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 그림자 같은 인생


동문기고 안호원칼럼- 그림자 같은 인생

작성일 2011-04-28
어떤 제자가 공자에게 “선생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모든 것을 다 알았던 분이 아니신가요?” 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을 받은 공자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았던 사람이 아니다. 다만 옛것을 좋아하여(好古) 부지런하고 열심히 배워서 알아낸 사람이다(好古敏以求之者也)”라고 응답했다.

요즘 세태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특히 정치인들을 보면 더욱 더 그렇다. 모든 것을 다 통달한 사람들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빛이 있는 밝은 곳이면 항상 그림자가 생긴다.

누구나 어릴 때 두 손으로 하던 그림자놀이가 생각 날 것이다. 늘 자기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런 그림자들의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속에서는 그런 그림자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런 그림자이기에 스스로 존재하지 않으니 실체라고 말하기는 그렇다. 그래서 그림자는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중간 상태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보이기는 해도 잡을 수 가 없는 물체인 것이다.

인간이 사는 이 세상도 빛과 어둠이 늘 교차하며 겹쳐있는 그런 그림자 세상이라 할 수 있다. 땅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은 다 그림자가 있다. 그렇기에 기독 교리에는 다소 위배될지 모르겠지만 이 땅에서의 삶은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단지 또 다른 그림자의 삶일 뿐이다. 이 또한 천국과 지옥의 그림자가 늘 교차하는 스크린에 불과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인간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만 생긴다. 빛을 받을 수 있는 육신이 없어지면 그림자도 자연히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일시적인 그림자가 마치 실체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그 허상의 그림자를 쫓으며 더 크고 멋진 그림자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 보이는 그림자들을 모은다해도 실체를 만들 수는 없다. 여전히 시간과 공간 안에서 변하는 또 다른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결국 흙으로 빚은 육신과 함께 그림자가 사라지면서 마지막엔 무(無)만 남게 되는 거다. 따라서 모든 그림자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인생의 끝은 허무가 아니다. 그렇기에 ‘무’는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점일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 빈손으로 이 땅에 왔기에 그것에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날마다 빈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어둠을 빛으로 채워 가는 것이 인생의 참된 지혜다. 부귀영화를 맘껏 누린 솔로몬이 깨달은 지혜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그림자들을 다 거느려 보았던 그였지만 모든 것이 다 변하므로 하늘 아래서는 새것이 없음을 고백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 땅에서 그림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사랑으로 살도록 조물주로부터 창조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무에서 시작 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하늘의 영원한 빛(사랑)으로 우리 주위의 일그러진 그림자를 한껏 채워주고 반대되는 그림자도 품어 줄 수 있는 무공해 인생이 되어야 한다.

서두에 ‘호고’를 언급한 바, 옛 친구가 생각난다. “친구를 고르기는 천천히, 바꾸기는 더 천천히 하라, 옛 친구 하나가 새 친구들 보다 낫다. 참 친구가 누구인지 알려거든 실수를 해보아라.” 이런 말들은 모두 닳고 닳은 인생에서 나온 경험담들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친구를 얻는데 우리는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 친구 덕에 살았다는 말보다도 친구 때문에 망했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다. 친구를 좋아하다가 그 친구를 닮아가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친구의 꾐에 빠져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더 많다.

빛이 있는 곳에서는 물론 어둠 속에서까지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언제나 주위에는 친구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늘 허상의 그림자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이웃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있는가‘ ‘내가 사귀고 있는 친구는 과연 선한 친구인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열 친구는 쉽게 잃을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새 친구를 얻기는 어렵다. 한 번 사귄 친구는 비록 흠이 있어도 죽을 때까지 그림자 친구처럼 내 안에 머물게 해야 한다. 그림자에 속아 인생의 쓰레기가 더 이상 쌓이기 전에 미리미리 하늘의 빛으로 그림자 인생을 메마르지 않게 하고 꽃이 피며 탐스러운 열매가 맺히도록 해야 한다.

육신이 사라지면서 그림자마저 지워지는 구름 나그네 같은 인생인데 너무 명예와 권력과 재력에 혈안이 되지 말자. 어차피 지나고 나면 모든 게 다 헛되고 헛된 것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