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바다와 영덕 게 >
동 트기 전 사방이 어두운데 집을 나섰다. 쌀쌀한 찬 공기 추위도 가보련 했던 곳을 향하는 잠재의식이 있어선지 견딜만했다. 첫새벽에 송파구를 벗어나고 있다. 도로에 행인이라곤 보이지 않는 적막하리만치 고요한 새벽은 그 자체가 새벽의 선물이다. 간밤 살포시 내린 하얀 잔설이 앙상한 나뭇가지와 스산한 겨울풍경에 더 세심히 눈길을 가게 한다.
겨울바다가 주는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리며 동해안으로 향한다. 동해 특유의 짙은 에메랄드색 바다의 아늑하고 광활함에다 겨울엔 세찬 파도가 일어 바다의 넓고 깊은 아름다움은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의 풍광이다. 동해의 파도와 바람은 종종 자유와 고독,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요소로 등장하여 한국문학에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한다.
지난여름 그 무덥던 아니, 거리에선 숨이 막힐 정도로 뜨겁던 열기를 동해 바다가 삼켜버린 것인가? 하늘과 바다로 끝이 보이지 않는 동해바다의 넘실거림은 뜨거워진 지구에 서늘한 바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는, 기후변화 위기 앞에서 한반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동해바다의 몸짓인가?
아침의 동해바다는 태고 적에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인체 충분히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코를 얼얼하게 하는 세찬추위는 장갑을 끼었건만 다시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어야만 했다. 하늘과 바다만이 가득한 곳, 쉼 없이 출렁이는 동해의 풍광에 나그네는 매료되고.
동해의 가장 큰 신비는 그 깊이에 있지 않을까.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급경사 해저 지형은 동해를 유난히 푸르고 어둡게 만든다. 날씨와 빛에 따라 색이 극적으로 변하고, 같은 장소에서도 매 순간 전혀 다른 바다를 보여준다. 잔잔하던 수면이 순식간에 거칠어지고, 고요 속에서 갑자기 파도가 솟구칠 때, 동해는 살아있는 거대자연으로 다가온다.
동해안 제일의 해변이며 전국 최고의 청정해변으로 유명한 망상해변은 꾸밈없이 펼쳐진 드넓은 백사장, 짙은 푸른빛의 힘찬 파도가 솟구치고 가라앉는 무언의 힘을 드러낸다. 검푸른 바다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를 때의 일출 장면은 동해만의 상징적인 장엄하고 결연한 의지까지 느끼게 한다.
거칠지만 강한 파도소리는 마음속을 비워내고 정리에 이르게 한다.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결코 같은 모습으로 머물지 않는 바다. 그래서 동해는 휴식의 장소이고 사색의 장소이기에 수많은 문인 예술가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유일 게다.
재직시절, 학생들과 대형버스 두 대로 봄과 가을 년 간 두 차례 전국의 문화재 고적답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할 때는 이번처럼 느긋하게 동해에 머물지 못했었다. 이곳에 들릴 때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대왕암을 바라보곤 했다. 문무대왕은 신라 30대 왕으로 삼국통일을 완성한 왕이었고 왕은 죽기 전에 “내가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 동해에 장사지내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왕이 유해는 동해바다에 뿌려졌고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은 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바다를 바라보는 절 감은사를 지었다. 감은사에서 바다를 보면 대왕암이 보이고 불교의 힘과 용이 된 왕의 전설은 나라를 지킨다는 상징성이 담겨있어 그냥 바다가 아니라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약속이 담긴 바다”처럼 느껴진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겨울 해는 유독 달리기가 빠르다. 해가 다 사라져버리기 전 노을이 남아있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아도 신비하고 아름답고 모든 걸 다 품어 안을 수 있는 자연의 품속 바다는 여전히 넘실거리고 난 눈망울 속에 가슴속에 동해바다를 담아버렸다.
촛대바위(능파대)를 보고 싶었다. 조선시대 문신 한명회가 동해 촛대바위와 그 주변의 해안 경치를 보고 감탄하여 붙인 이름이 능파대(凌波臺)로 흡사 미인이 가볍고 경쾌하게 물결 위를 걷는 모습을 비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가 기울 무렵 불그스레한 일몰이 잠자러 들어가듯 동해바다로 잠식되는 배경에 이 촛대 여신은 말없이 어둠을 밝히며 서 있어 신비하였다. 바다는 늘 분주하다. 파도가 스칠 때마다 깎이고 닳았을 텐데도, 촛대바위가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지켜온 장구한 세월 앞에서 난 또 하나 동해 지킴이 수호신이라는 영감이 스쳐갔다.
만경대(萬景臺)는 촛대바위로 유명한 추암 해변 인근에 있다. 광해군 5년 김훈이 벼슬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와 창건한 정자로서 조선시대 선비들의 찾는 명소였고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인데 과연 그럴 만하다. 서쪽으로는 동해시의 모산인 장엄한 두타산, 동쪽으로는 금강산 관광선이 출항하는 동해항, 아래로는 동해의 깊은 바다, 앞에는 기암괴석들이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에 강릉 삼척 동해 일대는 유람문화가 발달했었고 “만경대는 동해를 처음 마주하는 곳” “바다의 기세를 느끼는 곳”으로 묘사되었다. 이곳은 해돋이명소, 사진명소로도 유명하다.
만경대는 해안 절벽 위의 바위 지형인데다 해 뜰 때 압도적이라 예부터 명승지로 꼽혔다. 만경대에 오르면 절로 시심이 흐른다. 그림도 그려 남기고 싶다. 동해의 기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만경대에 올라 동해를 하염없이 바라보노라면 세상의 번뇌를 씻고 마음을 다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만경대엔 신선이 내려와 놀다 갔다는 전설, 바다를 지키는 용왕과 관련된 바위 전설, 파도가 너무 거세서 사람의 욕심을 경계하는 장소로 여겨졌다는 전설이 있다. 이 모든 중심엔 불가항력의 자연 앞에서 인간이 겸손해진다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는가. 만경대 정자에서 그냥 떠나기 아쉬워 몇 줄 적어보았다.
< 만경대에서 >
동해 푸른 바다 발아래 펼쳐지고
하늘과 바다가 하나인 듯 보여 지네
두타산 그림자는 바다에 드리워지고
전천강은 유유히 흘러만 가고
푸른 소나무 숲은 바람 따라
세월의 풍상을 노래 하니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이곳에 이르러
파도소리에 시름이 씻겨 내려가고
온갖 시비와 득실이
저 물결 속으로 흩어지는 듯하다
수려한 경관에 마음 뺏겨
쉬이 가지도 떠나지도 못 하네
마음은 끝없이 자연을 노래하고
저 파도 위 갈매기처럼 훨훨 날아보네
영덕하면 동해안 바다랑 먹거리가 떠오르는 지역으로 동해가 바로 앞이라 바다풍경이 시원하고 조용하여 한적한 느낌이다. 이곳엔 선사시대 유적이 남아 있어서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던 지역이다. 삼국시대에는 주로 신라의 영역이었고 동해안 해로를 따라 어업 교역의 거점이었다. 수산업과 염업이 발달되고 조선시대에는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수군진영, 봉수대 해안 방어시설 등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영덕 푸른 바닷길은 바다와 어촌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해상풍력단지를 보니 그 옛날 네델란드에서 보았던 풍차가 떠오른다. 대게는 겨울이 제철이어서 더 대게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대게요리 전문점인데 가격이 꽤 높았다. 박달대게가 최고등급으로 가장 높은 가격인데 한 마리에 30만원 안 밖이고, 그 다음 꼽는 대게는 마리당 4만원, 홍게는 5마리에 10만원이라 한다.
골고루 맛보았다. 오래전 발리에서 맛보았던 바다가제와 맛은 비슷한데 가격은 엄청 비싸다는 결론이다. 박달대게를 맛보기 위해 다시 이곳까지 찾아오긴 쉽지 않고, 집 떠나 여행길에 오르면 구경하는 즐거움, 그곳의 특산물을 맛보는 즐거움을 누려야 제대로 된 여행이라 할 수 있겠다. 오랜만에 찾아간 동해여행에서도 이러한 기본요소가 충족되었으니 축복받은 여정이라 할 수 있지 않는가.
2026년 1월.
이윤희(사학69) : 영국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교수
(현) 여행작가, 시인
지방자치단체 초빙특강연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서울지방법원 민사재판조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