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화유적 답사 ①


동문특별강좌 북한 문화유적 답사 ①

작성일 2005-03-15
북한 문화유적 답사 ①

< 압록강 변(鴨綠江邊)의 북한주민 > - 정진철 (정외9회. G.A.C 대표이사)

5월 23일 저녁 우리 문화유적 답사단 일행은 옛 우리 땅인 고구려(高句麗)를 찾아본다는 감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저녁노을을 안고 인천항을 떠났다.
출발한지 14시간에 걸쳐 닿은 곳이 중국 동항(凍港)이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중국 땅이 되어버린 옛 고구려(高句麗)의 터전이 이곳 동항 시에는 현재 한국동포가 1만 명이 살고 있다.  최근에는 아파트와 상가 건물이 급격히 들어서면서 한국식당과 한국호텔은 물론 보따리장사가 특히 눈에 뜨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약 1시간정도 가면 요녕성 단동시(丹凍市)가 나온다. 단동은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북경(北京)과 심양(深陽) 장춘(長春)을 잊는 철도(鐵道)로 연결되어 평양과 모스크바까지 부설되어 있다.  단동에는 1만 여명의 한국동포들이 살고 있는데 시내에는 무역대표부의 특별임무를 맡은 북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는 중국인, 한국인, 북한인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보따리장사들이 파는 상품은 대개 의류에서부터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뺏지까지 돈이 되는 것이면 모두 내다 팔고 있다.
단동시 압록강변에서는 북한의 신의주가 한눈에 보이는데 압록강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긴 강이며 물빛이 청둥오리의 머리색과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인데 짙푸른 강물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이루고 있지만 G나 곳은 자유로운 관광이 가능한 반면 다른 한곳은 정적의 땅처럼 싸늘하고 그늘진 어둠의 땅과 같다.
그러나 압록강은 국경선이 없는 곳이라 유람선이 북한의 강기슭까지 자유로 오가며, 끊어진 철교 밑으로 위화도를 들러 썰렁하게 보이는 신의주 턱밑까지 간다.  예전에는 신의주가 불야성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중국의 단동이 그와 반대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신의주에서 약 1Km쯤 가면 압록강 철교가 2개 놓여 있다. 한 곳은 6·25전쟁 때 파괴되고 한 곳은 그대로 유지되어 북한과 중국간의 철도와 자동차가 오간다. 파괴된 철교는 한국의 통일을 막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중공군(中共軍)이 6·25참전을 위해 가장 많이 넘어 온 다리인데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 2년(1908년)에 착공하여 연 5만 명의 인부를 동원 1911년에 완공되었다.
길이가 944m 중앙은 철도이고 그 양쪽으로 사람이 다니는 보도가 있고 다리 중간은 범선이 단일 수 있도록 개폐식으로 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6·25당시 파괴되어 신의주(북한)쪽에는 교각만 남아 있고 단동쪽에는 교각과 철교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건널 수는 없게 되었다.  교각 입구에는 단동시 인민정부(人民政府)가 새긴 압록강 단교라는 명패가 붙어있다.  철교 앞쪽으로 섬이 하나 있는데 이 섬이 고려말 요동정벌을 포기하고 회군한 곳으로 유명한 위화도인데 지금은 북한 영토로 집단농장을 이루고 있다.
단동시에서 볼 수 있는 유적은 구련 성터가 있는데 구련성은 중국에 갔던 조선 사신들이 의주를 거쳐 압록강 건너 맨 먼저 마주치는 중국 땅이다. 이곳에서 사신들이 첫 밤을 새웠다고 한다.  만리장성 똥쪽 끝 성벽인 호산장성에 올라 보니 여기서는 의주 관서팔경의 하나로 알려진 통군정과 의주성에서 가장 높은 삼각산 봉우리에 세워진 북한의 작은 누각이 눈앞에 보인다.
여기서 약 20분 정도 가다보면 태평(太平)만 땜이다. 이 땜은 중국에서 축조 관리하고 있고 땜을 건너가면 북한측의 인민군 초소가 있다.  초소에는 인민군 초소병 2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약 20세 정도의 깡마른 체격의 젊은이로 반가운 듯 함께 사진을 찍었다.  순간이나마 이념을 초월한 만남이었다.
단동에서 압록강 건너 북한 땅을 보던 한 노인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49년만에 처음으로 보는 것이 매우 착잡해 보였다. 아마 속으로는 저 먼 어딘가에 계실지도 모르는 부모님과 형제를 생각하며 통곡을 했을 것이다.  그 노인은 연락인을 통해 아우의 근황을 알리는 편지와 친척들의 사진을 받아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는 짧은 동안이었지만 TV에서나 보던 북한의 실상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먹을 것이 없어 탈진상태에 놓인 부녀자 등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포기한 듯한 모습에 같을 동포로서의 애틋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금 그들은 이 원망스러운 현실을 누구의 탓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는 이번 탐사를 통해 독재정권의 말로가 어떻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동족간의 다른 이념으로 적대시할 수밖에 없는 민족의 한을 마음속으로만 되씹어야 했다.

- 1999년 7월 (127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