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 꼴불견이 설치면 자유의 나라 잃는다.


동문기고 안호원칼럼- 꼴불견이 설치면 자유의 나라 잃는다.

작성일 2014-11-27
꼴불견(犬)이 설치면 자유의 나라를 잃는다. 
 
색안경을 끼고 짖어대는 꼴불견(犬)의 최후
 
[안호원 푸른한국닷컴 기자]흔히 사람들은 인간 같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두고 ‘개만도 못한 X’ 이라고 욕을 한다.사람으로서 그런 욕을 먹는다면 치욕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인격을 무시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개 두 마리를 키운다고 한다. 이 두 마리의 개는 각기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한 마리는 ‘선입견’(犬)이고 또 다른 한 마리는 ‘편견’이라고 부른다. 얼핏 들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 이름만큼이나 가슴이 무척 아프다.

우리 인간은 모두 그런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거대한 감옥 속에 갇혀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좋게 말해서 ‘선입견’과 ‘편견’ 이라는 것이지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이것들은 ‘교만’(驕慢)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누가 뭐라 해도 ‘교만’은 모든 죄(罪)의 근원이 되는 악(惡)이다.

그런데 이런 교만의 두 마리 개를 쫒아버리는 또 한 마리의 특별한 개가 이 세상에는 존재 하고 있다. 이름이 다소 길기는 하지만 그 이름 하여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긴 이름의 개다. 아무래도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 직접 보지도 못했으면서 마치 본 것처럼 한 번 들은 이야기로 상대방에 대해 일방적인 판단은 자칫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 특별한 개의 애칭은 ‘일견’이라고도 부른다. 그런 ‘일견’을 키운다면 선입견과 편견을 제압하고 또 조절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견’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잡견인 ‘꼴불견’이 설치는 추악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꼴불견들이 천방지축 날뛰며 자유인들을 허탈감에 빠지게 하고 있다. 비상식이 상식을 뒤엎으며 ‘정의’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런 족속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대통령이나 상대방을 비방하며 막말을 마구 쏟아놓아도 지적은커녕 맞장구를 치며 제 새끼 감싸듯 꼴불견들을 치켜세우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름 그대로 ‘오물’ 을 뒤집어 쓴 꼴불견들이 들이 벌판(野黨)에서 난장판을 벌리며 아름다운 자연(社會)을 훼손시키고 있다. 꼴불견들의 특징은 자기들의 추태는 ‘그럴 수도 있고 또 정의와 진리’ 라면서도 상대에게는 ‘그럴 수 있느냐며 부정이고 독재’ 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면 꼴불견들이 말하는 정의는 전적으로 개인 중심적이다. 저들은 정의라는 이름을 내세워 행하는 절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도 너무도 뻔뻔하다. 그러니 꼴불견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남의 추한 얼굴은 보면서도 자신들의 추한 얼굴은 안타깝게도 보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호랑이를 죽일 때는 그것을 사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호랑이가 인간을 죽일 때는 사람들은 그것을 재난이라고 말한다.” 문득 버너드쇼의 말이 떠올랐다. 최근에 성공회대 교수가 쓴 칼럼을 보며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칼럼에서 한국의 공공성이 OECD 국가 중 가장 꼴지 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며 공직자들은 공익의 대변자가 아니라 정권의 하수인이 되었다고 현 정부를 비난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사건을 수사 지휘한 검찰총장이 찍혀서 쫓겨나고, 과거 국가범죄의 피해자에게 무죄를 구형한 검사가 오히려 명령 불복종으로 징계를 당하고, 경찰의 불법 대선 개입을 고발한 경찰 간부가 사표를 쓰고, 군의 내부 부정과 비리를 고발한 엘리트 장교가 진급에서 탈락하고, 총리실 불법 사찰을 고발한 양심적 공무원이 파면되고, 황우석의 거짓을 폭로해 나라의 체면을 세웠던 소신 있는 방송사 PD들이 해고, 좌천을 당했고, 자기 직업 세계에서 동료들에게 존경받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하나 같이 조직의 명예를 훼손 했다는 이유로 밀려나 수난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똑같은 상황에서 판단의 기준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 가. 과연 그 교수가 지적한대로 그들이 정의롭고, 동료들에게 존경을 받았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 이게 바로 편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음 속 깊이 이 같은 편견을 갖고 있다 보니 이렇게 되는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은 문제가 많고 국가 기본위계질서를 무너트린 꼴불견들이다. 검찰총장도 그렇고 경찰간부도 그렇다. 정의롭지 못한 사실들이 다 언론에 드러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후퇴라고 하는 것은 마음속에 선입견이 웅크리고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이외도 노인 비하 발언을 해서 여론이 들끓어도 사과하지 않는 야당 정치인, CCTV에도 다 기록됐는데도 폭행 방조를 극구부인하면서도 적반하장으로 경. 검찰을 훈계하는 딸을 둔 어머니인 의원, 살인교사를 하고도 뻔뻔함을 보이고 있는 시의원, 천안 함 피폭 조작설을 유엔까지 가서 폭로한 부류들,'대한항공 폭파 간첩 김현희‘사건을 정부조작이라며 고발한 모 정당 대표의 남편 등등, 이들이야말로 마음속에 꼴불견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 교수는 또 논어를 들먹이며 ‘소인’ 의 특징을 나열했다. “군자는 두루 사랑하고 치우치지 않으며, 소인은 치우치고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 “소인들은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꾸며서 합리화 한다.” “군자는 평탄하여 여유가 있고, 소인은 늘 걱정스러워한다.” 등등. 즉 소인들은 언제나 자기 이익이 행동의 동기이기 때문에 이익이 침해되고 권력을 잃을까 언제나 초조 불안해하고,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거나 편법을 저질러 왔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나 조직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자신에게 아부하고 충성하는 사람만 편애하고, 자신의 허물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기피하는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 한다고 했다.

또 그는 칼럼에서 상을 받을 받거나 발탁되어야 할 사람이 처벌당하고, 처벌당해야 할 사람들이 거꾸로 출세하면 사회와 국가는 지탱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해석은 다르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로 그 교수가 두둔하는 자들이야말로 처벌을 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고, 출세하고, 영웅처럼 우쭐거리고 있는데도 그는 꼴불견이 억울하게 당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들이 소인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교수에게 짧은 말을 전하고 싶다. 사람들에게 “+” 표시가 그려진 카드를 내밀면 수학자는 ‘덧셈’ 이라고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 이라고 하고, 목사는 당연히 ‘십자가’ 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 라고 하고, 간호사는 ‘적십자’ 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 라고 바로 대답한다.

모두가 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다르게 보는 것이다. 또 볼록렌즈를 끼고 사물을 볼 때나 오목렌즈를 끼고 사물을 볼 때는 사뭇 다르다. 색 안경을 끼고 있는 이상, 제 색을 볼 수 없다. 색 안경을 벗을 때 비로소 밝은 세상, 푸른 하늘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야당은 그동안 꼴불견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재미를 톡톡히 보았던 경험이 있다. 그런 재미에 맛을 들이다보니 건국 이래 평화적 정권교체를 경험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꼴불견들이 증오가 배어있는 섬뜩한 말들을 마구 쏟아내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어찌 된 까닭인지 많은 사람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관심인가. 어느 당이든 정권을 잡는 것은 대개 전(前) 정권의 실책 때문이지 자신의 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아울러 국민이 선택하는 정당은 좀 더 나아지자고 하는 것이지 한(恨)을 풀고 피의 숙청을 하라고 뽑아주는 것은 아니다.

이참 에 한마디 하자면 이 나라는 누가 뭐라 해도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반공국가다. 초대대통령인 이승만은 급진진보공산주의에 맞서 보수주의를 건설했고, 5.16군사혁명주체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보수주의 개발독재로 이 나라를 지키고 산업화, 근대화를 일궈내면서 이 나라를 부강해 한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박대통령의 서거 후 보수 세력이 국민의 기대를 배반하면서 보수주의가 시련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실용이라는 엉성한 이념 때문에 보수주의가 더욱 더 위기를 맞게 되면서 꼴불견들이 나라가 망하는 것도 모르는 채 물고 뜯으며 짖고 만 있다.

이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혁의 보수가 다시 태어나 원래의 가치를 되살리고 현실적인 적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꼴불견들을 멸종시켜야 한다.

지금처럼 선입견, 편견, 꼴불견 등 잡견들이 설치다보면 자칫 선조들이 피로 지킨 자유의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