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경-해는 동쪽에서만 뜨는가


동문특별강좌 서혜경-해는 동쪽에서만 뜨는가

작성일 2010-04-26
▲서혜경(모교 음악대학 교수, 피아니스트)

작년 겨울 아주 힘든 여행을 경험한 적이 있다. 열사흘 동안 비행기를 네 번 타고 기차를 일곱 번 탔다. 호텔을 여섯 번 옮기며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날씨만은 관심사였다. 언제나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가 `혹시나 내일은 볕을 볼 수 있나` 하고 일기예보를 살피게 만들었다.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추적추적 가랑비 아니면 진눈깨비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북유럽인들이 왜 남녘 햇살에 열광하고 봄을 기다리는지 알 만하다. `셸리`가 그렇게 봄을 기다리고 또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봄을 노래한 것도 이런 침울하고 긴 겨울의 산물일 것이다.

잿빛 하늘 아래서 그마저도 오후 3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져서 길고 긴 저녁을 맞이해야 한다. 동지가 가까워질수록 밤은 점점 더 길어지고 위도가 높아지면 아침 10시쯤 해가 서쪽에서 떠서 오후 2시쯤 서쪽으로 진다.

누가 해는 동쪽에서만 뜬다고 했던가? 우리에게 `동쪽에서 뜨는 해`는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진리였다. 그러나 북위 60도만 넘으면 겨울 해는 서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믿고 있는 진실이 얼마나 편협하고 불완전할 수 있는가? 신념도, 이념도, 종교도 내게는 절대적일 수 있지만 남에게까지 절대적일 수는 없다. 세상에 확실한 것이 어디 있는가? 우주에선 `오직 변하고 사라지는 것만이 영원한 진리`일 뿐이다. 공교롭게도 지난번 여정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폴란드 바르샤바, 독일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순으로 일정이 잡혔다. 공산주의 종주국에서 위성국을 거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잡종도시 베를린을 지나 대표적인 자본주의 상업도시에서 여행이 끝난 것이다.

러시아에선 한 도시에 사흘 이상 머물면 체류 신고를 해야 한다. 옛날 전체주의 시절에 국민을 통제하던 괴상한 제도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거리 곳곳엔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며 애꿎은 여행객들을 괴롭힌다. 여권이나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으면 무조건 경찰서로 연행할 수 있고 벌금을 매길 수 있다. 이렇게 통제를 하는데도 치안은 불안하다. 바르샤바는 훨씬 자유롭고 편안하다. 기차로 입국하니 여권만 힐끗 보고 입국 스탬프도 안 찍는다. 그러나 사회 시스템 미완과 과도기적인 불안정성이 구석구석 배어 있다.

베를린에 도착하니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깨끗하고 질서 정연하다. 누구도 나를 간섭하지 않고 어떤 일에서든 친절한 배려들을 감지할 수 있다.

제도와 규범에 대한 약속들이 언제나 지켜진다는 믿음이 사람을 이렇게 편하게 만들 줄이야! 그러나 무언가 도시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고 답답하다. 아직도 공산주의 유령이 도시를 맴돌고 있는가? 베를린에 있을 땐 몰랐는데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고 나서야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혼잡하고 무질서한 것 같아도 프랑크푸르트는 공기부터 달랐다. 자유와 활력과 능률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잘못된 사회제도가 얼마나 사람들 일상을 좌우하고 인간성까지 왜곡시키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다. 공산당 선언의 허황된 이상이 사라진 지 2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 잔재와 여진은 남아 있었다. 광적인 믿음과 확신이 사라지고 나면 그 잔영이 얼마나 우습고 허무한 것인지를 이들 네 도시는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마치 공산주의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것처럼 설치던 혁명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가? 잡을 수 없는 무지개 같은 맹랑한 꿈을 위해 인간들은 너무나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피를 흘렸다. 세상과 우주의 어느 구석에도 불변의 진리는 없는데도 말이다.

[서혜경 피아니스트ㆍ경희대 교수]
[2010. 4. 23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