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 더 많이 내줄수록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동문기고 안호원칼럼- 더 많이 내줄수록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작성일 2012-10-11
우연히 TV를 시청하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학자나 기술자도 아니고 유명한 연예인도 아닌 말 그대로 평범한 생활을 신의 경지에 달할 정도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출연해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제품을 포장하는 일을 비롯해 야적장에서 타이어를 굴려 일정한 자리에 쌓아 올리는 일, 주방에서 하는 밀가루 반죽의 두께, 메추리알에 무늬를 입히는 일, 칼로 써는 두부의 크기 등등 세상의 모든 일이 이 프로를 시청하다 보니 모두가 묘기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신기하기도 하고 열린 입이 닫히지를 않는다.

그런 달인들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겹친다. 그러면서도 그 달인들이 존경스러워 지기까지 한다. 나도 오래하다 보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데 이르자 미리부터 겁이 나는 게 자신이 없다.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의 주어진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밝고 건강한 표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국 곳곳에 있던 새로운 달인들이 소개될 때마다 ‘정말 대단하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창의성과 능력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도대체 어떻게 하다 저런 달인이 되었을까. 실제로 보면 모두가 다 어렵게만 보이고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가졌지만 그런 우려는 한갓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할 정도로 숙련되기까지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저런 경지에 이를 정도가 되었을까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생활의 달인’들이 보여주는 상상력과 탐구심에 새삼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비교가 되는 게 있다. 달인의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다. 그 동료들도 다 똑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달인과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자신의 마음에 달렸으리라 본다. 자신이 갖는 직업관과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 상사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것과 자발적으로 일을 만들어 일하는 것은 크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똑같은 조건, 똑같은 일이라도 능률적인 면에서는 차이를 둘 수 있다. 모르면 몰라도 달인들이 열심히 일할 때 일부 동료들은 그 기술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시기하고 마치 남의 일 보듯 비웃는 등의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은 특이한 사람, 어떻게 보면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굳이 저렇게까지 무리하게 땀흘려가며 부지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어쩜 속내 마음인지도 모른다. 똑같은 사람인데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70년대 중반 덕소에서 관리부직원으로 생산부에서 잠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그 시절에 시급제 생산직 직원(당시 공돌이, 공순이)들을 관리하다 보면 어떤 직원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땀흘려 열심히 일하는가 하면 또 어떤 직원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기도 하며 휴식을 취한다.

물론 시급제이기 때문에 그들은 시간만 때우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틈날 때마다 교대시간이 지났어도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른 직원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기술을 궁리해내고 나름대로 창의성을 발휘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밝은 표정이다. 그들이 바로 요즘 말로 ‘생활의 달인’인 것이다.

신의 경지에 기술로 승화시킨 달인은 자기를 낮추며 겸손하기까지 하다. 대단한 그 기술을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하나같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 “별게 아닙니다. 누구라도 저처럼 오래하면 다할 수 있거든요” 아니다. 그들이 이처럼 숙련된 기술을 습득한 것은 나름대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여러방법으로 기술을 궁리하고 개발했기 때문이다.

또 있다. 달인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함께 늘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달인의 낮추는 자세와 배려하는 마음과 겸손함이 내 마음에 각인된 것은 요즘 며칠사이 일어난 여러 상황들과 비추어 생각할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 경우 남에게 예의를 지킨다고는 하지만 나 자신을 낮추지 못했고 겸손하지도 못하다. 불쑥불쑥 교만함이 드러나면서 자신을 내세우려는 경우도 허다했다. 며칠 전에도 고등학교 총동문회에서 ‘모교를 빛낸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선정되어 모교 60년사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이런 상을 받기 전에도 46여년간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상을 탔기 때문에 이번 일도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가족들이 예외로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많은 상을 타기도 해서 그렇지만 그렇게 자랑스러울 만큼 일을 했느냐 하는 데에서는 할말을 잃었고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부끄럽기까지 했다. 살다보면 우리 인간들이란 별거 아닌 것 갖고 자만심을 내세우고 탐욕으로 가득찬 아상(我相:자신에 대한 오만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생활의 달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을 비워서 일게다.

요즘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강남 스타일’도 그렇다. 억수로 돈을 벌기 위해 죽기살기로 덤빈 것이 아니라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즐긴다는 기분으로 어깨 힘을 뺐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대박이 터진지도 모른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 같다. 작심하고 그럴 듯하게 쓰려고 하면 오히려 더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냥 주제만 정하고 펜 가는대로 쓴다는 기분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쓰면 그게 더 잘 써진다. 생각이 많으면 글 쓰기가 더욱 어렵다. 달인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불에 달궈진 쇠를 많이 두들길수록 제대로 된 칼이 나오듯이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겸손함을 통해 자신을 다듬고 수련해야 할 것이다. 옛말에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낮춘다고 했다. 자신의 직위가 높고, 학위가 높을수록 좀 더 겸손함과 베풂과 나눔을 가슴 속에 차곡차곡 채워나가며 마음을 비워야 하리라.

주변에 보면 목에 힘을 주고 눈에 불을 켜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뭔가 일을 내보겠다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날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대권주자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바꿔야 한다’고 난리다. 지나치게 아등바등해서는 될 일도 안된다. 마음을 비우고, 목에 힘을 빼고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지다 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많이 내줄수록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