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철-자유는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동문특별강좌 신용철-자유는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작성일 2011-06-27
▲신용철(사학60, 동서문화로 연구실 대표, 총동문회 이사)

1960년 초, 영국의 대역사가 토인비의 저서에서 ‘도전과 응전’을 바탕으로 한 문명의 ‘역경결정론’을 읽고 나는 새로운 감명을 받았다.

이집트의 나일강이나 중국 황하의 홍수라는 역경은 두 지역의 고대문화를 발생시켰다는 주장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특히 그의 역사이론대로라면 20세기 중반, 인명의 사상과 국토의 파괴란 그 엄청난 역경을 겪은 한반도야말로 큰 발전과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나에겐 그와 같은 우리의 가능성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 독일 학자와 네덜란드 여행 중에 “한국 학생들은 매우 ‘도전적’인 데 비해 일본 학생들은 아주 조용하고 순종적인데, 왜 한국은 일본에 그처럼 크게 뒤졌는가”라는 질문에 실망하고 당황했었다.

모자라는 독일어 실력과 수십 권의 책으로도 설명 못할 이 문제에 대답하느라고 진땀을 흘렸지만 결국 “동아시아의 역사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라고 고민하며 설명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오늘에야 토인비의 그 역사이론이 우리에게도 맞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3년간의 치열하고 혹독했던 6·25전쟁이란 도전과 시련의 역경이 한반도의 우리 대한민국을 반만년의 역사에서 그 유례가 없는 발전으로 이끌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놀라운 발전과 성취는 우리가 처참한 전쟁이란 시련과 도전에 아주 효과적으로 응전에 성공한 결과인 것이다.

우리의 응전은 세워진 나라를 지키며 발전시킨 우리의 놀라운 역량이다. 이에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구하려 한 구국과 새로운 나라를 세운 건국 및 세운 나라의 자유와 생존을 위한 호국에 일생을 바친 이승만 초대 대통령 등 많은 지도자의 공적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

더구나 그 자유와 조국을 지키다 죽어간 수많은 생명을 추모하고 감사해야 한다. 아울러 다른 나라 사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군대를 보내준 유엔 16개국과 의료를 지원한 5개국에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힘이 없이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근 1953년 7월의 휴전 직전 비무장지대의 철원군 동송읍의 해리 고지를 사수한 미국의 노병들이 조지아주 사바나시에서 만나 그 당시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고, 그 처참한 전쟁 중에도 한국의 고아를 돕거나 입양한 미공개 자료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어 감사하면서도, 우리의 문제를 우리보다 더 관심 갖는 외국인의 역사의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특히 생명의 위협을 받는 6·25 포화 속에서 20사단의 사단장 클렐런드 소장은 사단의 첫 전사자인 케네스 카이저 하사의 이름을 딴 가평군의 가이사 중학교를 세웠다고 하니 참으로 감동적이다. 사실 내가 자라서 교육을 받은 전방인 양주군의 광동중학교도 시멘트와 목재 및 천막 등은 물론 트랙터와 트럭 등 중장비의 도움으로 전쟁 중 수업진행과 학교 신축이 가능했다.

그때 이 땅의 전쟁터에서 자란 어린아이가 대한민국을 탄생시키고 그 자유와 국권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었던 국제기구인 유엔의 사무총장으로 재임되었는데, 전쟁기념관의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글귀가 오늘 61주년을 맞아 6·25의 역사와 번영과 통일을 향한 우리의 새로운 응전자세를 격려해 주는 듯하다.

그때 자유를 위해 싸웠던 안보와 호국의 뜨거운 열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생존과 번영 및 통일을 위한 대비이고 추진력이다.

전쟁시대를 살며 싸우고 건설했던 세대들의 위대한 공헌을 역사와 안보의 현실로 기억하며 이어가야 할 어린 세대에게 엄숙한 교훈으로 가르쳐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된 역사는 그 어디에도 없으며, 번영과 통일이란 미래의 벅찬 우리의 과제도 쉽게 저절로 이룩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

[2011. 6. 24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