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 칼럼- 불출마 협박과 과장 폭로의 말 놀이
누구나 어린 시절 골목 친구들과 귓속말로 말을 전달하는 놀이를 한번쯤은 해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놀이를 해본 사람은 대개 공감하는 것이지만 맨마지막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처음 사람이 했던 말과는 너무나 틀려서 배꼽을 쥐고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날 것이다.
이 놀이가 어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우리의 잘못된 습관을 일깨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또 어떻게 전달되어지느냐에 따라 인간관계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 생각보다는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렇다. 잘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들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도 듣는 사람의 감정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말을 전달할 때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론 기쁨과 함께 희망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진실을 보일 때가 있는가 하면 거짓과 자신을 포장할 때도 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에 말을 더하거나 빼서 상대에게 분노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뒤돌아 보면 거짓과 허상이고 결국은 다시 되돌아 자신에게 돌아오는데도 말이다. 말을 할 때 조금은 생각해 볼 줄도 알고 가끔은 나보다 듣는 사람에게 어떤 상처와 아픔이 되돌아갈지 조금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눈앞에 닥친 현실과 도피속에 오직 자신만을 포장하고 실리를 찾기에 더 급해지다보면 자칫 ‘말을 전달하는 놀이’처럼 나중에 최종적으로 듣는 사람에게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세상은 귀가 얇고 줏대가 없는 사람들, 변덕이 심한 기회주의자들로 범람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귀 얇고 줏대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각광을 받고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들을 잘 이용하는 부류가 소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다. 선의(善意)는 어디갔던 정치공학적 셈법을 총 동원하는 직업적인 정치꾼들에게 이용당하는 이들은 이념지향적, 정파적 성향과 거리가 멀다.
거대 담론을 논할만큼 그리 박식하지도 않고 선거에 대해서도 선(善)과 악(惡)의 대결로 보지도 않는 수준이다. 특정후보나 정파에 확신에 찬 지지를 확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향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귀 얇고 줏대없는 이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어 자신을 지지해 달라는 수준높은 구애를 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지난 4.11 총선 때도 그랬지만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도 주요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이들을 겨냥 선거캠페인의 핵심 타깃으로 삼고 여기서 승부를 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경제, 통일, 복지정책 등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생겼다. 이런 와중에 김태섭-정준길의 긴급기자회견이 귀 얇고 줏대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금태섭은 “그냥 아는 사이로 지난 몇 달동안 만난 적도 없다”라고 말했고 정준길은 “친한 사이”라며 며칠 전까지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와 학창시절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불출마 협박’과 ‘과장 폭로’라는 말을 놓고 과연 그들이 동문으로서 친구로 불려질 수 있는 사이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말을 잘못 듣고 잘못 전달하면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말 친한 친구사이였다면 며칠이 지난 후 긴급기자회견을 자청, 이런 폭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이들이 친구였나를 확인하려면 같은 대학동기들의 말을 들어보면 된다. 대부분의 동기들은 “두 사람이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다” 쪽에 손을 든다.
또 상당수는 그들 둘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좀 튀는 스타일이라고 입을 삐죽인다. 그런 좀 튀는 대학동기끼리 어쩌다 정치권에 발을 디밀어 드잡이를 하면서 대선판을 진흙탕으로 만들었다. 이 대목에서도 느끼는 것은 이번에도 역시 지능적인 안철수가 자기의 입이 아닌 대변인을 통해 폭로전을 벌리면서 문재인, 박근혜의 지지율을 떨어트리는 재미를 톡톡히 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거티브의 포연이 걷히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팩트다. 안철수가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대변인, 저격수를 내세워 유권자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 말고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이념, 정책 등을 밝혀 궁금증을 풀어주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 본다. 속된 말로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려는 속셈은 이제는 버려야 한다.
베일에 가려져 시의적절한 때마다 톡톡 튀는 행보를 하는 안철수가 어떤 민낯으로 가물어 메마른 땅에 안착할지 자못 궁금하다. 자칫 ‘말 놀이’처럼 자신이 한 말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다르게 전달될 경우 끝에 듣게 되는 유권자들이 오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두통이 일어나며 머리가 복잡해진다.
감히 말한다. 사람의 말은 정말 믿을 수 없다. 특히 지나간 시간의 말은 누구에게도 단언할 수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의 일에 그리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말을 한다. 그리고 위험한 것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모으면 완벽한 진실의 말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여러 사람의 완벽하지도 않은 말을 듣고 그게 마치 진실인양 믿는다는 것이다. 진실이 아름답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소수의 입장은 인정해주지 않아 때로는 잔인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권력과 재력보다 더 귀한 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문세의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은 ‘일반’에 한동안 주제가로 나왔던 노래다. 이 부분에서 두 개의 단어를 짚고 넘어가자. ‘마음먹다’와 ‘귀하다’ 밥은 늘 먹으면서 마음은 잘 안먹는다는 게 탈이다. 밥도 마음도 제 때를 가려 늘 먹는 게 좋은 것이다.
나잇값이 뭐 별거인가. 나이도 제대로 먹어야 귀하게 대접을 받는 것이다. 귀한 것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천한 것일 수도 있고 흔한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흔한 것이 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기도 흔하고 물도 흔하고 바람도 흔하지만 그것들은 천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모두 귀한 존재들이다.
흔한 게 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 세상은 사뭇 달라지고 아름다움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흔한 말 한마디가 듣는 사람과 본인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고 죽이가도 하고 죽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세월이 흘러가면 잊을 날도 있다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그리울거야… 우리의 마음에 새긴 것은 아마도 지울 수 없을 거야’ 며칠 전 운명을 달리한 가수 최현의 ‘세월’ 중 한 가사다. 그의 노래처럼 세월이 흘러가도 남은 자들은 떠난 자들을 마음에서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나잇값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