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남-입추 전 재첩은 간장약, 속풀이에도 최고


동문특별강좌 고창남-입추 전 재첩은 간장약, 속풀이에도 최고

작성일 2010-04-26
▲고창남(한의82, 모교 동서신의학병원 교수)

섬진강 재첩은 1m 깊이의 모래에서 겨울을 보낸 뒤 4월에는 모래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재첩은 사시사철 채취하지만 역시 봄이 제철이다. 과거엔 한강 이남의 여러 강에서 볼 수 있는 조개였다. 그러나 요즘은 섬진강 등 일부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본디 맑은 물에서 서식하는 조개여서 수질 오염에 약해서다. 국산이 귀해지자 최근엔 중국산이 대량으로 수입되고 있다.

재첩의 원산지는 껍데기를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조가비가 벗겨졌거나, 투박한 나이테, 각정(조가비 꼭대기의 도드라진 부위)이 튀어나온 것은 중국산이기 쉽다. 소문난 섬진강 하동 재첩은 조가비가 연노랑색이고 부드러운 각정·나이테를 갖고 있다. 조가비 색깔이 노란 것은 민물산인 해남 재첩일 가능성이 크다(국립수산과학원 장미순 연구사).

재첩은 고단백·고미네랄 식품이다. 단백질 함량은 100g당 12.5g으로 같은 무게의 두부(9.3g)보다 위다. 또 메티오닌·타우린 등 웰빙 효과가 큰 아미노산들이 재첩의 단백질에 포함돼 있다. 메티오닌·타우린은 간의 해독을 돕고 간기능을 개선시킨다. ‘입추 전의 재첩은 간장약’이란 말은 이래서 나왔다. 전날 과음한 사람의 밥상에 올린 재첩국은 속풀이용으로 최고다.

미네랄 중에선 칼슘·철분이 풍부하다. 100g당 칼슘 함량은 181㎎. ‘칼슘의 왕’이라는 흰 우유 1팩의 칼슘 양과 엇비슷하다. 더욱이 칼슘과 인의 비율이 1대 1에 가까워(가장 이상적) 칼슘의 체내 흡수도 잘 되는 편이다. 임산부나 성장기 어린이에게 재첩 요리를 권장하는 것은 빈혈을 예방하고 성장을 돕는 철분(100g당 21㎎)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재첩엔 또 등 푸른 생선에 많은 DHA· EPA 등 오메가-3 지방도 제법 들어 있다. 오메가-3 지방은 혈관 건강은 물론 두뇌 발달에도 유익하다.

콜레스테롤이 상당히(100g당 76㎎) 함유된 것은 맞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재첩에 함유된 오메가-3 지방·타우린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혈관 건강에 이로워서다.

영양상의 약점은 비타민 A·C 등 일부 비타민 함량이 적다는 점이다. 이를 절묘하게 보완할 수 있는 식품이 부추다. 재첩국·재첩찜·재첩숙회 등 재첩이 주재료인 음식에 부추가 단골로 들어가는 것은 이래서다. 우리 선조는 영양학 공부를 하지 않고서도 재첩과 부추가 ‘찰떡 궁합’이란 사실을 용하게 알아내 조리에 활용했다.

맛은 감칠맛·단맛·진한 맛의 합작품이다. 감칠맛은 호박산(유기산의 일종)·글루탐산(아미노산의 일종, 조미료 성분), 단맛은 알라닌·글리신, 진한 맛은 글루코겐의 맛이다.

재첩은 모래에서 잡히는 조개인 만큼 조리를 하기 전에 소금물에 담가 모래 등을 빼줘야 한다(해감). 재첩을 소쿠리에 담아 거의 맹물 같은 소금물(1% 소금물)에 3시간가량 담가 두면 모래가 빠져 나간다. 모래를 토해낸 재첩을 건져 물기를 뺀 뒤 4시간 정도 놓아두면 호박산이 많이 생겨 맛이 더 좋아진다. 해감시킨 것은 냉장고의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조리할 때 꺼내 이용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재첩국이다. 냄비에 재첩과 물을 붓고 조개의 입이 벌어질 때까지 끓이는데, 가열이 너무 길어지면 조갯살이 질겨진다. 조개의 입이 벌어졌을 때 부추를 넣고 소금 간을 해 잠깐 더 끓이면 재첩국이 완성된다.

알이 크고 검은 것이 상품이다. 알이 잘고 희끄무레한 것은 질이 떨어진다. 살만 있는 것보다는 조가비가 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맛이 더 낫고 국산일 확률이 더 높아서다.

동의보감엔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간기능을 개선하며 황달 치유에 효과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방에선 음주한 다음날의 숙취(宿醉)를 없애고 눈의 피로를 풀어주며 소갈(消渴, 당뇨병) 환자의 갈증을 해소하고 혈당을 조절하는 데 유용한 조개로 친다.

[2010. 4. 25 중앙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