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나뭇잎의 교훈


동문기고 안호원칼럼-나뭇잎의 교훈

작성일 2012-12-13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음식점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또 만났다. 이날 안씨는 약속장소로 가기 직전 “새 정치와 정권교체는 제 출발점이자 변함없는 의지, 그런 국민적 소망 앞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겠다”고 말을 했다.

20여분간의 회동을 마친 두 후보는 짧은 성명을 밝힌 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 취재진이 “서로 포옹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안씨는 그 특유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응하지 않았고 문 후보가 먼저 다가가 팔을 내밀었으나 안씨가 응하지 않아 허리를 어중간하게 감싸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았다. 당사자들은 단일화가 되었다고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민망해 보였다.

지난 가을 계룡산에 있는 선산(先山)을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 계룡대로 가는 길목에 단풍나무 가로수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빠알갛게 물들어 가는 단풍에 감탄하지만 근육질 모양으로 우람하게 뻗어 올라간 강인한 느낌의 몸체도 참으로 멋지게 보인다. 그런데 태풍 탓일까. 허벅지 굵기만한 단풍나무 가지가 보기 흉하게 꺾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강한 태풍에도 나뭇잎은 안 떨어지는데 어떻게 해서 허벅지만큼 굵은 가지가 왜 부러졌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쉽게 풀렸다. 부러진 부분을 보니 벌레가 먹은 것이었다. 그래서 약해진 부분이 태풍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고만 것이다. 낙엽이 떨어진 주변을 살펴보니 떨어진 나뭇가지는 대부분 죽은 가지들이었다.

나무는 태풍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도 제 몸에 필요없는 것들을 떨어뜨리며 몸통을 살리는 기회로 삼는 지혜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살아있는 여린 나뭇잎들은 끝까지 놓치지 않고 돌보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자연의 섭리, 대자연의 창조주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늦가을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지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잎인데 그 강한 바람에도 어미나무는 어린 나뭇잎을 거의 내주지 않고 품고 돌본다.

아직 이별의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무는 필사적으로 어린 나뭇잎을 지켜내고 있다. 그리고 그 때가 왔을 때는 미련없이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때를 아는 나무, 때가 되었을 때 미련없이 떨어지는 나무, 스스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가 꽃을 피우는 나무. 이런 나무가 참으로 아름다운 나무라 할 수 있다.

나무는 오직 태양과 물에 기댈 뿐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이 만들어내고 자신이 키워나간다. 완벽한 자가공장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태풍도 이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비바람을 맞고 방치되어 껍질은 썩거나 벌레 먹어 볼품없는 나무일지라도 그 속은 살아 있는 듯 고유한 빛깔과 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며칠인가 잠행을 거듭하던 안씨가 문후보 상면에 앞서 캠프해단식을 하면서 현재의 대선 국면을 흑색선전, 이전투구,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구태정치라고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진영을 싸잡아 비난을 퍼부었다. 새 정치를 바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또 한번 텃치를 하며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죽은 나무를 보고, 안씨의 돌출행동을 보면서 ‘겉을 보고 속을 판단할 수는 없겠구나’하는 만고의 진리를 확인하는 순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옛날과 달리 나무땔감을 쓰지 않는 시대에 나뭇가지는 처치곤란한 쓰레기 신세가 되지만 정작 나무 자신은 자신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안씨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물론 안씨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선은 권력을 놓고 벌이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싸움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나를 세우는 포지티브 전략도 중요하지만 왜 상대가 되면 안되고 내가 되어야만 하는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초점을 맞춘 네거티브 공세도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박, 문 후보진영의 싸움을 모두 구태정치로 몰아붙일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

정치쇄신은 물론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것은 새 정치고 새누리당이 하는 것은 헌 정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새 정치, 기존 정치를 비난하던 사람이 그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젊은 기개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정치는 다르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치이다.

자신의 채워져 있지 않은 속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는 새 정치, 정치쇄신을 주창하면서도 기존 정당에 손을 들어주는 행위는 한번쯤은 생각해 봄직하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 같이 유권자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단풍은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그 단풍의 계절이 지나면 추운 겨울이 오게 된다. 바라기는 스스로 떨켜층을 만들어내 잎을 떨구고 겨울을 맞이하려는 나무의 자연스러운 삶을 닮는 인생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한마디 더 하자면 너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씨의 돌출행동으로 인해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해 자칫 엉뚱한 지도자가 탄생되어서는 안된다. 이 같은 실수는 서울시장 선거 한번으로 끝나야 된다. 진정 아낌없는 나무가 되겠다면 사심(私心)부터 미련없이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