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기행(9)


동문특별강좌 인도기행(9)

작성일 2005-02-18

< 마투라의 힌두사원 >

이윤희 (사학21·문학박사·서일전문대교수)

--------- 마투라의 힌두사원에는 강인한 남성상과 둥근 가슴에 날씬한 허리와 묵직한 둔부를 가진 선정적인 여인상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고....

  아그라의 타지마할을 구경하고 뉴델리로 돌아오는 길에 마투라의 힌두사원에 잠시 들렸다. 사원 부근은 상가들이 무질서하게 밀집해 있고 깡마른 체구에 밤색피부, 커 보이는 눈망울을 가진 인도 남자들이 친절하고 성의있게 여행객을 맞이하였다.
  힌두사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훨훨 타오르는 숯불을 피워놓고 그 불오른 난로 위로 팔을 두르며 고행삼매에 빠져있는 사람, 사원을 향하여 온 몸을 길바닥에 엎드린체 그런 동작을 되풀이하며 경배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신을 괴롭히므로써 고행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름다운 타지마할은 대리석 건축물로 된 모든 부분이 상할가봐 신을 벗어놓고 맨발로 들어가도록 했었지만 힌두사원은 바닥이 그렇게 깨끗해 보이지도 않았는데 신을 벗고 들어가야했다.
  마투라의 힌두사원에서도 인도의 어느 사원에서나 느낄수 있는 그 유별나게 진한 향내음이 와락 끼쳐왔다. 입구 한쪽에서는 세명의 남자가 우리나라의 북과 같은 악기를 둥둥거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모양의 악기로 연주하고 있었다.
  인도의 음악은 선율악기와 타악기 그리고 주음을 끊임없이 연주하는 탐부라의 배경음으로 이루어 진다. 주로 현악기는 여성이고, 타악기는 남성으로 이해된다. 현악기는 굴곡이 많고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반면, 타악기는 힘차고 규칙적이며 주기적인 리듬을 연주한다. 만일 음악에서 선율이 여성이고 리듬이 남성이라고 하는 표현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남성과 여성의 결합은 서양의 음악과 인도의 음악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있다. 서양의 음악은 멜로디와 리듬이 하나의 실체 안에 섞여 들어가 있어 그 둘을 구별해 내기 어렵게 되어있지만 인도의 음악은 이 둘이 뚜렷한 모습으로 음악의 표면에 나타나 있어 쉽게 구별된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는 서로 결합해 하나가 되어야 할 반쪽이라는 생각과, 남자와 여자는 끝까지 서로 바라보아야 할 조화될 수는 있으나, 완전히 결합될 수는 없는 다른 개체라는 생각일 것이다.
  사원 내부에는 여러종류의 神像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었다. 아주 잘생긴 남자가 의젓하게 앉아 있어 사람인가 했더니 틀림없이 사람같은 신상이었다.
  나는 이 사원에서 우습기도 한것을 발견하였다. 힌두의 여러 신들은 대부분 사람들을 발로 밟고있는 형상의 그림을 하고 있었다. 두개의 팔 말고도 양쪽 어깨에 각 7개씩 팔이 달려 있고 얼굴은 앞뒤 양옆으로 4개나 달려있다. 아마도 내가 알고있는 시바神 인듯한데 얼굴도 하나보다는 4개면 더 잘보이고, 두개의 팔보다는 양쪽에 팔이 많이 달릴수록 더 힘센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떤 여신은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앞에서 빌고있는 여인들은 아마도 출산을 기원하는듯 보이고, 아름다운 여인상 앞에 엎드린 젊은 여자들은 미모를 주십사고 기원하는 것일까.
  힌두사원에 모셔진 신들은 이렇듯 여러가지 재미있는 형상을 하고있다. 두 세 종류의 단순한 색으로 처리된것도 있지만 대개가 현란한 무늬에 다양한 색상을 사용해서 꾸며놓고 있다.
  나는 마투라의 힌두사원에서 간다라 미술과 거의 같은 시기에 발달했던 마투라 미술의 뚜렷한 자취를 찾을 수 있었다. 간다라 미술의 불상이 마투라 미술의 힌두 신상에서 그대로 모방되고 있는 것이다. 마투라 조각은 남성적이고 힘찬 체격과 함께 우아하고 종교적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마투라 미술에서 가장 특징적인 작품은 아름다운 여인상 들이다. 대부분은 완전한 나체, 혹은 반라의 모습으로 둥근 가슴에 날씬한 허리와 묵직한 둔부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다 몸짓과 머리와 손발의 자세가 매우 선정적이다. 많은 미술평론가들은 마투라 미술을 간다라 미술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인도에 가 본 사람이면 누구나 힌두교의 에로티시즘에 한번쯤 놀라기 마련이다.
  갖가지 육감적인 크고 작은 조각들로 가득찬 곳은 카주라호의 사원이 대표적이지만 엘로라의 카일라사 사원등 어느곳의 힌두사원에서도 우리는 자극적인 남녀의 조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 힌두사원에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이루는 희한한 조각들이 포도송이 처럼 주렁주렁 조각되어 있어 놀랍고 진귀한 구경거리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을 구경하기 위해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인도 사람들은 힌두 사원에 왜 이렇듯 에로틱한 조각을 했을까?
  힌두교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4대 목표는 믿음으로 덕을 실현하는 다르마, 경제적 행복을 누리는 아르타, 안락을 누리는 까마, 그리고 영원의 구원에 이르는 모크샤 등이다. 앞의 세 개의 목표는 모크샤로 인도하는 과정이다.
  인생은 결국 宗敎, 財産, 官能의 잡착이며 모크샤는 달성이라는 것이다. 젊어서는 官能의 즐거움을 누리고, 자식을 낳은 다음에는 財産을 모으고, 그 다음에는 宗敎에 몸을 바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호텔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저녁식사를 할수 있는 시간은 지나버렸다. 커피숖에서 밀크를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데 한 서양여자가 밝고 예쁜 분홍색상의 인도 숄을 어깨에 두르고 앉아 있었다. 그 여자에게 그 분홍숄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던 중 그 여자도 내쪽을 보았던지 미소를 지으며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 쪽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그때 난 아그라에서 산 조그만 기념품을 꺼내어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와 참 예쁘다고 하면서 어디서 샀는가 물어왔다.
  그 여자와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자신은 노르웨이 사람이고 선교사업차 뉴델리에 머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인도 말을 배우기 위해 인도 어린이를 데리고 있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 체류기간을 석달 연장하여 일년 가까이 되어간다고 말하는 그녀는 선교사라기보다는 홀로 외롭게 인도를 찾아온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잘 되어있는 사회보장제도에 관해서 이야기 하다가 이 젊은 여인은 갑자기 유색인종 문제가 골치거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오랫동안 아시아·아프리카에 광대한 식민지를 보유했던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은 유색인종이 살고있더라고 하니까 노르웨이는 10년전만해도 소수였는데 근래에 아주 늘었다며 유색인종 다수가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이주한 사람들인데 특히 파키스탄인들이 말썽을 부린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면 해줄수록 파키스탄인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므로 노르웨이 청년들은 정부의 이민정책에 대해서 커다란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정착하여 성실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파키스탄인과 비교하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인도인이나 파키스탄인이 분명코 다를바 없을 터인데 이 백인 여인은 인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하는 것을 보니 이곳이 인도라는것, 주위에 인도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 같아 보였다.
  또 나는 분명히 한국인이라고 밝혔지만 중국인과 다를바없는 인종으로 보였는지 중국인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는 것이 아닐까.

-- 1998년 9월 (108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