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


동문기고 안호원칼럼-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

작성일 2012-09-22
우리 정치권은 한마디로 ‘미다스의 입’을 갖고 있다. 정치권이 입을 열면 진실, 정의가 숨어버린다. 모든 사회적 이슈는 정쟁(政爭) 깜으로 바뀐다. 일단 정쟁에 휘말리면 진실과 거짓이 뒤엉켜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어느 것이 틀린 것인지 모를 정도로 혼란이 이어진다. 불과 대선을 90여일 앞둔 정치판을 보면 이 같은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특히 정치인을 보면 얼굴이 철판을 깔아 놓은 것처럼 두껍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체면과 양심, 상식을 염두에 두면 정치를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면몰수하고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철판을 깔아야 정치인? 그 보다는 개(犬)와 더 닮은 것 같다. 이웃집 개가 짖으면 덩달아 짖고, 그만 짖으라고 해도 계속 짖고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꼬리부터 흔든다. 또 무서운 사람을 보면 꼬리를 내리는 게 닮았다.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표(票)다. ‘국민을 위한’은 사탕발림으로 하는 소리다. 표가 없으면 여의도 입성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납작 엎드려 득표에 도움이 될라치면 무슨 짓이라도 망설이지 않는다. 인기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출마자들이 광대짓과 바보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유권자들에게 잊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개처럼 자꾸 짖는다. 또 사건을 만들기도 하면서 존재를 증명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개와 닮은 것이 또 있다. 물고, 뜯고, 짖고, 땅에 떨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주워먹고 보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바로 개(犬)와 닮지 않았는가. 그런 멸시를 당하면서도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도 못 풀 수수께기인 것 같다.

그런데 또 12월 대선을 앞두고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왜 시끄럽게 짖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짖을 기회가 왔으니 짖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아직 건재하고 힘이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곧 있을 대선에서 한 표라도 더 얻는 것이다. 열심히 짖어야 듣는 사람들도 있고 인기도 올라간다. 그러니 남이야 뭐라하든 앞으로도 계속해서 열심히 짖을 것은 강 건너 불 보듯 뻔하다. 과욕이 화(禍)를 부른다는 것을 잊은 채 마냥 짖기만 한다.

“한번 더 하고 싶은 욕심이 났어요. 하지만 진짜 한번 더 했으면 난 인간적으로 완전히 파멸했을 거예요. 건방지다 못해 교만에 꽉 차서 내가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것입니다.” 미 연방 하원의원에 내리 세 번이나 당선되고 백인들만 사는 동네에서 시장까지 되었던 김창준 박사가 네 번째 출마해 낙선된 후 한국 모 방송국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예로부터 멈출 때 멈추고, 그칠 때 그칠 줄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요 지략이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칼집이 없으면 시퍼렇게 날 선 칼날에 내가 베이고, 브레이크가 고장나면 달리는 차가 사고를 내는 법이다. 승승장구 잘 나갈 때라도 자신을 제어할 능력이 없으면 그 순간부터 모든 화의 근원이 되는 것은 세상 이치다.

일단 3자 대결구도로 된 대선판 모두가 요란스럽게 짖어대지만 생색내기를 주제로 한 변주곡 같은 비슷한 소리로 들린다. 그럴 때마다 유권자들은 ‘닥치고’ 구경이나 하는 가련한 신세가 된다. 혼란스러워서도 그렇지만 그 보다는 너무나 강렬하고 가증스러운 행위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탓도 있다. 그들의 엄청난 확신과 위선에 질려버리기 때문이다.

김창준 박사는 미 연방 하원의원 배지를 달고 위세를 피울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낙선을 하고 모든 것을 다 잃은 후 비로소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인구 8만 면의 작은 도시의 시장에서 62만 명을 대변하는 연방 하원의원으로 우뚝 서기까지 그의 삶은 거칠 것이 없었다. 박수갈채와 환호와 카메라 플래시 세례는 아예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해외를 나다닐 때도 정치인에 대한 극진한 대우까지 더 해 그는 그런 삶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나 추락은 높이 오른 후에 오는 것임을 그 때는 몰랐다.

지금 정치권에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성은 후퇴하고 비상식적인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선거와 갈등이라는 괴물이 지금 한국 사회의 상식을 물어뜯고 있다. 그 소리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점점 강하게, 아주 강하게 짖으며 물어뜯는다.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다. 승자가 되기 위해 한바탕 시끄러운 싸움을 이미 각오한 것 같다.

어느 대선 후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하고 포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자기가 하고 싶다는 의욕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짖는 소리만 요란할 뿐 알맹이가 없다. 대통령은 하고 싶다는 의욕만 갖고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 국운이 좌우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판단이다.

일단 유권자가 표를 찍고 나면 뒤집을 방법이 없다.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그렇다. 그래서 정치인은 국민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철저한 검증을 통해서 발가벗겨야 한다. 정적(政敵)을 물고 뜯고 으르렁거리며 싸우면 순간적 인기에는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상처를 입을 뿐이다. 집권당의 재집권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어리석음에서 단일화로 집권 야욕을 꾀하는 것은 유권자인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무책임하게 정권만 쟁취하면 그만인가. 정책과 능력을 보지 않고 찍은 표가 있다면 결국엔 국민 모두에게 독(毒)이 될 수도 있다. 남을 물어뜯고, 짖으면서 자신의 비리는 감춘 채 오직 표만 달라고 하는 것은 정치사기다. 만약 ‘적(敵)의 적은 동지’라고 생각하는 정당이 있다면 그건 아주 커다란 오해다. 나라와 국민은 어찌되든 말든 자기가 집권해야 한다는 나쁜 정치인들이 많은 나라, 얼마나 더 물고, 뜯고, 짖는 소리를 낼지 그 소리를 듣는 국민들은 참으로 참담하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