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주성재-동해’ 표기, 논리적으로 추진해야
▲주성재(모교 이과대학 교수)
국제수로기구(IHO)는 해양 관련 활동의 국제표준화와 국가 간 기술 협력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술 분야의 국제기구다. 그러나 ‘뱃사람’들의 모임인 이 기구도 바다 이름에 대한 국가 간 분쟁을 무시할 수 없었고, 1974년 “하나의 바다를 여러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경우 단일 이름에 합의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합의되지 않는다면 각 이름을 수용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적어도 ‘동해’를 병기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은 이 결의에 기초한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잉글리시 채널(English Channel; La Manche)’을 비롯해 3개의 바다가 이 결의에 의해 이미 두 이름을 병기하고 있다. 많은 회원국이 이 논리에 동감하고 있지만, 이 결의가 동해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일본해’ 단독표기를 주장하는 일본의 벽에 막혀 있다.
미국 지명위원회(USBGN)는 미 정부의 공문서와 지도에서 사용되는 국내외 지명을 통일해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연방정부 산하의 기관이다. 지난해에 창설 120주년을 맞은 이 기관은 오랜 기간 쌓인 전문성과 객관성을 바탕으로 지명 제정과 변경의 원칙을 세워 왔고, 그 결과 도출된 전 세계 지명의 데이터 베이스(DB)를 운영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에서 사용되는 모든 지명은 여기서 제공된다.
USBGN의 중요한 지명제정 원칙은, 하나의 실체에 하나의 표준지명을 부여하되, 그 지명은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채택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의해 우리의 동해 수역에는 ‘일본해’라는 명칭이 부여돼 현재까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전 세계가 참고하는 중요한 자료로서 이 DB가 가진 영향력에 비춰볼 때, 이 원칙은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거대한 벽이다.
그동안 한국의 ‘동해’ 캠페인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IHO나 USBGN, 그리고 유엔 지명회의 등 지명 관련 기구의 존립 기반과 운영 원칙을 존중하고, 그 전문가들을 향한 끊임없는 논리적 설득 작업을 벌여 왔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원칙이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 그 원칙이 세워진 배경을 이해하고 이를 우리의 목적에 맞게 달리 적용할 가능성을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하나의 실체, 하나의 지명’이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라면, 동해 수역을 우리쪽 바다와 일본쪽 바다, 2개의 실체로 나누어 각각의 이름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적어도 한반도가 표현된 지도에 ‘일본해’를 표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표준지명과 함께 다수의 변형지명을 동시에 수록하는 미국의 지명DB에 ‘이스트 시(East Sea)’와 ‘동해(Donghae)’를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는 일이다.
회원국 간의 합의를 중시하는 IHO의 운영 원칙에 따르면, ‘동해’를 완전히 무시하는 ‘일본해’ 단독표기로 결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외교 채널의 지속적인 교섭에 의해 많은 회원국이 당사국 간 합의가 우선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 현재 발간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의 미발간 2002년판에 동해 수역이 백지로 나온 사실을 회원국 모두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동해 표기는 감정을 배제하기 어려운 문제다. 우리 민족과 수천년을 함께해 온 정체성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해 표기 확산운동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최대한 냉철하고 객관성 있게, 그리고 논리적이고 부드럽게 진행해야 한다.
[2011. 8. 11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