시 현역이었던 3선의 자유민주연합 이택석과 한나라당 전국구(비례) 오양순 후보를 한 방에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그렇게 잊히듯, 시간이 무심히 흐른 지난 2018년. 새해 벽두에 올라온 기사 한 꼭지가 그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文정부 첫 재외공관장 인사, 주독일대사...” ‘특임공관장’에 발탁됐다는 그 이름은 또 그렇게 기억 속에 묻혔다.

스무 해 이상 개인적 기억 한편에 머물러 있던 그를 이렇게 만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순전히 우연이라 하는 게 옳겠다. 며칠 전 그의 출판기념회 소식을 건네 접했을 때만 해도 지금까지처럼 그러려니 했으니까.

3년의 대사 임직을 마친 후 귀임하자마자 ‘청년재단’ 이사장으로 변신한 정범구(67) 전 독일대사를 청계천 옆 청년재단 이사장실에서 23일 만났다.

-최근 독일(대사) 생활을 정리한 책을 내셨어요.
"책머리에도 언급했지만, 특임공관장 발령 당시 두 가지 평이 있었어요. 독일 전문가라는 것과 낙하산 인사라는. 그런 부담을 안고 현지로 갔지요. 사실 독일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외교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두렵기도 했거든요. 반면, 부임하면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많았어요.”

-어떤 게 궁금했나요?
“대사(외교관)들은 어떤 일과 역할들을 하는지, 해외에서 사건이 생기면 외교관들이 욕을 많이 먹는데 왜 그런 건지. 또 영화 같은 걸 보면 외교관이 멋있게 나오잖아요. 그런 것들이 실제론 어떤지 그런 여러 가지가 궁금했죠.”

-대사직을 직접 수행해보니 어떻던가요?
“대사관에선 매주 월요일 아침 전체회의를 해요. 첫 보고사항이 주말 당직근무 때 접수된 사건들인데, 토요일 밤 10시쯤 베를린으로 유학 온 딸이 몇 시간째 연락이 안 된다며 확인 좀 해달라는 부모가 한국에서 전화했어요. 그 전화를 받은 당직자가 할 수 없이 방문을 위해 택시를 불렀는데, 조금 지나서 딸과 통화가 됐다고 연락해 왔답니다. 이외에도 옆집에 사는 외국인이 자기가 오갈 때마다 째려봐서 위협을 느끼니 신변 보호를 해달라는 민원부터 여행 가방을 분실했다는 하소연까지 재외공관 민원업무는 실로 엄청 늘었어요. 연간 3천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해외 관광을 나오니까요. 턱시도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연회장을 유영하는 화려한 외교관은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있을법한 장면일 뿐이더라고요. 막상 해보니 영업직 종사자들의 고충을 절절히 느끼겠더라고요. 하하.”

-대사관의 여러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거네요.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것보다는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교무대나 직업의 세계 같은 것에 대해 전해드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외교가 특정 계층의 전유물처럼 인식되고 있는데, 이걸 국민들과 공유해야겠다 이런 생각이요. 그것도 외교공무원으로서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외교활동도 공유재산이니까요. 일부 보안이나 국가기밀 같은 건 안 되겠지만요. 또 대사업무가 바쁘니까 그때마다 메모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정리하려고 해도 안될 테니 기록의 의미로도 쓴 거죠. 특히 특임공관장이란 부담 때문에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도 있었고요. 타국의 대사로 가서 3년씩 있다 오면 그 나라의 내밀한 정보를 최대한 파악해오는 게 외교관이고 정보원 역할이거든요. 책도 출장보고서라 생각하고 그런 차원에서 내게 됐어요.”

그는 2018년 1월부터 3년간의 대사활동 중 벌어진 일상을 페이스북에 꼼꼼히 올렸다. 지난 12일 그렇게 기록한 이야기 100여 편을 수정, 보완해 <가까워지며 변화하기>란 도서로 출간했다. 책엔 독일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는 물론 전 세계 외교관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눴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외교 공관과 일선의 이야기들을 경쾌하게 풀어내 흥미를 유발한다. 책 제목인 ‘가까워지며 변화하기’는 동방정책으로 동서독 화해를 이끌어 낸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전 총리의 핵심 구호다. 독일의 대표적 보수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는 지난 2018년 9월 19일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무개차에 올라 활짝 웃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진을 1면 톱에 배치하며 ‘가까워지며 변화하기(Wandel durch Annäherung)’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책에 ‘벤츠 탈 줄 알았는데 관용차가 국산...’이라는 내용이 있어요.
“한국에서 벤츠를 못 타봐서 거기 가면 당연히 ‘벤츠 타겠지’란 생각을 했지요. 하하. 독일이니까. 대사관 차량이 다섯 대 있는데, 중형버스 한 대만 벤츠고 나머진 전부 국산 차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중요한 게 베를린 주요국 대사들 중 자국 브랜드 차량을 갖고 있는 나라 대사들은 자기들 나라에서 만드는 차를 탑니다. 프랑스 대사는 푸조를 타고, 일본은 렉서스, 이탈리아도 그렇고. 우리는 에쿠스를 관용차로 쓰는 거죠. 반면에 중국이나 러시아 대사는 벤츠를 이용하더라고요. 그만큼 자국 브랜드를 생산하는 나라가 얼마 안 됩니다. 에쿠스를 타고 베를린에 일 보러 다니면 지나가는 독일 사람들이 다 쳐다봐요. 그만큼 세일즈도 충분히 됩니다. 하하.”

-유학 갔던 나라 대사로 갔으니 고향 다녀온 기분 같았겠어요.
“그런 기분으로 갔던 건 맞아요. 유학 마치고 돌아온 후 28년 만에 갔으니까요. 근 30년 만에 간 건데, 독일도 정말 많이 변했더라고요. 독일 쪽에서 생각하는 한국에 대한 위상도 과거와 많이 달라져 있었고요. 개인적으론 달라진 한국의 모습을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었죠. 말씀처럼 고향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고요.”

◇새로운 도전, 청년재단 이사장

-그렇게 3년의 대사 생활 마치자마자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어요.
“귀국해서도 여러 대외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관계와 관련 있는 채널을 통해 지금 맡게 된 재단이 표류하고 있다는 얘길 듣게 됐고, 이걸 좀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그런 데다 청년 문제가 상당한 이슈로 떠오르기도 해서 고민을 했죠. 사실 첨엔 약간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사회를 위해 여러 활동을 해 왔는데, ‘만년’에 정말 의미 있는 분야에서 봉사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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