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흔적을 남기는 인생
공자의 말씀에 사람이 셋이 모이면 반드시 그 중에 스승이 있다고 했다. 사람에게 배움, 즉 인간교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배움의 연속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노력을 통해 우리 사회는 선의와 질서 있는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시되는 교육, 해를 거듭 할수록 대학원, 박사 학위자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더 혼란스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기관도 많아지고 기회도 많아졌다. 이런 조건에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어 앎의 포만감이 풍만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동물들의 세상보다 더 살벌하고 질서가 없다.
이는 받은 교육을 자기 자신만의 입신출세나 계급의 상승욕구를 채우는 것에만 혈안이 되다보니 부모조차도 버리는 이기적인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높은 지식과 학벌을 단지 또 다른 이익을 차지하려는 수단과 목적으로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교육을 받아 지성인이 되었지만 자기 이익과 편견을 지키기에 급급하고 지금처럼 파괴적이고 폭력적이고 거짓과 불의, 때로는 폭행을 일삼고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조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나 한다면 도대체 그 교육기관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깨달았는지 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시위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잘못된 시위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더 나쁜 것은 일부 정당, 정치인들이 분위기를 조성 시민과 젊은이를 이용하거나 또는 불순분자들에게 휘말려 눈치를 보며 시정잡배나 같은 행위를 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사람이 되는 인성교육보다 기계적으로 정확하고 냉혹한 지식교육, 경쟁교육에만 강조하다보니 이 세상이 진실과 정직과 불의가 뒤엉키며 비상식이 상식을 짓누르는 기막힌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 침묵하는 다수가 목소리 큰 소수의 불순 자들의 눈치를 보는 더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배운 사람일수록 복잡하고 혼란과 혼미가 계속되는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배운 사람은 더 많아졌는데 사회는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마디로 엉덩이에 뿔 난 송아지처럼 작은 상식으로 설쳐 되며 이 사회를 혼란의 구덩이로 빠트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회에서까지 폭력이 난무하고 심지어는 인명을 해칠 수도 있는 흉기를 휘두르면서도 마치 자신이 영웅이나 된 것처럼 착각을 하며 자신이 범법자임을 모른다. 그런 행위를 방관만 하다 보니 한 술 더 떠 소위 정치연예인이라는 자들까지 나와 무책임한 말을 함부로 내두르며 인기를 누리려고 한다. 정작 1류 급 존경받는 연예인, 그들보다 한층 더 경륜이 있고 인기를 누리는 안성기 씨 같은 분은 말이 없다.
무관심이 아니다. 자기의 자리를 바로 알고 있기 때문이며 정말로 올바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교육을 받은 고등동물이기에 들짐승, 산 짐승들과는 달리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는데 미물에 불과한 동물만큼도 법칙이 지켜지지 않고 질서도 없다. 참담한 심정이 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옛날 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결국 산다는 것은 저마다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불과하다. 돈으로, 권력으로, 지식으로, 재주로, 때로는 미모로 저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들은 모두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울린 감동이나 아픔을 준 상처의 흔적은 문신처럼 짙게 새겨진 것은 아니라도 그 누군가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영혼에 기억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삶의 흔적이라도 남기기는 쉬워도 그 흔적을 지우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흔적은 더 더욱 그렇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살아있는 오늘도 우리는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 흔적은 오랜 세월이 지나가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덧칠을 할 수도 없다. 그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여의도정치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난다.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나 언어일지라도 가혹한 검증이 검증의 대상이 되는 흔적을 남기고 가는지 조차 모르고 경고 망동한 처세를 하는 지도자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남이 보고 판단하기 이전에 가족과 자식이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를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적어도 가족에게만은 부끄러운 아버지, 가장으로 비춰져서는 안 되지 않겠는 가. 그 흔적을 상처의 흔적으로 남기지는 말아야 한다. 해도 뜨기 전 새벽에 길거리에 나가면 환경미화원들이 밤새 쌓인 흔적을 말끔히 치우느라 겨울 아침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굻은 땀을 흘리며 분주하게 일을 한다.
호텔에서 일하는 종업원 역시 지저분한 이방인의 흔적을 치우고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어디든지 앉았다 일어나면 그 자리엔 반드시 흔적이 남게 마련이다.
특히나 푹신한 소파는 그 사람의 몸무게와 엉덩이 크기에 따라 자국을 남긴다. 심지어는 딱딱한 나무의자나 지하철의 금속성 재질 의자에도 앉았다 일어나면 체취와 온기가 씻을 수 없는 흔적처럼 남아있게 된다. 이런 현상이 어디 앉은 자리에서만 그렇겠는 가?
흔적이 지우기 어려운 만큼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무너져가는 사회기강을 바로 세워서 신성한 국회의사당이 되고, 대학에 노인폄하를 하는 후레자식 같은 교수가 없는 학교를 바로 세워서 다시는 이 처럼 부끄럽고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는 정의와 진실이 존재하고 질서를 지키는 훈훈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며칠 전 KBS에 자신도 어렵게 생활을 하면서도 기부를 하는 할머니가 깨끗한 이름을 남기고 가는게 소원이라며 아무리 억만금을 남기고 가도 더러운 이름이 남으면 안된다는 말이 좀처럼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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