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아이들 기를 살려라


동문특별강좌 조현용-아이들 기를 살려라

작성일 2011-05-11
▲조현용(모교 한국어교육 교수)

부모님이 제일 싫어하는 자식의 행동은 아마도 한숨을 푹 쉬면서 기가 죽어 있는 모습일 것이다. 어깨가 축 처져서 걷고 있는 자식의 모습만큼 ‘꼴 보기’ 싫은 것도 없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어깨를 쫙 펴고 다니라고 말씀하셨고, 고개를 들고 다니라고 나무라기도 하셨다. 때로는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과장된 칭찬을 하시기도 하였다. 기를 살리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우리말에는 ‘기’와 관련된 표현들이 참 많다. 우리 몸 속에는 ‘기’가 있어야 하며, 그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기가 차다’와 ‘기가 막히다’가 서로 다른 뜻처럼 보이지만, 아주 좋을 때와 어이가 없을 때 쓰일 수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기차게 좋기도 하고, 기가 찰 정도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기막히게 좋기도 하고,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기가 없어지는 것을 ‘죽었다’고 표현하고 기가 잘 흐르는 것을 ‘살았다’고 표현하였다. 사람에게 기가 없는 것은 죽음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기가 빠져나가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어떤 일에 실수가 많은 사람에게 기가 빠져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특히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기를 살려주어야 하는 것이지, 기를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기가 살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 아이들은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라도 기가 살면, 기를 쓰고 해내곤 한다. 그것이 기의 위력이다.

기와 관련된 우리말에는 ‘김’이 있다. 보통 ‘김’은 밥을 지을 때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기’의 한자를 봐도 쌀 ‘미’ 자가 안에 들어가 있다. 한자의 ‘기’도 쌀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의 ‘김’도 ‘기’와 비슷한 상황에서 쓰이는 경우가 있다. ‘김이 빠지다’나 ‘김이 새다’라는 말은 의욕이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김’이 차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김’은 맛있는 식사나 주변의 격려, 신뢰 등을 통해서 몸 구석구석에 피어올라야 하는 것이다.

헛된 것에 의지한 ‘김’은 큰 문제가 된다. 술을 이용해서 기운을 높이려는 ‘술김’은 여러 후회들이 만들어 낸다. 끓어오르는 분노나 실망감을 참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홧김’에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 난다.

아이들이 잘한다고, 잘할 거라고 믿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잘한다, 잘한다’‘오냐 오냐’ 해서 생기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로 우리에게 무한한 믿음을 보여주는 분들이 누구인가 생각해 보라. 아마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첫 번째이고, 부모님이 두 번째일 것이다.

자식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말고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 언젠가는 바른 길로 돌아 올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의 아이들을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갔다. 미운데 어떻게 더 칭찬하고, 잘 대해 줄 수 있는가? 떡을 하나 빼앗아도 시원치 않은데, 떡을 하나 더 주라니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당장은 미워도 언젠가는 잘하리라 믿기에 기를 살려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더 보살피고 기를 북돋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아이들을 믿고 있는지 반성이 된다. 생각해 보라. 자식이 남인가? 자식은 남이기도 하지만 그대로 내 모습이기도 하지 않은가?

또 생각해 보라. 학생은 남인가? 친구의 자식은 남인가? 주변의 아이들은 정녕 다 남인가? 아이들이 잘못 했다고 회초리부터 드는 것이 정말 아이를 위하는 길인가?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2011. 4. 22 미주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