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김영식-공정성과 전문성의 관계
▲김영식(작곡68)
한국음악평론가협회 회장
총동문회이사, 성북강북동문회장
“우주의 모든 근원은 음악이다.” 라고 근대의 모 철학가는 말했듯이 우리는 항상 음악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음악은 시간적 예술이며 모든 주변의 소리는 음악의 재료로 쓰일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는 소리의 구성으로 음악 예술이 형성되는 것이다. 스포츠는 시간의 다툼이지만 음악예술에서의 시간의 관렴은 차이가 있다. 올림픽 경기는 1/1000초 차이로 승리를 판정하지만 음악은 느리고 빠른 융합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은 세계 인류의 화합과 평화의 제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마다 공정하지 못한 오심과 전문성의 결여에서 오는 승패가 엇갈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 있어 국가 간의 신뢰성을 잃게 하고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펜싱국가대표 신아람의 준결승전 도중 계측기의 1초의 멈춤으로 인한 피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빈축을 사는 결과를 초래 하였다.
올림픽은 최첨단의 과학이 동원되고 고도의 예술이 동원되는 장소이다. 또한 분야에 따라 전문 인력이 동원되고 활동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날 펜싱계측에는 14세의 자원 봉사자 소녀가 담당 했다니 이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처사이며 문명대국으로서의 상식은 아니라고 본다.
관중들도 오심에 불만을 품고 신아람에게 재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펜싱무대 경기장을 떠나지 말라는 “stay here" 를 외치며 박수를 보냈다. 그는 한 시간 이상을 경기장에 주저앉아 억울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결과를 기다렸지만 끝내 심판은 번복 되지 않았다.
수영의 박태환도 오심으로 인한 예선탈락(400m)에서 국제수영연맹에 두 번의 상소 결과 심판이 번복된 사례가 있어 런던 올림픽 심판의 신뢰성을 잃게 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우리는 1/1000 초를 다투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한국의 이상화는 지난 동계올림픽 스케이팅 500m 2차 스피드 레이스 1위 결정전에서 재심결과 0.001초 차이로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인간의 생활은 시대에 따라 변모, 발전해 왔으며 복합 다양해지고 있다. 모든 분야는 이에 병행하며 발전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모든 분야가 전문화시대가 되었으며 최첨단의 자동화시대에 살면서 로봇이 인간을 돌보며 치료하는 세상에 이르게 되었다.
베토벤(L.v.Beethoven 1770-1827)시대에는 작곡가라 하면 피아노를 비롯해서 악기를 잘 연주해야 음악가로서 인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20세기부터는 모든 분야가 전문화시대로 변화, 발전되어 작곡, 연주, 평론 등의 한 분야만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종사하면 음악가로서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작곡 연주에 비해 평론분야는 양적, 질적으로 활발하지 못한 실정이다.
그 원인의 첫째는 대학에서 평론을 전공하는 학과가 개설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성의 결여에서 오는 부작용이다. 국내에서는 평론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는 전문 과정이 상설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성의 결여는 품위와 공정성을 상실하게 되며 오히려 음악문화발전에 저해가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악기론과 관현악법을 모르고 교향곡을 쓸 수 없으며 음악사를 모르고 바로크음악과 현대음악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나타형식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협주곡 연주회 평을 쓸 수 있으며 베토벤 음악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베토벤 음악의 연주회 평을 올바르게 쓸 수 있단 말인가?
예술의 평가는 주관적인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다. 1/1000초까지 다루는 계측기에 의한 평가와 비교하면 더욱 깊고 넓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평가이다. 그래서 공정성과 전문성은 서로 병행해서 발전하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편중적인 오심이나 불공정한 평가로 인해 많은 세월동안 흘린 피와 땀, 눈물의 양만큼에 비해 좋지 않은 결과로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공정성과 전문성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제 역할을 다 할 때 국가가 발전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