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기 경희대 명예교수

나는 태어나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은혜를 받고 살아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어른은 조영식 총장이다. 총장이 많은 업적을 남기고 간지가 어언 9년이 되었으며 금년이 탄생 100주년이 된다.
필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조교를 할 때 총장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어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원을 거쳐 벨기에 루벵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총장의 각별한 보살핌과 지원을 받아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다. 조 총장은 8년의 유학 기간 내내 월급(본봉)을 지급해줬다. 이런 혜택은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이런 큰 혜택을 어떻게 한시라도 잊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그러나 조 총장의 은혜를 천분의 일도 갚지는 못해 늘 죄송하게 생각했다.
필자는 만학을 했다. 전임강사 시절에 미국에 갔고 귀국 후 몇 년 있다가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 이미 정치학 분야는 60년대에 외국을 다녀오지 않고서 전임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운이 좋아서 훌륭한 조영식 총장과 인연을 맺고 필자가 희망한 학문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조 총장은 경희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 꿈을 가지고 미국과 유럽의 여러 유명대학을 순방했다. 대학을 순방하면서 그 대학들이 어떤 교육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유명해졌고 어떤 인재들을 길러내었나를 살펴봤다. 첫 번째 방문한 대학이 시카고 대학이었다. 시카고 대학은 젊은 로버트 핫친스 총장이 짧은 기간에 유명한 대학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저서 「Utopia of University」를 숙독하셨다. 조 총장은 30대 초의 핫친스 총장의 모델과 같이 경희 대학을 발전시킬 야망을 가졌다. 다음에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 대학 등을 돌아봤다. 지금 중앙도서관은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그런 모델로 도서관을 짓겠다고 도보로 재면서 좀 더 큰 건물을 지었다. 평화의 전당은 브뤼셀의 「센 미셀쳐치」를 보고 가장 아름다운 강당으로 지었다.
조 총장은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항상 한 단계 뛰어넘는 생각을 가지고 반드시 실천했다. 공자는 ‘君子는 不器’라고 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 큰 그릇이나 작은 그릇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공자 자신은 어디나 쓸 수 있는 적응력을 가진 그릇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자기는 大人이란 뜻이다. 조 총장은 공자가 말하는 大人이다.
유럽에 가서는 옥스퍼드와 캠브릿지대, 파리대, 벨기에 루벵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대 등 유럽의 역사 깊은 여러 대학과 그 밖에 새로운 대학인 엑세스 대학과 자유 베를린대학을 방문하면서 많은 것을 구상했다. 유명한 대학들의 브로슈어와 대학에 관한 서적들을 60여권이나 구입했다.
필자가 조교 시절 어느 날 총장실로 불렀다. 내일 아침 일찍 명륜동 자택으로 오라고 해서 방문했다. 서재로 가더니 요즘 읽은 대학에 관한 책들을 내놓으면서 “대학을 운영하는 총장이나 가르치는 교수, 배우는 학생들이 대학의 이념과 사명을 모르고 운영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나간다”면서 “이렇게 되면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세계관과 인생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교육 입국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총장의 그 말씀이 필자의 머리에 꽉 각인됐다. 민군이 교수가 되려면 대학에 관한 책을 읽고 앞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에 가서 공부 하라고 했다. 필자는 총장이 대학을 설립한 뚜렷한 교육철학을 처음 깨달았다. 한국의 총장들 중 대학의 이념과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는가? 언듯 그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갔다. 필자는 총장의 철학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민군은 우선 각국의 전통 있는 대학의 역사와 설립목적과 이념과 사명을 공부하고 그 내용을 매주 목요일 아침에 와서 설명하라고 했다. 그리고 총장은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보고 느낀 것을 말씀한다고 했다. 약 6개월간 명륜동에 가서 총장의 대학관과 문화세계의 창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필자는 대학의 역사와 대학의 설립목적과 사명 그리고 로버트 하친스와 오드리데카 까세트(스페인의 교육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과 그 밖에 많은 대학 관계 내용을 말씀드렸다. 총장은 경희대학의 교훈을 학원의 민주화, 사상의 민주화, 생활의 민주화 그리고 경희 정신으로써는 창의적인 노력, 진취적인 기상, 건설적인 협동 정신을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켜 큰 인물을 키우겠다는 목표였다. 총장은 문화세계의 창조는 20대 후반에 책을 쓰고 학교 교훈과 경희정신은 구미대학을 순방한 뒤에 보다 구체화했다.
경희대학은 대학의 교훈에 따라서 60년대부터 민주주의론이 교양 필수과목이 됐다. 경희대학에서 배우고 나가면 선량한 민주시민이 돼 진취적인 기상과 협동 정신을 발휘해 조국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며 경희 정신을 강조했다. 한국의 권위주의 시대를 넘어서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책을 냈다. 그 책을 박정희 대통령이 읽고서 총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장시간 한국의 발전상을 함께 토의했다고 한다. 60년대 새마을운동의 뒷받침이 되는 이론을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책에서 제공했다. 총장이 만든 밝은 사회운동도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책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총장은 휼륭한 교육자이며 평화주의자이며 사상가이다. 평소에 많은 책을 보고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다. 그리고 세계대학총장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하면서 한국을 세계에 넓게 빛나게 했다. 필자는 경희대 재직 중이나 정년 후에도 총장의 일을 도우며 곁을 지켰다. 총장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나의 할 도리이며 그분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총장은 필자에게는 인생관과 세계관을 많이 가르친 참스승이다. 필자는 조영식 총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다시 표한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