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대학을 위한 변명


동문특별강좌 이진곤-대학을 위한 변명

작성일 2011-11-16
▲이진곤(정외69, 국민일보 논설고문, 총동문회 사무총장)

대학 수난의 시절이다. 반값 등록금 열풍이 거세게 일더니 감사원의 ‘대학 재정운용 실태 감사’가 두어 달이나 계속됐다. 처음으로 받는 감사원 감사여서 더 그랬겠지만 많든 적든 안 걸린 대학이 없었다고 알려졌다. 이를 빌미로 퇴출당하는 대학도 없지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어깨너머로 스쳐보고, 귓전으로 엿듣는 게 있어서 하는 말이지만, 한국의 대학들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국공립 대학들이야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으니 규모 있게 운영만 잘하면 된다. 힘겨운 측은 사립대학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렇다 할 배경을 갖지 못했다. 그러니 재정의 큰 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미래 사회의 산실이자 둥지

애초에 교육은 국가사업이다. 그런데 육영에 뜻을 둔 개인들에게 대학 교육의 큰 몫을 떠넘겼다. 국가가 등록금 의존형 대학을 만든 셈이다. 사학은 유구한 전통을 가진 것이니 그 자체는 오히려 바람직하다. 그러나 등록금에 대한 비난까지 대학이 전적으로 감당하게 하는 것은 옳은 처사일 수 없다.

대학의 수난은 이뿐이 아니다. 꼬투리만 잡히면 언론들이 대학 모멸감 안기기 경쟁을 벌인다. 대학의 구성원 수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른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사회단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무슨 일인들 안 일어나겠는가. 대학에 요구되는 도덕적 수준이 높기 때문이긴 하겠지만 사건사고가 나면 침소봉대되고 비난이 쏟아진다.

대학은 국가, 나아가 인류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다. 어떤 면에서는 미래가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는 공간이 바로 대학이다. 대학을 보면 우리의 내일이 보인다. 대학은 한발 앞서가는 우리 사회다. 그런 믿음이 확고할 때에만 우리는 더욱 발전되고 성숙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외부의 압력과 불신은 오히려 견디기가 수월하다.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구성원 간의 불화 불신이다. 지금 ‘반값 등록금’ 논란이 다시 이를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나 정치권도 한몫 거든다. 학교법인은 궁극적으로 국가 재산임을 뻔히 알면서도 마치 개인들이 치부라도 하는 양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거나 비난한다. 그 바람에 구성원 사이의 의심과 갈등도 부풀어 오른다. 구성원 간 불신의 벽을 허무는 게 대학의 최대 당면 과제다. 화합과 신뢰 없이는 발전도 없다. 대학이 정체 혹은 퇴보하는 사회나 국가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대학은 그 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곳이다. 대학은 이미 미래다.

학문적 권위의 회복을 위해

출강하고 있는 경희대학교의 지지난해 송년음악회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정명훈 지휘의 오케스트라 연주도 좋았지만 이 대학의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 총학생회장들이 조인원 총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동판에 새겨 전하는 행사는 눈시울 적셔놓는 감동이었다. 이 같은 신뢰에 힘입어 이 대학은 올해까지 3년 연속으로 등록금을 동결할 수 있었다. ‘반값 등록금’ 논란도 아마 대화로 잘 풀어낼 것이다.

이 대학은 올해 송년음악회 자리에서 구성원 간 ‘미래협약’ 체결 및 선포식을 갖는다고 예고했다. 참여 단체는 총학생회, 교수의회, 직원노동조합 등이다. 구성원들 스스로 대학인으로서의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대학다운 대학, 학문적 권위가 회복된 대학, 인류의 미래를 앞장서서 구현해 나가는 대학의 일원으로서 그 책무와 역할을 스스로 선언하게 된다. 그리고 각 주체가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도우면서 함께 각 측의 다짐을 지켜가겠다는 협약을 체결한다. 일컬어 ‘미래협약’이다. 이 협약은 말하자면 ‘헌장’이 된다. 그리고 지속적인 대화와 논의를 통해 여기에 가치와 방법을 더해간다. 짐작키로는 그렇다.

대학은 스스로 존귀해져야 한다. 국가와 국민,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잉태하고 창조해 내는 산실이며 둥지이기 때문이다. 이 대학교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우리나라 대학들 모두가 최고학부로서의 권위와 위상을 회복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각 대학, 각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정부와 사회도 도와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를 세계 일류국가로 만들어 가는 제1의 조건이라고 믿는다.

[2011. 11. 15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