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MB에 필요한 건 유종의 미


동문특별강좌 임성호-MB에 필요한 건 유종의 미

작성일 2012-01-27
▲임성호(모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의 해를 맞아 최고위 정치인인 현직 대통령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면? 이런 아이러니한 현상이 올 한 해 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된다면 대통령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해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가 정치의 해가 될 것이라는 데엔 별 이의를 달기 힘들다. 4월에 국회의원선거, 12월에 대통령선거가 초미의 관심 속에 열릴 것이다. 양 선거를 앞두곤 정당 공천으로 떠들썩할 것이다. 공천이 완전국민경선으로 결정될지 아직 확실치 않지만, 밀실 공천을 허용하지 않는 요즘의 사회분위기상 각 당 공천은 많은 사람의 참여 속에서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또 현 정당체제에 대한 불신이 워낙 깊은 탓에 일련의 합당, 분당, 창당, 연대 등이 이어지며 지각변동이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기에 안철수씨 같은 대중적 인기가 있는 비정당인이나 지명도 높은 시민단체 인사마저 출마하거나 정치적 목소리를 높일 경우 사회의 관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은 정치개혁을 새해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각종 정치 사안으로 전국이 들끓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뒷전에 머무르며 존재감을 내지 못할 것 같다. 이미 정치담론의 중심엔 박근혜, 한나라당비대위, 안철수, 박원순, 문재인 등의 고유명사가 자리 잡았고 이명박이란 이름은 별로 거론되지 않고 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수록, 한나라당은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과 거리를 두며 비판기조를 택할 것이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이 대통령의 실정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쓰겠지만, 대권 경쟁자인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반(反)MB 이미지를 띠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 공격에 모든 것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경계대상 1호는 박 위원장이지 이 대통령이 아니다. 이래저래 이 대통령은 정치무대 바깥, 대중적 관심 바깥에 머물게 되고 정치가 사회의제로 뜰수록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임기 말 대통령의 이런 신세는 구조적으로 초래되는 면이 있다. 재선이 불가능한 단임제에서 임기 말 권력누수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올해엔 국회의원선거가 대선 8개월 전에 실시된다는 선거주기도 대통령의 정치적 실종을 앞당겼다. 그러나 구조적 원인보다는 이 대통령의 정치리더십 부재라는 개인적 원인이 더 커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CEO대통령,’ ‘탈여의도’ 등의 모토 아래 정치과정을 우회하고 일방적 국정운영을 지향했다. 그 때문에 정치적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증폭시켰다는 평을 들었다.

그렇다고 구조 탓, 리더십 탓을 하며 대통령의 정치적 식물화를 받아들이기엔 중요 현안이 너무 산적해 있다. 정치개혁은 남들에게 맡긴다 해도 경제·복지·대북관계·무역·교육 등은 대통령이 적극 나서야 한다.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해 원만한 해법을 찾는 대통령의 정치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분야다.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관료가 아니라 국가를 이끄는 최고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정치적으로 실종돼 국정 공백이 발생하고 정부가 표류한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과거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말에 복지·기업규제·정치자금·무역 분야에서 큰 정책성과를 거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당시 지지도가 높지 않았지만 정치무대의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조정에 힘쓰며 대통령으로서의 책무에 충실했던 덕이다. 명색이 최고 정치인인 대통령이 말년이라고 정치적 상실감에 빠져 국정 난제는 방치하고 떠오르는 정치주역의 연기를 지켜보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시작이 정치인답지 못했더라도 마지막엔 정치인다운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하지 않을까?

[2012. 1. 3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