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 합 심
얼마 전 TV에서 방영되는 음악회를 보면서 음악대학을 다닌 딸이 생각났다. 음악을 전공하는 딸 덕분(!)에 오페라 등 공연을 보는 횟수가 많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경륜으로 소프라노인 딸의 노래를 듣다보면 음악에 무지한 사람이지만 딸이 성량이 풍부하고 매우 잘 한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딸은 1학년 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국내 오페라 공연은 물론 국제 행사에 합창단 일원으로 출연, 청중들로부터 ‘부라보’소리와 함께 뜨거운 박수를 오래도록 받기도 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면 감회가 새로워지는 것이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또한 남모르게 어려운 여건 속에도 침묵하며 딸을 뒷바라지했을 아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든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딸이 천부적인 음악의 재능을 갖고 있었다 해도 엄마가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했다면 딸은 성악을 전공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성악을 하는 딸 덕분에 우리 부부는 음악회를 찾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때 합창을 하기 위해 무대에 늘어선 단원들을 보며 느껴지는 것이 있다. 저들 중에는 독창에 뛰어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독창에 자신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목소리만을 낸다면 아름다운 합창의 멜로디는 기대 할 수 없다. 소프라노, 엘토, 바리톤, 테너, 거기에다 피아노까지 서로 훌륭하게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아름다운 화음으로 이루어진 합창이 탄생될 수 있다.
우리의 생활도 이와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마음을 바로 쓰지 못하고 제 잘난 맛에 톡 튄다면 그 재능은 화(禍)를 불러올 수도 있다. 평화롭고 즐거운 사회란 재능 많은 어느 한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쓰고 자기의 역할 기능을 충실히 하며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례로 시계의 톱니를 보자 ‘초침’ ‘분침’ ‘시침’에 역할을 하는 톱니가 서로 맞물려 회전을 해야 만이 시계로서의 역할을 하며 가치로서 존재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침’의 역할을 맡은 톱니나 ‘분침’ 의 역할을 맡은 톱니가 서로 자신만이 최고라며 제 멋대로 움직인다면 그 시계는 시계로서의 가치는 상실되는 것이다.
아울러 자동차를 보자 아무리 비싼 고급 엔진일지라도 값싼 ‘나사’가 그 엔진을 차에 고정 시켜주지 못하면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가 없다. 또한 고급 승용차일지라도 하찮게 여기는 연료통이 없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자연의 동물이자 조직체를 떠나서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인간 역시 서로가 제 잘 난 맛에 살며 독불 장군 격으로 합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조직체란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피는 따뜻해야만 한다. 따뜻한 조직체란 ‘정’(情)이 있게 마련이고 그 정이란 바로 조직원간의 유대관계를 긴밀히 계속해주는 결속력이 되는 것이다.
인간 본질은 선하다고 생각하기에 순간순간의 갈등을 참을 뿐인데 오히려 작금의 세상은 그렇게 보아주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다. 정녕 숲속을 보기보다는 겉의 나무만 바라보며 남을 쉽게 속단하는 것 같은 현실이 너무나 아쉽다. 자기 자신을 돋보이며 위로를 받고자 하면서도 남을 위로하고 이해하기에 앞서 시기와 모함과 질투 속에서 약한 자를 짓밟으며 자신만이 살아남기 위해 용트림 한다. 자기 존재 가치의 우월성만을 내세우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그런 조직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어느 직장의 경우, 사장이 직원들에게 “도대체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며 “당장 그만두라”고 하는 소리를 습관처럼 하는데 이는 사람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지도자다. 인체를 보더라도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영양을 섭취 해줄 수 있는 입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또한 가장 천한 자리에서 냄새가 나지만 배설구가 없으면 이 역시 존재 할 수 없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높고 낮음과 귀하고 천함을 떠나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고 재능을 갖고 있다. 시계의 초침, 분침, 시침 하나하나가 얽히고 설켜 돌아가듯 각 기능이 합심하고 조화를 이룰 때 그 조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오른손잡이가 왼손은 하는 일도 없이 붙어있다고 불평을 하면 안된다.
왼쪽 손이 평소에는 아무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 질수도 있지만 무엇인가 마주 들려고 할 때는 그 왼쪽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지도자는 그 존재의 가치를 인정 해 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조직도 똑똑한 한 사람의 재능에 앞서 각각의 역할과 재능을 인정받을 때 비로소 그 조직이 잘 이뤄질 수 있다.
아무리 비싼 금 젓가락일지라도 한 짝만 있을 경우, 두 짝의 나무젓가락에 비하면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다. 젓가락이란 두 짝이 있어야 활용가치가 있고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다. 따라서 이 사회도 제 잘난 독불장군식의 우월보다는 합창단과 마찬가지로 서로가 서로의 재능을 인정하고 화음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밝고 명랑한 세상이 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