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라틴아메리카 붐(Boom) 소설의 선구자이자 스페인어권 최고 권위의 세르반떼스상 수상(1978) 작가인 알레호 까르뻰띠에르의 대표작 <잃어버린 발자취>(1953)가 한국 시장에 상륙했다.
신간 잃어버린 발자취는 라틴아메리카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일상 현실에서 발견해낸 까르뻰띠에르 문학의 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책 속에는 20세기 중반 대도시의 삶에 지친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로 떠난 여행에서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드라마가 거듭되는 반전 속에 흥미롭게 펼쳐진다.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연에 밀착한 삶과 문화가 현대 서구의 지식과 교양으로 무장하고 사회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존재에게 던지는 충격은 '문명'과 '야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낳는다.
"미적 감동의 더 탁월한 형태란 단순히 창조물에 대한 훌륭한 이해에 있는 것은 아닌지 때로 스스로 묻게 된다. 어느날 인간은 옥수의 눈과 나비의 갈색 날개에서 알파벳을 발견할 것이고, 그러면 점박이 달팽이 하나하나가 늘 시였음을 경이로움과 함께 깨달을 것이다." -244P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며 세상 만물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 라틴아메리카의 진귀한 자연에 대한 묘사는 머릿속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라틴아메리카적인 것에 대해 일방적 찬사만 바치는 것은 아니다. 열대 밀림으로 들어가기 위해 처음 도착한 나라의 수도에서 주인공이 난데없이 맞닥뜨린 쿠데타와 유혈참사는 긴 세월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 시달려온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낙후한 도시 수준, 상존하는 위험에 떨어야 하는 일상과 마법 같은 자연과 신화의 세계가 공존하는 땅, 그 자체가 경이로운 현실이고 그것을 바로크적인 문체로 그려낸 것이 잃어버린 발자취인 것이다.
한편 저자인 까르뻰띠에르는 1945년 2년 예정으로 떠난 베네수엘라에서 대평원과 오리노꼬강 등지를 여행하며 ‘경이로운 세계’로서의 라틴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이 체험을 바탕으로 잃어버린 발자취 등 다수의 소설을 썼다. 잃어버린 발자취는 출간 3년차인 1956년 프랑스에서 ‘최고의 외국문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황수현은 경희대 스페인어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교(UCM)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학번역원, 서울대, 경북대 등에서 강의했고 현재 경희대 스페인어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위기의 시대, 인문학이 답하다』 『유토피아의 귀환』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즐거움』 『스페인 문화 순례』(이상 공저), 옮긴 책으로 『죽음의 모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이상 공역), 『라 셀레스티나』가 있고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El regalo del ave)을 스페인어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