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 중년의 로맨티시즘


동문기고 안호원칼럼- 중년의 로맨티시즘

작성일 2011-07-28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세상을 떠날 때 ‘떠나는 자’가 ‘남은 자’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예외로 아주 짧다. “여보 미안해”다. 비록 짧은 말이긴 하지만, 이 말 속에는 참으로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의 무거운 짐을 남겨놓고 가는 것이 미안 할 수도 있겠고 또 함께 살아가면서 좀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 것도 미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자녀들을 모두 맡기고 가는 것 또한 미안할 것이다.

왜 떠나가는 사람은 남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고 또 용서를 구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동안 너무나 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온 것을 뒤늦게나마 뉘우치고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철들면 죽는다던 옛말이 맞는가보다.

이제야 참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는데 먼저 떠나는 것이 애처롭고 미안한 것이다. 그래서 떠나는 자가 ‘미안하다’ 는 말을 남기는데 과연 그 말을 듣는 남은 자는 또 무슨 말로 이를 대신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진정 소중한 것을 너무도 까맣게 잊고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별의 순간,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워하고 또 안타까움에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을 때는 나의 소중한 배우자의 귀함을 일상에 묻어버리고 쉽게 잊고 산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리워지는 중년의 로맨티시즘!! 중년의 사랑은 앞만 보고 걸어오던 어느 날, 공허한 마음에 고독이 엄습해 옴과 동시 외로움에 텅 비어 있는 내 빈 마음에 슬며시 찾아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년의 사랑은 더욱 애절함과 그리움으로만 남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마음가짐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 배려하는 마음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남편의 이야기도, 아내의 이야기도 모두 들어줄 수 있는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면 “아! 당신...” 하며 늘 생각하고 기억에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아름다운 이별의 날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시켜 줄 수 있는 관계가 되어 기쁨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 중년의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허전한 마음이 들 때, 어느 날 갑자기 비어 있는 마음이 될 때, 텅 빈 듯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친구와도 같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부부사이가 어쩜 중년의 사랑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지켜주어야 할 가정을 지켜야 하기에 서로를 보호해주고 지켜주며 인격을 존중해주는 사랑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중년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비 오는 날 오후, 얼마 전 상처(喪妻)를 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한 자리로 초등학교 동창 6명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회가 있었다. 어찌하다보니 4명이 이미 오래 전 상처를 하고 혼자 생활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인이 있는 한 친구가 “마누라 잔소리가 지긋지긋해 정말 미치겠다.” 푸념을 늘어놓자 상처한 친구 하나가 “이봐요, 거 행복한 소리 작작 허들 말게, 난 지금 그런 마누라도 없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이네, 그런 마누라가 있을 때 행복한 줄 알게” 하며 침통해 한다.

혼자된 그 허전한 그 마음을 누군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공기와 물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평소에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내듯 우리는 값없이 제공받는 가족의 소중함, 특히 아내나 남편의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는 우(偶)를 범하고 있다. 유희와 쾌락을 위해 소중한 시간과 돈을 허비하면서도 진정 소중한 가정과 내 인생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관심한 삶을 살아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부가 일궈 논 가정(家庭)은 인생의 제 1 안식처다. 따라서 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우리 “있을 때, 함께 할 때, 서로를 사랑하고 잘 합시다”라고. 있을 때, 함께 할 때 서로 마음 든든한 사람되고 간혹 고달픈 인생의 삶으로 낙담하고 지쳐있을 때, 우리 서로 위안이 되는 그런 사랑을 나누는 중년의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고단한 인생길 먼 길을 가다 어느 날 불현듯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시간에도 우리 서로 마음을 기대며 위로의 말을 나누는 사랑의 부부가 되었으면 한다. 견디기엔 한 슬픔이 너무 클 때도, 언제고 부르면 어디가 되었든 쉬 달려올 수 있는 자리에서 오래오래 머물며 더 없이 간절한 그리움으로 눈 시리도록 바라보고픈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떠날 때, 남은 자에게 덜 미안해하며 서로가 끝없이, 끝없이 아름다운 사랑의 사람으로 기억되어지는 그런 중년의 사람이 되고 싶다. 늘 헌신적인 사랑으로 가정을 이끌어가는 보름달 같은 아내의 얼굴이 눈에 아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