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악화와 트럼프 리스크… 한국 경제를 흔드는 '퍼펙트 스톰'
반복되는 계단식 위기, '언젠가 괜찮아질 것'이라는 안일함 벗어나야
조기경보·자원확보·에너지전환 3대 과제, 국가 생존 위한 핵심 인프라 구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초슈퍼 사이클' 영향으로 수출 호조를 보이며 견조한 회복세를 이어가던 우리 경제가 하반기 들어 '트럼프 리스크'라는 커다란 복병을 만났다. 중동 지역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국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는 두 달 만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환율 역시 이달 들어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과정에서 유입된 대규모 달러 자금과 수출 기업들의 환전, 외국인 순매도 진정 등에 힘입어 일시적으로 1,400원대 후반으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통상 압박이다. 미국 행정부는 한국에 대한 강제노동 관세 12.5% 부과를 비롯해 주요 교역국에 10~12.5%의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국을 4회 연속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며 한국의 무역 흑자를 견제하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어 추가 관세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는 상황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번 위기가 단순히 일시적인 경기 둔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에너지, 물류, 통상, 금융이 한꺼번에 흔들리는 복합 위기로, 경제 시스템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이 가해지고 있다.

중동 정세 악화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다시 돌파한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항로가 동시에 불안해지면서 글로벌 물류망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원유 수입의 대부분이 이 해상로를 통과하는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코스피가 이틀 연속 급락을 딛고 반등한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코스닥,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개장부터 전장 대비 239.85포인트(3.31%) 오른 7,486.64로 출발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스닥도 전날보다 9.03포인트(1.15%) 오른 794.03이다. [사진=연합뉴스]
코스피가 이틀 연속 급락을 딛고 반등한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코스닥,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개장부터 전장 대비 239.85포인트(3.31%) 오른 7,486.64로 출발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스닥도 전날보다 9.03포인트(1.15%) 오른 794.03이다. [사진=연합뉴스]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경고음이 뚜렷하다. 수출 기업들은 선편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으며, 우회 항로를 이용하면서 물류 운임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제조업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유연탄과 LNG 가격 상승은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고, 이는 생산원가를 끌어올린다. 석유화학 업계 역시 원료 확보 불확실성으로 인해 공장 가동률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미국발 관세와 환율 압박이 더해지며 기업들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 선을 위협받으면서 '고유가·고물가·고환율'의 3중고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정책적 대응 여력도 많지 않다. 환율을 방어하려 해도 대외적인 압력이 거세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이는 가계의 이자 부담을 늘리고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동반한다. 이러한 고통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안일한 대응이다. 이제 공급망 위기는 일시적 충격이 아닌 상시적 위험으로 자리 잡았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지금의 중동 위기까지,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위험의 기준선 자체가 상향 조정되는 '계단식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예전 상태로 회복되던 시대는 끝났다.

따라서 공급망 안정은 단순한 기업의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국가 생존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핵심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오만 무산담 반도 부근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오만 무산담 반도 부근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첫째, '조기경보 시스템'을 국가 인프라 수준으로 구축해야 한다. 특정 원자재나 주요 물류 경로에 이상 징후가 발생할 경우, 즉각 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둘째, 에너지와 핵심 자원 확보 방식을 다변화하고 고도화해야 한다. 단순한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 해외 자원 개발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에너지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 재생에너지,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을 균형 있게 확대하여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중동 분쟁을 직접 멈추거나 미국의 통상 정책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외부 충격을 견뎌내는 내성은 스스로 키울 수 있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자원 비축과 공급망 안정화 투자에 들어가는 자금을 단순한 '낭비'나 '지출'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위기가 닥쳤을 때를 대비하는 국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지금 맞닥뜨린 위기는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위기가 아니라, 앞으로 지속될 '새로운 뉴노멀(New Normal)'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 방식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공급망 안보를 국가 전략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 그것만이 한국 경제가 몰아치는 거센 파도를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가는 유일한 대응책이다.

 

전규열

경영학 박사
폴리뉴스 편집국장 겸 부사장
국회입법지원위원
서경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중소벤처기업부 자문위원(전)
공감신문, 뉴시안 대표이사(전)
<저서>이것만 알면 경제인싸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