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가을, 모두 알고 있지만
시월, 깊어가는 짧은 가을의 낭만을 즐겨야 하는 이 계절. 보는 것과 듣는 모든 것들이 우울하기만 하다.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고 해서만은 아니다.
눈뜨기조차 시릴 정도로 청아한 가을 하늘, 눈이 시리도록 황홀한 하늘 풍경을 투영하는 한강물도 가을이면 더욱 아름다울 진데. 그런데 그런 가을을 맞이하는 마음이 우울하기만 하다. 왜 일까? 울긋불긋 단장한 가을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지만 곧 우리를 떠나버린다. 세상에 좋은 것들은 오래 오래 머물지 않기에 허전함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좋았던 것을 기억하며 그 때가 반복되기를 욕망하며 아쉬워한다. 자연은 순환법칙을 따라 사계절이 돌아가니 가을은 다시 올 것이 분명하지만 인간의 삶의 가을은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맞이하며 사노라면 즐거움도 있지만 절망적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더구나 가을이 되면 그런 막막함으로부터 탈주하고픈 욕망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독한 절망을 끝내는 해결책으로 가을과 함께 삶과의 이별을 선택하기도 한다. 가을은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그리고 산다는 게 별게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체험하게 한다.
질투, 미움, 시기심 같은 것으로 꽉 채워져 있는 마음속엔 아름다운 음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마음속에 빈 공간이 없는 사람에겐 어떤 감동이나 시나 어떤 아름다운 음악도 감동을 줄 수 없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우리 인간은 결국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아주 미미한 존재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곱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면서 모두가 감탄을 하면서도 그 잎이 땅에 떨어져 낙엽으로 변해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바뀐다.
어제까지만 해도 좋은 친구였는데 오늘 만나보면 나쁜 친구, 귀찮은 친구로도 변해있다. 사실 그 친구는 그대로인데 마음이 변한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때는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가 내게 소중한 의미로 다가왔지만 언젠가는 가을 낙엽처럼 그를 떠나보내며 남은 자가 되는 때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사람들은 항상 분주하게 서두르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바쁘게만 살아가다보니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날들을 자기 삶으로 유용하게 활용하지 못하고 흘려보낸다.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이, 너무 바삐 살고 있기에 그냥 마시는 커피에도 그윽한 향기가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가을 국화의 향기 또한 음미하지 못하고, 넓고 푸른 하늘이 머리위에 있지만 그 하늘마저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삭막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바삐 살고 있다.
그래서 가을 낙엽이 떨어져 바람에 뒹굴 리고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혀도 흘릴 눈물이 없는 무딘 감정이 되어버렸다. 왜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변했을까? 시월의 햇빛 길게 드리운 서재. 오후 두 시. 서재에 앉아 목요칼럼을 쓰며 마음을 비우니 어찌 이다지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일까?
비누거품처럼 하얀 거품이 일다 물에 씻겨 흘러내리는 시간이 때론 아쉽기도 했지만 이렇게 펜을 잡고 글을 쓰는 시간은 마냥 행복하고 감미롭기만 하다. 내가 시인이라서가 아니다. 시(詩)를 읽어보지 않고 어찌 인생을 논 할 수 있겠으며 붉게 물든 가을 단풍이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지 않고, 깊고 푸르른 가을하늘을 보지 않고 어떻게 인생을 말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바쁜 생활이지만 잠시 틈을 내어 시를 읽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얼마 전 친분이 있는 분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기회가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최근 강력범죄에 대해 열변을 토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조용히 듣고 있던 지우가 “강력범죄는 무엇보다도 정적인 감정을 품어 낼 수 있는 시(詩)를 안 읽어 생기는 현상” 이라고 지적을 하신다. 옳은 지적이다. 요즘 같이 인성교육이 결여되고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시점에서 가슴에 찔리는 대목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지금 바쁘게 사는 우리나라에선 대통령과 고위관리, 국회의원, 기업가, 학자, 종교지도자 누구라도 시를 알고 즐기는 사람, 한 권의 시집이라도 사서 읽은 분이 과연 몇 분이나 될까? 그러니 사회지도자라는 분들이 인품이나 도덕성애 대해 존경 받는 분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비록 이제까지의 가을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가을이었지만 지금부터는 조금씩 붉게 물든 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임을 깨닫고 그런 소중한 가을을 맞이해야 한다. 이 땅에 가을은 또 다시 찾아오지만 가을 같은 우리 인생은 다시 오지 않는다. 말(馬)이 살찐다는 이 가을, 가진 자와 없는 자,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아닌 함께 일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공생하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살벌한 정글의 법칙이 아닌 따뜻한 상생이 가능한 숲의 법칙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어쩌면 삭막한 이 땅에서 촉촉한 마음으로 우리가 살기위해서라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시를 읽고 역사, 문화, 철학 등 인문학을 소홀해서는 안 될 때다. 아무래도 지도자들부터 시를 읽어 가을을 느끼며 정서적인 마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밝고 맑은 사회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부당한 세상 법칙을 격정적으로 읊어내는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의 시(詩) “모두 알고 있지”(Everybody knows)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본다.
“모두 알고 있지/가난한 이들을 늘 가난하고/부자는 더 부유해지는 걸/
모두 알고 있지. 배가 새고 있다는 걸/모두 알고 있지/선장이 거짓말
했다는 걸/모두 느끼고 있어 참담한 기분을”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