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최태섭-‘김정일 카섹스’ 발언이 찬양·고무죄?
▲최태섭(본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영화 <부러진 화살>이 화제다. 이른바 ‘석궁 테러’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순식간에 100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였다.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사건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 문제에 관해서는 트위터 광야에서 외치는 진중권 선생의 ‘이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화는 영화고 재판은 재판이니, 영화를 보고 재판에 대해서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다. <도가니>나 <나는 꼼수다>처럼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재구성’들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지만, 진실을 찾는 과정은 영화 관람이나 라디오 청취보다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러다간 앞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전 국민이 영화를 한 편씩 찍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사법부의 진짜 문제들은 따로 있다. 사시패스 같은 위대한 과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내 낮은 지능으로 생각해도, 오늘날의 사법부는 군사독재 이후로 최대의 정당성 위기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사권 조정을 두고 벌어지는 검경 간의 힘 싸움, 의혹을 만들어 내는 권력형 비리수사, 법원의 납득가지 않는 판결들과 줄서기, 그리고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의 실적경쟁과 과잉충성 때문에 벌어지는 촌극들이 그렇다. <부러진 화살> 소동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법원에 그다지 동정이 가지 않는 것은 음모론과 정당한 문제제기의 구분이 흐려진 것에 사법부의 수많은 실책들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당 당원이자, 사진사인 박정근씨는 지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람이 한 일은 북한에서 대남 선전용으로 만든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고, 그 트윗들에 이런저런 사족을 달아서 리트윗을 한 것이다. 그에게 부여된 죄목은 국가보안법 중 ‘찬양·고무죄’와 ‘이적표현물 작성 및 반포’ 같은 죄목이었다. 그런데 그가 단 사족들이라는 것이 ‘평양냉면’을 찬양하거나, 평양에서 출시되었다는 신차를 자신에게 선물해 달라고 하거나, 김정은의 세습을 비꼬는 의미로 아버지에게 사진관을 물려받은 자신을 ‘청년대장’이라고 칭하거나 한 것 등등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백미는 ‘김정일 카섹스’라는 의미 불명의 한마디다.
대체 어떻게 하면 김정일 카섹스 같은 유의 발언을 북한에 대한 찬양과 고무로 해석할 수 있을까? 남한에서 법적으로 카섹스를 금지하는 것도 아니고, 남한이 북한보다 자가용이 적은 것도 아니고, 카섹스가 북한식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공식적인 체위도 아닌데 말이다. 혹시 노구의 몸으로도 카섹스를 즐기는 김정일의 정력을 연상하게 해서인가? 아니면 자동차도 없이 빈곤하게 살아가는 북한의 인민들의 실상을 은폐하기 때문에? 만약 이게 문제라면 과거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라는 북한가요를 듣고 낄낄거리며 ‘딴지일보’에 썼던 내 기사도 찬양과 고무다. 아니 그에 앞서 빈곤과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체제를 언제든지 남침이 가능한 위협적인 체제로 묘사하고 있는 보수언론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진심으로 이런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한 나라의 사법부에 있다면 그건 그 나라의 수치다. 아니 혹여 이런 판단을 한 사람이 진짜 간첩이어서 수령님과 장군님을 비웃는 것에 참지 못해 비분강개했다는 설은 어떤가? 둘 다 아니라도 별다를 것 없다. 한 나라의 사법부가 국민을 괴롭히며 ‘일진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가 5명의 간첩단에 의해 ‘야권통합’이 좌지우지되고, 박정근의 리트윗에 의해 붕괴하는 체제인가? 일일 방문자 수 10명 이하의 내 블로그만도 못한 나라라면 차라리 일찌감치 망하는 게 낫다. 지금 누가 국가를 우습게 만드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농담을 변명하는 것은 농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박정근인가? 아니면 그 농담을 다큐멘터리로 받아치며 국민을 괴롭히는 사법부인가?
[2012.2.2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