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인도기행(23)
< 인더스 문명의 대표적 유적지 모헨조다로를 찾아가는 길 >
이윤희 (사학21회. 문학박사. 서일대학교수)
- 풀 한포기 없는 황량한 모래 벌판위로 거대한 인더스 강이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주변으로 광대한 경작지가 펼쳐지고.......
우리가 어릴 때 부터 배워 온 바로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한 곳이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이다.
인더스 문명의 유적은 수천리에 걸쳐 산재해 있지만 그 대표적 유적인 모헨조다로와 하라빠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된 후 오늘날에는 파키스탄 영내에 소재하고 있다.
파키스탄에는 모헨조다로 뿐만아니라 라호르성채, 무갈시대의 살리바르정원과 타타유적, 탁실라의 간다라 미술품과 탁티바히 유적 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인더스 문명의 실재를 증명한 모헨조다로 유적은 그 어느것 보다 중요하다.
카라치에 온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 모헨조다로를 찾아보기 위해서 였다.
처음에 호텔 안에 있는 제법 컴퓨터를 갖추고 있는 슈틀레즈 여행사에 알아보니 모헨조다로행 비행기표가 없었다. 컴퓨터로 확인한 후에 말한 것이어서 표가 매진 된 것이 틀림 없을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좀 더 큰 여행사에서는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단히 넓은 사무실에 약 20명이 앉아있는 Aero 여행사로 찾아갔다.
Aero에 가니까 표가 없다는 같은 대답이었다. 그러면 내일 오후 비행기로 갔다가 모래 오후에 돌아오는 길을 알아달라고 했더니 모래는 오후 비행기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래 모헨조다로에서 다른 지역으로 연결되는 비행기를 통해서 카라치로 연결시켜 우회하여 돌아오는 방법을 알아달라 했더니 내일까지는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나는 삼사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모헨조다로를 구경할 수 있는 묘안은 없었다. 물론 자동차나 기차로 여행하는 것은 거의 생각않고 있었다. 인도에서 여러번 경험한 바이지만 기차와 버스여행은 극도로 불편하고 몇 시간씩 연착하기는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파키스탄 항공 본사로 직접 찾아갔다. 인도에서 몇번 경험한 바로는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과 직접 담판을 벌이는 것이 오히려 일이 쉽게 풀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창구가 아니고 맨 뒤에 앉아있는 그 방에서는 자리 위치로 보아 제일 높은 지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는 컴퓨터로 확인해 보더니 내일 좌석은 없다고 한다. 표가 없다는 것은 다른 여행사에서 미리 알았고 여기까지 온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모헨조다로를 답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찾아왔다고 말하였다.
"서울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에 문의 했더니 카라치에 도착하면 모헨조다로 항공권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표를 구하지 못해서 모헨조다로를 찾아가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다면 말이 되는가, 나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파키스탄 항공 발권본부 사람들은 셋이 얼굴을 맞대고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그런데 한 5분마다 10분씩 기다리라며 자꾸 이곳저곳 전화를 하면서 기다리라고 한다.
도저히 불가능 하다던 아침 표를 구해 주었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는 표를 구하기 위해서 계속 약 20분 동안 노력했지만 오후에 돌아오는 표는 끝내 구할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내일 아침 비행기로 가서 「모헨조다로」 를 구경하고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되돌아오는 항공권을 구입하는 데 까지는 성공했다.
새벽 5시 40분 호텔을 나섰다. 카라치 공항으로 향했다.
새벽길이어서 막힘없이 달려주어 20분내에 도착되었다.
인도를 비롯한 주변 여러나라를 둘러 보았지만 파키스탄 카라치 거리 만큼 도로포장이 매끄럽게 잘 되어 있는 곳이 없었다. 다른 곳에서는 도로포장이 되어 있다 할지라도 수작업을 한 탓인지 울퉁불퉁하고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카라치는 아주 오래된 도시이기 때문에 무질서하고 지저분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도로는 넓은 직선으로 쭉쭉 뻗어있고 도로변에는 키 큰 야자수가 보기 좋게 늘어서 있어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모헨조다로로 가는 비행기는 6시 45분 출발로 되어 있으나 모든 수속을 완료하고도 비행기는 한 시간 이상 동안 탑승을 미루고 있다. 앞서 떠나게 되어있는 이슬라마바드와 페샤와르로 가는 비행기도 역시 묶여 있다. 조종사와 승무원들도 나가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다. 방송은 한 마디 없지만 안개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탑승 대기실에서 건장한 남자들 셋이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여 깜짝 놀랐다. 미리 준비된 양탄자 위에서 절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 성지 메카를 향하여 경배하는 거로구나 하고 짐작되기는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카라치 공항은 규모도 크고 청결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담배연기가 흘러와 두리번 거렸더니 뚱뚱하고 배가 툭 튀어나온 장신의 서양남자가 두꺼운 영어로 된 책을 펴놓고 읽고 있는 자세로 연기를 날리고 있었다. 그 남자가 앉아있는 좌석에서 일직선 앞 5미터가 못되는 곳 하얀 벽에 붉은 글씨로 오로지 「금연」 이라는 글씨 만이 뚜렷이 크게 쓰여 있어 못 보았을리 없을텐데 상관없다는 듯이 연신 피우고 있는 것이다. 벌써 몇 개비를 피웠는지 바닥에는 담배꽁초와 가루를 버려놓고 다시 그것들을 신발로 지져놓아 바닥을 꺼멓게 더럽혀 놓고 있었다. 그의 옆 빈 죄석에 그가 마시고 난 빈 종이컵이 놓여 있는데도.
주변 사람들이 좋지않는 눈초리를 보이고 승객들은 순시하는 경비원에게 왜 제재하지 않는가 하는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다. 경비원이 승객들이 고통스러워 한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형편없는 서양인 남자는 그 순간 얼굴이 붉어지면서 담배를 끄는 것이었다. 조금 후 청소원이 와서 어질러진 담배꽁초를 치우고 걸레로 닦아냈다.
날이 완전히 밝아지면서 시계가 2키로 이상 보일 수 있어서 이륙이 가능할 것 같은데 비행기는 8시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탑승한 비행기는 창문이 열 개인 40인승 조그만 프로펠라 달린 비행기다. 카라치 市를 벗어나자 불모지대 사막 만이 이어진다. 산 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래언덕이 흡사 산처럼 이어지고 있는 사막 만이 보일 뿐이다.
물은 없지만 분명한 개울로 보이는 곳의 옆으로 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다. 앗! 인더스 강이 보인다. 강폭은 아주 넓고 강물은 황토 빛이다. 강변에는 초목이 울창하다. 카라치에서 약 30분 비행하자 인더스 강이 나타나고 광대무변한 경작지를 내려다 보며 날으는 시간이 30분쯤 지나자 창밖으로 프로펠라 비행기의 랜딩기아가 내려지는 것이 보인다. 착륙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헨조다로 공항에 도착했다.
시골 공항 특유의 황량한 분위기 이지만 꽃밭이 단정하고 예쁘게 가꾸어져 산뜻한 느낌을 준다.
외국인이 드물어서 인지 제복을 입은 남자 두 사람이 다가와 모헨조다로 관광을 위한 택시를 권한다. 정중히 거절했다.
서양인 관광객 두명과 일본인 젊은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사라져 버렸다. 공항밖으로 나오다가 안내책자를 구하기 위해 나는 다시 공항청사로 들어갔다.
제법 의젓한 풍채에 그곳에서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무슨 도울 일이 있느냐며 친절하게 말 해왔다. 나는 내일 아침 떠나는 항공표를 가지고 있지만 오늘 오후 비행기로 카라치로 갔으면 한다. 나에게는 매우 절실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도울 수 있을거라고 흔쾌히 말했다. 4시에서 4시 30분 사이에 이곳으로 오면 된다고 일러주면서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분명히 가능하다는 확신이 느껴졌다.
그는 나에게 "모헨조다로를 어떻게 관광하겠느냐"고 물어왔다. "공항에서 1킬로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라면 시간이 충분하므로 걸어가겠다. 모헨조다로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안내원은 필요없다. " 고 말한 후 밖으로 나왔다.
모헨조다로로 가는 길은 4차선 정도의 넓이로 잘 닦여 있었다. 저 앞에 같이 탑승했었던 일본인 학생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문명의 발상지 모헨조다로의 아침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좌우를 둘러보며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지금으로부터 약 오천년 전에 시작된 인더스 문명의 대표적 유적지 모헨조다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 및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거의 같은 시대의 유적이다.
모헨조다로 공항에서 1킬로 쯤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유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푯말도 보이고 입구는 제대로 갖추어 있었지만 요금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입구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인장에 새겨진 모헨조다로 문자 10글자가 가로로 씌여져 있었다. 이 글씨는 모헨조다로 박물관의 외벽에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모헨조다로인들이 남긴 문자를 아직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걸으면서 특별히 흙이 부드럽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막상 유적지에서 가장 크게 놀란 것도 왜 흙이 이처럼 부드럽고 미세할까? 유적지 일대의 모든 흙은 아주 곱고 부드러워 흡사 밀가루와 같은 촉감이 우리나라 여성들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진흙팩의 재료로 쓰여져도 손색이 없을 듯 보였다.
- 1999년 10월 (129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