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이택광-쥐벽서 항소, 상상력과 권력의 대결
▲이택광(모교 교수)
일명 ‘쥐벽서’ 사건이라는 것이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홍보포스터에 어떤 이가 쥐 형상을 그려 넣어서 풍자를 했는데, 이것이 검찰에 의해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다. 일전에 이 지면을 빌려 쓴 적이 있지만, 이 사건은 경직된 검찰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한때 세상의 구설수에 올랐던 이 사건에 대한 공판이 얼마 전에 열려서 재판부는 쥐그림으로 G20 정상회의 포스터를 ‘훼손’한 대학강사 박정수씨의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해서 재빨리 검찰이 유효시간 마감에 맞춰 항소를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박정수씨도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항소할 뜻을 비쳤지만, 검찰의 발걸음이 더 빨랐던 것 같다. 이제 상황은 박정수씨 말대로 ‘상상력과 권력’의 싸움으로 본격화할 모양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이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검찰의 의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부의 선고문 내용에 따르면 박정수씨는 “타인의 명예나 공중도덕을 침해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여기에서 ‘타인의 명예’는 아마도 문제의 쥐 형상으로 인해 명예가 손상되었다고 여기는 ‘어떤 분’일 테고, ‘공중도덕 침해’는 G20홍보물이 더럽혀진 것을 보고 불쾌감을 느꼈을 법한 이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뜻일 것이다.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재판부의 판결 내용은 최초에 쥐그림을 경찰에 신고한 그 ‘시민의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만연해 있는 보수주의를 재차 확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박정수씨가 재판부의 판결에서 명시한 명예와 도덕을 지칭해서 도대체 ‘누구의 것’인지를 되묻기 위해 항소할 뜻을 내비친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재판부라는 국가장치에 대해 개인이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바로 평등-자유라는 근대적 정언명령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당연한 시민의 의무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별 시민과 달리 국가의 위치에 있는 검찰이 이 판결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검찰의 의도가 애초에 혐의를 걸었던 ‘공용물건손상죄’를 다시 주장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조직적으로 현 정부에 대항하기 위한 음모론을 입증하기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진실이 무엇이든, 결국 검찰이 쥐벽서 사건을 아주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것이 박정수씨가 말하듯이, 상상력과 권력의 대결 정도로 거창한 명분거리라도 된다면 다행이겠다. 그런데 사정은 이보다 더 초라하고 궁색한 것처럼 보인다. 재판부에 제출된 검찰의 기소문에서 이 사건을 보는 관점의 일단을 확인한다면, 이런 생각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현 정부에 대한 ‘조직적 저항’으로 파악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는 해프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쥐벽서 사건을 둘러싼 검찰의 대응을 보고 있으면, 경직된 이념의 도서관에 갇힌 채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다양한 세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눈먼 호르헤 수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웃음이 신앙을 손상시킬 것이라고 믿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에 독약을 묻혀둔 이가 호르헤 수사이다. 웃고 넘겨야할 일에 자꾸 근엄한 훈계를 늘어놓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할 일이 없든지, 여유가 없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자랑할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2011. 6. 3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