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행복을 누리는 현명한 답


동문기고 안호원칼럼-행복을 누리는 현명한 답

작성일 2012-07-05
어느 울창한 숲 속에 귀여운 전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 작은 전나무는 몹시도 빨리 자라고 싶었다. 그리고 숲 속에 서 있는 것이 못견디게 싫었다. 특히 자기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지루하게만 여겨졌다.

주위에 서 있는 큰 나무들이 사람들의 손에 베어져서 실려갈 때마다 전나무는 그 나무들이 어디로 실려 가는지 숲 속의 새들에게 물어보았다. 새들은 말한다. 그들이 베어진 다음엔 큰배의 갑판으로도 되고 또 임금이 계시는 궁전 속의 기둥이 되기도 한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전나무는 그들을 몹시도 부러워하곤 했다. “아, 나도 바다를 건너갈 만큼 어서 자랐으면….” 하고 그는 늘 자신의 따분한 신세를 한탄하면서 늘 불만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삶을 살던 이 전나무도 마침내 자랄 대로 다 자라 숲 속의 큰 나무들 속에 끼일 때가 되었다. 숲에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잘 자란 이 전나무를 보고 “참 아름다운 나무다” 하고 감탄을 했다. 그 소리를 듣는 전나무는 몹시도 기뻤고 자신이 화려하게 변신해 새로운 삶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전나무에게 찾아왔다. 건장한 나무꾼들이 달려들어 도끼로 찍어 넘어뜨리고 톱으로 자신의 몸을 자른다. 전나무는 놀라기도 하고 몸시 아팠으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간다는 기쁨에서 이를 악물고 그 고통을 참아냈다.

사람들은 이 전나무를 소중히 끌고 임금이 사시는 궁전 뜰에 세워 놓았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의 몸에다 온갖 장식을 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며칠 후 이 전나무 주위에서 화려한 파티가 벌어지고 많은 사람들은 “아, 정말 훌륭한 크리스마스 트리구나”하고 감탄했다.

전나무는 비로소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따분했던 숲 속 생활보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는 영광의 삶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숲 속의 나무들에게 온갖 장식을 단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런 파티의 하룻밤이 지난 후 며칠이 지나자 또 다른 사람들이 몰려왔다. 더욱 더 멋진 장식을 해주려고 하나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웬걸 사람들이 달려들어 자신을 쑥 뽑아서 어디론가 끌고 가더니 어두운 창고 속에 처넣어 버리는 게 아니겠는가.

아무렇게나 팽개치는 바람에 스러져 버린 전나무는 말도 안되고 부당하다고 발버둥쳤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긴긴 겨울을 어둡고 차가운 창고 속에서 외롭게 보내야만 했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지내면서 전나무는 비로소 맑은 공기와 햇빛, 그리고 찬란히 빛나던 숲 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자라던 어린 시절이 좋았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 시절이 그리웠다.

그러면서도 계절이 다시 돌아와 따뜻한 봄이 오면 자신에게 새로운 변화가 올 것이라는 작은 꿈을 그려보았다. 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어느 봄날, 드디어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다시 와서 쓰러져 있는 전나무를 일으켜 세워 끌고 나왔다.

전나무는 오랜만에 보는 햇살에 눈이 부셨지만 “옳거니, 이제 내가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구나” 하는 설레임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몰랐다. 사람들은 전나무가 그려보는 꿈과는 달리 “정말 볼품없이 말라버렸구나” 하면서 톱으로 전나무를 토막토막 베어버렸다.

전나무는 그때마다 숲 속의 어린 시절이 뼈아프게 그리웠지만 이미 늦어버린 과거가 되어 버렸다. 그런 후회의 상념에 젖어 있을 사이도 없이 전나무의 몸뚱아리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장작감이 되어 화로 속으로 던져져 불에 타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에게는 나름대로의 자기 삶의 길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행복의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그렇지 않고 서로 뒤엉켜 울고 싸우고 죽이며 스스로 불행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왜 그럴까. 간단히 요약하면 이야기 속의 전나무처럼 불평, 불만, 욕구불만이 그 불행을 자초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다 각기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또 자랑할 것도 있게 마련이다. 흔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그래서 다 감사드릴 조건이 있게 마련이다.

불만, 불평은 대부분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능력에 대해 감사하고 만족해하는 생활의 지혜를 실천하면 불평, 불만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자기 분수를 알았을 때 비로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의 출발은 자기 분수를 아는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아울러 자기 개선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있는 자나 현재 주어진 것만 끌어안고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것은 운명론적인 행복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어떤 약점이 있어도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 약점을 잘 이용해 자기 개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영원한 모나리자의 미소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사생아였고 일설에 의하면 오른손이 불구인 장애자였다는 것이지만 그는 문학박사에다 신학박사가 될 정도로 인생을 값지게 살았다. 또 발명가 에디슨은 무선전신, 영화촬영기, 전축 등 수많은 것을 발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자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후에 에디슨은 “내가 귀머거리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 늘 감사드린다. 귀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잡된 소리를 듣지 않았고 오직 목표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단점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이를 잘 활용해 행복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것 같아도 은혜 안에서 거듭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감사드릴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자신의 약점과 타인이 불행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믿음과 노력으로 개선하고 향상시키면 누구라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자포자기에 앞서 모든 것에 대해 믿음으로 감사하는 삶을 산다면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며 더욱 더 큰 행복을 누리는 삶이 될 수 있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