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권영준-중기 육성해야 양극화 막는다
▲권영준(모교 경영학부 교수)
2500여 년 전 그리스에는 경제를 나타내는 두 가지 단어가 있었는데, `오이코노미아'와 `크레마티스티케'였다. 오이코노미아(Oikonomia)는 가정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와 경영을 뜻하는 노모스(Nomos)의 합성어인데, 이는 공동체의 기초인 가정을 경영하듯 나라를 경영하는 것이 경제라는 것이다. 반면에 크레마티스티케(Chrematistike)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일종의 축재법과 같은 경제운용방식을 말하는데,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죽은 고어가 되어 버렸다. 오이코노미아는 오늘날 글로벌 언어인 영어의 이코노미(Economy)로 전환되었다. 언어는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가 녹아있는 소통의 도구인데, 크레마티스티케는 사라지고 오이코노미아는 생생하게 우리 삶에 살아있다는 것은, 국가를 경영하는 원리를 가정에서 찾으라는 뜻이다.가정에 장애아나 경쟁력 떨어지는 공부 못하거나 체격이 작은 아이에게는 투자하지 말아야 하나. 오히려 더 긍휼한 마음과 사랑으로 배려하는 것이 가정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코노미가 그 본뜻을 살려서 공동체를 가정처럼 경영할 때는 인류에게 행복과 번영을 주었지만, 이기주의적 정글식 경영으로 치달았을 때에는 전쟁, 대공황, 글로벌경제위기 등 공동체가 붕괴되는 큰 고통을 초래했다.
최근 통계청발표에 의하면, 우리 사회가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붕괴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 종합소득세 상위 20%의 1인당 소득금액은 10년 전보다 55% 늘었으나 하위 20%는 오히려 54%나 줄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부동산 가격급등으로 자산양극화가 극심한 가운데, 소득양극화마저 심화되어 사회통합의 저해는 물론 경제정책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대단히 위험한 상태이다.
작금의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기대인플레 심리를 차단하는 금리인상이 필수적인데,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효과적인 금리인상이 불가능하다. 가계가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의 1.5배로 빚을 지고 있는 800조원의 부채상태에서 금리가 더 올라가면 또다시 빚을 내는 방법 외에는 높아진 이자를 갚을 길이 없다. 그렇다고 물가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는 꼼짝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마찬가지로 대형부동산 부실채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동산정책이나 서비스산업 선진화정책, 공교육정상화 정책 등 대부분의 정책들이 양극화라는 딜레마 장벽에 부딪쳐 표류하는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양극화가 한국경제선진화에 가장 큰 구조적 걸림돌이라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지만, 처방에 대해서는 정부와 재계와 시민사회가 공통분모를 찾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상대방 처방에 대해 비난하는 이전투구를 보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반성장위원회가 제시한 이익공유제를 둘러싼 논쟁이고, 나아가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를 통한 대기업지배구조 개혁에 대한 반발이다. 그러나 어떠한 명분의 주장이더라도 중소기업이 고사하는 한국 경제사회의 생태계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결코 양극화를 해결할 길이 없다. 그런데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재벌들은 오히려 오너 일가의 비상장회사에 상장계열사들의 일감을 몰아주기 방식을 통해 이익편취는 물론 편법상속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나아가 중소기업영역 침해를 넘어 문방구와 떡볶이 사업까지 벌이고 있다.
이제 양극화해소를 위해 결자해지 차원에서 재벌들 스스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다시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등 특단의 공적규제의 칼을 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2011. 5. 1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