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특별강좌
인도기행(10)
< 현대적인 정치도시로 계획된 뉴델리 >
이윤희 (사학21회, 문학박사·서일전문대학 교수)
------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세기가 넘는 지방자치의 훈련에서 비롯되었고.....
델리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뉴델리와 올드델리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양쪽을 합쳐서 그냥 델리라고 부르는데 델리에는 근대적인 요소와 고대 전통적인 요소가 함께 숨쉬고 있다.
올드델리 남쪽에 인접한 뉴델리는 인도 풍에다가 근대 영국식의 도시 계획을 가미한 정치도시이다. 1911년 세워진 구총동관저 였던 현재의 대통령관저, 이오니아식 열주가 아름다운 원형의 국회의사당, 1921년에 만들어진 1차 대전 인도 전몰장병을 기념한 아아치의 대전기념물, 정부의 여러기관, 외국 공관등이 늘어서 있어 수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뉴델리의 거리는 일직선으로 뻗은 넓은 도로가 시원스레 펼쳐있고 도로의 폭이 넓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대개는 잔디가 깔린 人道가 車道보다 더 넓게 뻗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길 옆으로는 수목이 울창하고 잘 가꾸어진 정원을 가진 저택들이 들어앉아 있다. 몇백평 크기의 집들도 많지만 가끔 몇천평의 대지위에 조용하고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는 대 저택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뉴델리의 번화한 중심지는 코넛 플레이스다. 이곳은 상가 중심지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왕자였던 코넛Connaught 공작이 1921년 인도를 방문하여 1919년의 인도통치법에 의해 마련된 새로운 헌법의 시행을 공포했었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다.
여기에는 고급스런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코넛 플레이스의 상가 구조가 매우 특이하다. 이삼층의 높지 않는 건물이지만 몇키로에 걸쳐 원형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뒤편으로 다시 건물들이 또 원형을 그리고 있다. 이 코넛 플레이스는 뉴텔리와 올드델리를 부채살 모양의 도로망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진귀하고 값비싼 상품을 볼 수 있는 상점뿐만 아니라 은행, 여행사, 고급식당등이 즐비하다.
주머니가 두툼하지 못한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코넛 플레어스에서 의사당앞의 광대한 광장쪽으로 통하는 쟌파트 거리이다. 거기에는 값싼 인도의 크고 작은 토산품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인도인들 뿐만아니라 티벳의 피난민들까지 어울려 갖가지 민속품들을 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인디아 게이트를 지나 인도 중앙청이 멀리 바라보이는 이곳은 내가 어느 곳에서도 아직 못 보았던 광할한 광장이었다.
대륙적인 엄청난 규모의 광장은 유럽의 이름난 광장들과는 규모면에서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우리나라 여의도 광장의 열배는 넘는 듯 아스라히 펼쳐있다. 광장이 너무 넓어 가느다랗게 보이는 넓은 차도가 일직선으로 뻗어있고 양옆에는 군데군데 큰 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연못도 보이고 사람들이 드문드문 잔디위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
운좋게도 이번 인도 여행 기간중에 이 넓은 광장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리퍼블릭데이 기념축제를 관람할 수 있었다. 리퍼블릭 데이는 인도가 영국 지배로부터 독립한지 약 2년 반이 지난 1950년 1월 26일 인도공화국 헌법을 공포한 기념일이다.
아득하게 멀리 뻗어 있는 도로 양편에는 수십만명의 인파가 앉아서 서서 또 의자 위로 올라서서 다채로운 행진을 구경하고 있다. 먼저 군사행진이 시작되고 있다. 육해공군, 탱크, 장갑차, 최신예전투기등 우리나라 국군의 날 씩씩한 행진을 연상케 한다.
눈에 띠는 것은 군모가 아닌 터번을 머리 위에 쓴 군인들만의 행렬이 이색적이다. 이들은 말할것도 없이 씨크족으로서 군대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존중하여 군모 대신에 터번을 쓰고 터번위에 계급장을 붙이도록 하고 있다.
낙타 군단이 느릿느릿 지나가는 것이 이채롭다. 중간중간에 다른 옷차림의 군악대가 너무 자주 등장하여 지루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마도 보무도 당당한 군대행진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모양이다.
만델라 남아프리카 대통령이 귀빈석에 앉아 참관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엄청나게 큰 모습을 한 마하트마 간디의 좌상이 본부석에 자리잡고 있는데 흔들리는 모습으로 규모는 5층 건물 높이 보다도 더 높고 크다. 그 앞으로 거대한 물래가 지나갈때는 간디의 독립운동을 인상적으로 연상시켜 주고 있다.
17세기만해도 인도는 세계 제일의 면직물 생산국이었다. 인도 특히 북동부 지역은 온통 목화로 뒤덮여 있어서 인도는 하나의 면직공장이었다고 유럽의 여행가들은 기록하기도 하였다.
값싸고 품질좋은 인도의 면직물은 유럽에서 중산층 계급의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으므로 대량으로 팔려나갔다. 그러나 영국이 산업혁명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태는 역전되고 말았다. 사람이 손으로 하던 일을 기계로 대체함으로써 값싸고 질좋은 면직물이 대량으로 생산 될 수 있었다. 기계로 생산된 질좋은 면직물이 몇분지일의 낮은 가격으로 영국에서 대량 생산 됨에 따라 이제는 반대로 영국의 면직물이 인도로 수입되게 되었다. 인도는 원료생산지와 상품시장으로서의 전형적인 고전적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나중에 간디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인 반라의 옷차림으로 물레를 돌리고 있는 모습은 시대 착오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간디는 세계에서 첫째가는 인도의 면직산업이 영국의 제국주의 앞에서 참담하게 무너져버린 인도인들의 비극을 세계에 고발하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인도 각 지역의 민족행진이 뒤따른다. 가무가 곁들인 농촌풍경, 방아찧고 금속공예를 만드는 모습도 보인다. 코끼리등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도 수레를 이끄는 것은 동물이 아니라 자동차를 동물모양으로 개조해 놓은 것이 눈에 거슬린다.
인도 각 지역에서 모인 서로 다른 인종들이 다른 색상의 의상을 걸치고 춤을 춘다. 인도가 다양한 인종과 풍속을 포용한 多元社會를 이루고 평화롭게 생활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지만 한편 인도의 정치 사회적인 통합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델리대학으로 향했다.
인도인 택시기가는 만날 사람을 만나고 나올 때까지 두시간도 기다려 주겠다고 하였지만 그냥 돌려보냈다. 델리대학에서는 샤르마 교수와 사비트리 교수를 만나 후 덧트 교수를 만났다.
차를 마시며 인도 총선이후 정치적 상황이 어떤가 물었더니 특별한 정치적 불안요인은 없지만 약체 연립정부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제일 다수당(B· JP)당이 정권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제3당인 쟈나타달(JANATA DAL)이 10여개의 군소정당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인도 독립운등을 주도해왔고 독립후에도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해왔던 국민회의 당은 제2 당으로서 군소 연립정부를 뒷받침 해주고 있을 뿐이다.
인구면에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국가로서 국민의 선거에 의해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할 수 있다는데 우선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민주정치를 수행하고 있는 나라가 인도가 아니냐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는 일본이 민주정치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최근에 와서 약간 변화를 보이고 있을 뿐 한 정당이 장기 집권을 하면서 한 당내의 정파사이에서 정권이 옮겨져 왔던게 아니냐고 반문하였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나라에서는 민주적 정치 발전이 많은 장애를 받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적 현실인데 인도는 가난한 나라이면서도 민주정치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으로 느껴졌다.
영국 제국주의 정부가 인도에 지방자치를 도입시킨지 벌써 115년이 지났고 인도인들이 꾸준히 합법적이고 점진적인 개혁과 민주정치 훈련을 쌓아 옴으로써 오늘의 훌륭한 민주정치를 발전시키는게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 1997년 10월 (109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