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다시 감수성의 혁명을


동문특별강좌 김종회-다시 감수성의 혁명을

작성일 2012-02-09
▲김종회(국문75, 모교 국문과 교수)

춥다. 이 추운 겨울날 생각의 꼬리에 붙어다니는 시 한 편.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조집 <청구영언>에 수록되어 있는 황진이의 시조다. 연모의 정과 기발한 착상이 어우러져 빼어난 표현의 묘미를 얻었다. 어떻게 겨울밤의 한 허리를 베어낼 요량을 했을까.

겨울 지나 봄이 오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필자는 새롭게 만난 학생들에게 창밖에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는다. 하늘, 나무, 건물, 사람들…. 내가 원하는 대답은 없다. 아니, 거기 마른 나뭇가지에 파릇파릇 새 움을 돋게 하는 연초록 봄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어느새 우리는 회색 도시의 그늘에서 기계화된 일상의 부품으로 전락해, 자유로운 상상력의 날개나 예민한 감수성의 촉수를 잃어버렸다.


그런 점에서 수백년 전의 황진이는, 오늘날 메마른 심성과 즉물적 사고방식에 젖은 후대들에게 효력 있는 교사이다. 조선 중기의 기녀 신분이면 너무도 많은 제약이 뒤따랐겠지만, 당대의 사대부들을 오연히 바라보며 당당하게 제 길을 간 인물이다. 그 독자행의 결기는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며, 그의 생애 전반을 지배하는 내공, 곧 고양된 감수성과 활달한 상상력의 부양을 받은 터였다. 지금 우리 세대는 그것을 놓쳤다.

우리 사회의 어느 부면을 둘러보아도, 논리적 판단으로는 새 소망을 찾기가 어렵다. 기존의 사회 질서를 대신할 새로운 도덕률이 뿌리 내리지 못했으며, 정치와 경제는 함께 곤두박질이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우왕좌왕이다. 이를테면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지경에 이르렀으니, 황진이식 심행처(心行處)를 찾아보는 것이 우선은 유일한 출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이 어렵고 또 많이 달라졌다. 1960년대 전란의 질곡을 벗어나면서 김승옥이 쓴 <무진기행> 같은 소설들이 ‘감수성의 혁명’으로 불렸던 것은, 생존의 문제로부터 심경의 문제로 관심의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지영씨가 소설로 쓴 <도가니>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영화로 만들어진 후 하나의 사회현상에 도달한 것은, 영상문화의 시대에 상상력의 공감을 촉발하는 방식도 나날이 과거와 달라진다는 뜻이다.

일찍이 헤르만 헤세는 <지성과 사랑>에서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탐색했고, 발자크는 감수성이 강한 자가 사리분별이 깊다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헐벗은 겨울나무에서 울울창창 푸른 잎을 꿈꾸는 일탈의 상상력 없이는, 어떤 지식이나 제도도 고착과 퇴행의 관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새로운 시대정신, 새로운 세대가 반응하는 공감대는 이성적 논리에 있지 않고 감성적 체현에 있다.

다시 겨울 추위로 돌아가 보자. ‘어린 왕자’가 불시착한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 허약한 입성으로도 매서운 동장군을 이길 수 있는 건 곧 봄이 오리라는 예단의 확신 때문이다. 그래서 셀리는 시 ‘서풍부’에서 “계절의 나팔소리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카뮈는 수필 ‘여름’에서 “이 겨울 한복판에서 결국 나의 가슴속에 불굴의 여름이 있음을 안다”고 선언했다.

눈물이 증발하고 가슴이 삭막한 오늘의 세태를 치유할 힘은 먼 곳에 있지 않고 힘겨운 자리에 있지도 않다. 마음의 빛깔을 바꾸면 지옥도 천국이 되는 명료한 이치, 곧 각자의 내부에서 새로운 감수성의 변화와 혁명을 도모할 때이다. 그렇게 자신이 선 자리를 훈훈하게 데움으로써 그 온기로 곁의 사람들 언 손을 녹일 수 있다면, 이는 동지섣달 긴 추위의 한 허리를 값있게 베어내는 일이 되지 않을까.

억압의 시대를 불우한 환경에서 살았던 한 여성 시인은, 그 외형적 조건을 압도하는 정신주의의 개가를 시적 감성으로 종결했다. 글쎄, 이 짧은 추종의 글이 그 흉내라도 낼 수 있으면 다행이겠다.

[2012.1.25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