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스폰서 검사’의 뿌리는…


동문특별강좌 이택광-‘스폰서 검사’의 뿌리는…

작성일 2010-04-26
▲이택광(모교 교수)

공정해야 할 검찰이 ‘스폰서’에게 향응을 제공받아온 사실이 폭로되었다. 사방에서 개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여당 의원들조차 검찰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물론 국민이 이 사실을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검찰에 쏟아졌던 의혹이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새삼스럽게 충격을 주는 것일 뿐이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그랬다는 냉소주의가 진하게 묻어난다.

흥미로운 것은 일각에서 ‘향응 제공자’도 공범이라는 식으로 사건을 몰고 가려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주장을 듣는 순간, 군 복무 시절 교육을 받았던 ‘구타 직전 보고’가 떠올랐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병영 내 구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온 대책이었다. 이 규칙에 따르면, 구타를 당할 위기에 처한 병사는 그 직전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한다. 보고하지 않고 구타를 당했을 시 그 피해 병사도 직전 보고를 해야 한다는 규칙을 어겼기에 같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검사도 잘못했지만, 애초에 그 검사를 타락으로 이끈 스폰서가 더 나쁘다는 논리는 이런 황당한 구타대책과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분명히 스폰서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겠다는 불순한 의도에서 검사에게 향응을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이런 ‘비리’를 잡아내기 위한 국가장치의 일부이다. 특정한 이해관계에 얽매인 개인으로서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 검사이다. 향응을 제공하고 특혜를 약속받는 행위를 잘못된 것으로 규정해야 할 주체가 바로 검사라고 한다면, 스폰서로부터 이런 향응을 제공 받는 것 자체가 검사의 임무 방기인 것이다.

근대적인 공리주의 국가에서 검사의 역할은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이 공평한 즐거움을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눠 갖도록 감시, 관리하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부르주아 국가의 운영원리이다. 그런데 이런 검사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국가의 운영원리를 교란시킨 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이 왜 유독 한국에서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걸까? 단순하게 특정 검사의 양심 문제로 원인을 돌려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생각을 조금 복잡하게 굴려보면, 어떤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검사가 누구인가?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에 속한다는 이들이다. 문제의 본질은 한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엘리트주의와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수재 소리를 들으면서 성공가도를 달려왔을 이들이 과연 검사 월급에 만족하면서 소주에 삼겹살 파티나 하며 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한국 사회의 엘리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약육강식의 경쟁논리이고, 승자독식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검사가 된다는 것은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두고, 그토록 힘들게 공부해서 검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고생스러운 삶을 지속한다는 건 웬만한 형이상학적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이런 삶에 아무런 보상도 약속하지 않는 강고한 자본주의적 유물론의 처소가 아닌가?

결국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검사의 비리는 계속해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스폰서 검사’라는 현실은 곧 한국 사회의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0. 4. 23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