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우승지-정치권, ‘親北행위’ 당장 중단해야
▲우승지(모교 국제정치학 교수)
천안함 침몰 사건은 한국의 9·11사건이다. 천안함 사건 이전의 한반도와 이후의 한반도가 같을 수 없다. 이것은 마치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이 그 전 미국과 구별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와 대결에서 승리해 자신감에 취해 있던 미국은 본토에 대한 공격으로 자신의 취약성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9·11 이후 미국은 미국 안보에 대한 새로운 도전요소를 구별해 내고 신안보 태세를 확립해 나갔다. 여야가 국익 앞에 단결하고 대중과 지도자들이 하나가 돼 더 강한 미국을 만드는 작업에 매진했다.
한국의 천안함 이후도 이와 같아야 한다.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은 세계화의 조류 속에 섬으로 남은 북한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제는 천안함 사건이 준 교훈을 바탕으로 방위태세를 재정비하고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으로 국군을 무장시켜야 한다. 냉전시대의 대립정책과 탈냉전시대의 햇볕정책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북 관여의 필요성에는 공감해야 하나 맹목적 포용에 담겨 있는 위험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북한 붕괴론에 담긴 편의주의적 사고가 북한의 정체성에 대한 순진한 접근만큼이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 또한 인식해야 한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정치권이 민심을 다독이기보다 혼란을 부채질하는 언사를 사용하는 작금의 현실은 많은 이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갖은 유언비어가 아직도 횡행하며 천안함 이후 대한민국이 더욱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여러 갈래의 사회 분열상만 드러내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해법을 찾아가는 여정과 지방선거 일정이 겹쳐 있어 정치인들은 선거의 이해득실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해석과 해법을 연결시키고 있다. 선거에서 당장 이득을 보기 위해 당파적이고 근시안적인 주장을 내놔 장기적인 국익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천안함 조사를 선거의 쟁점으로 삼고 정략적으로 악용하려는 시도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민주당은 “관제조사”라며 정부의 조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군과 민이 함께하고 외국의 전문가까지 동원된 합동조사단의 조사를 결과가 발표되기 전부터 평가절하하는 것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또 한 야당 정치인은 정부와 여당의 “북풍(北風) 공작”을 염려했지만, 자국의 함정이 침몰된 상황에 대응하고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것이 북풍이 될 리 없다. 정치권은 이러한 ‘친북(親北)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햇볕정책을 주장하던 그룹도 국가안보상 커다란 구멍이 뚫린 상황에서 북한에 책임을 물을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한 의사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도 행여 이번 사건을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국가안보를 책임진 정부와 여당은 경계에 실패한 원죄가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안보의 영역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정부는 야당과 함께 천안함 사건의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사건은 한반도에 안보위협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정치권과 국민 모두는 대승적 차원에서 천안함 침몰사건을 바라보고 중장기적인 국익의 관점에서 조사 결과 발표 이후 한반도의 국제정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일단 사사로운 이해관계에서 발표를 예단하지 말고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지켜봐야 한다. 합동조사단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 결과를 내놓아 세상의 혼란과 갖은 의혹을 잠재워야 하는 책무가 있다. 사고 원인을 밝히는 조사 결과가 향후 천안함의 국제정치 향배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2010. 5. 19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