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저무는 18대 국회에 바란다


동문기고 안호원칼럼-저무는 18대 국회에 바란다

작성일 2012-04-19
끊임없고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의 벌을 받게 되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결국엔 자신의 몸까지 먹어치우는 탐욕에 휩싸인 비극적인 인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스흐톤 왕의 이야기다. 저물어가는 18대국회를 바라보면서 문득 떠오른 대목이다.

무엇인가를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왔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지나칠 정도로 욕심을 부리는 것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별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누구든지 권력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한다. 권력은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사회의 구성원들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실은 권력쟁취가 바로 중요한 목표가 된다.

각종 법안에 대해서는 이견을 달리하며 심하게는 원외 투쟁 등 몸싸움까지도 했던 의원들이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의 5000만 원 이상 예금에 대해 전례 없는 혜택을 주는 데는 이의를 제기 하지도 않고 또 자신들의 세비 인상에는 여. 야, 구별 없이 쌍수를 들어 다정한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여. 야 정당이 경쟁이나 하듯 하루가 무섭게 마구 쏟아내는 복지 관련 공약을 보면 놀랄 지경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내뱉은 공약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다른 쪽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뻔뻔함을 보인다.

당명을 바꾼 새 누리 당의 경우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을 강조하며 지난 4년간의 실책(失策)에 대해서는 도의적인 책임을 지기보다는 현 정부 정책과의 차별화에만 열을 올렸다. 무엇을 얼마만큼 잘못했는지에 대해 반성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든 현 정부와 꼬리 끊기에 급급한 인상을 풍겨주었다. 민주통합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다면서도 정작 노 정권에서 추진했던 정책 사안들을 전면 부인하는 우(愚)를 범하며 그들 역시 과거 집권 시 실책을 인정치 않으려고 했다. 정치인의 진정성은 과연 무엇일까? 정치를 국민들이 지닌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정당의 존재 이유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방법이 다르다는데 있을 것이다.

정치인은 정치적 활동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자신의 방법에 찬성해달라고 경쟁하는 것 일진대 지금의 상황은 각 정당의 모든 공약(公約)이 마치 공약(空約)인 것처럼 허망하게 보인다. 그만큼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쩌면 유일한 차이는 비판을 하는 사람(집단)과 비판을 받는 사람(집단)이 바뀐 것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정치인은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SNS(소셜네트위크서비스)를 통한 직접 정치의 움직임이 태동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 직접 민주주의가 지지를 받는 이유를 정치인들이라면 더 더욱 잘 새겨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안 싸우면 국민들이 거리에서 싸워. 국회란 사회의 갈등이 반영된 곳이지.” 국회에서 몸싸움이 크게 벌어졌던 날 한 초선의원에게 선배 의원이 들려준 말이다.

40대 초반의 엘리트인 초선의원은 이런 말을 들으면서 국회의 자정 능력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 4년이 ‘실망과 좌절의 연속’ 이었다며 출마를 접었다. 또 한 다선의원은 “국회가 국민의 이해와 갈등에 대한 해법을 찾는 곳이어야 하는 데 당론, 맞대결 구도 속에서 소신과 전문성은 공허한 일 뿐”이라고 회상하며 정계은퇴의 뜻을 밝히며 탈당을 했다.

그는 “18대 국회에서는 ‘거수기’ 와 ‘무조건반대’ 의 몸싸움으로 국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는데 19대 국회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그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을 해야 한다”고 충고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의원들이 무리한 입법을 밀어붙이는 횡포를 부려서는 안 된다. 또 다시 정당정치와 의회민주주의가 후퇴하면 정치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50대 중반으로 77학번 운동권 출신인 그는 친 이. 친 박, 갈등을 보다 못해 당 개혁을 주문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법에도 없는 당론 앞세우기에 각 정당 소신파와 협상파의 몸부림은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면서도 국익과 국민의 삶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뒷전이었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다.

긴 것만 같은 4년, 18대 국회가 이렇듯 저물어간다. 이렇게 저물어가는 18대 국회에는 아직도 405건이나 되는 정부 제출법안이 계류돼 있다. 개중에는 2008년 11월에 제출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 교육법 개정안’ 처럼 1120여일이 넘도록 깔고 앉아 있는 법안도 있다. 이밖에도 국민 80%가 찬성하는 약사법 개정안도 포함되어있다.

18대 국회 임기는 5월말까지다. 6월부터는 19대 국회가 시작되지만 원 구성이 끝나는 8월 이후나 되어야 정상적인 국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18대 국회에서 계류중인 법안을 이번 회기에 처리 하지 않으면 자동폐기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총선도 끝났다. 6월이면 새로운 당선자들이 여의도에 입성한다.

정작 우려되는 것은 19대 국회에서도 또 다시 당론 맞대결의 몸싸움에 국회 본연의 임무인 입법 활동은 뒷전인 꼴을 국민이 또 다시 보며 가슴을 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복지, 민주, 평화 등 달콤한 소리 이전에 각 정당은 이제 총선도 끝났으니 5월말 전에 국회를 열어 계류 중에 있는 각종민생법안을 처리하고 임기를 끝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에게 대한 마지막 도리이자 의무다.

아울러 19대에서는 의사당 안에서의 폭력 등 몸싸움을 하지 않는 국회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해머로 문을 부수고, 최루탄을 터뜨리고, 슈퍼맨처럼 공중을 날며 기물을 훼손하는 망나니 의원들은 두 번 다시 의사당에 발을 딛지 못하게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법 만큼은 여야가 하나 되어 꼭 통과시켜야 한다. 국제적 망신으로 창피 하다.

물질적 부(富)나 정치적 권력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재취해야 할 목표로 여기지 않고 사회를 위한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기는 그런 정치인을 보고 싶다. 이제 몇 달 뒤 대선이 다가온다.

오래 전 프레스클럽에서 리틀리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란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검투사라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과는 달리 이 영화는 정치권력에의 의지와 욕구, 역설적인 양면성 같은 것들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로마시대 뿐만 아니라 지금도 집권을 위해서는 암투와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권력을 쥐기 위해 황제인 아버지를 질식시켜 죽여 버린 ‘코모두스’. 그것도 모자라 정적인 ‘막시 무스’ 을 제거하기 위해 검투사가 된 그와 마지막 승부를 위한 결투를 청한다. 특히 그는 이반되는 민심을 돌리기 위해 1백50일간 검투시합을 벌이도록 해 로마시민들을 흥분시키는 등, 정치의식이 무뎌지도록 했으나 시민의 마음을 읽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목숨마저 부지하지 못했다.

1당, 2당 등 정치인 모두가 기억해야 할 대목이고 영화인 것 같다. 아울러 국민을 우롱하며 과소평가 하는 등 우(愚)를 범하는 정치인들은 이번 기회에 아예 이 땅을 떠나주었으면 한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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