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눈과 같은 현자


동문기고 안호원칼럼-눈과 같은 현자

작성일 2010-12-30
눈(雪)과 같은 현자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정치적 불안, 경제적 불안, 사회적 불안은 연속이다. 더욱이 천안함 피침에 이어 연평도 폭격과 구제역 재난 등 들려오는 소식들로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이르다보니 남을 탓하는 미움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탈진한 상태다.

2500년전 이 세상에 살았던 노자의 글 중에 요즘 세태에 걸 맞는 글이 있어 인용해본다.

“절성기지(絶聖棄指)하면 민리백배(民利百倍)요. 절인기의(絶仁棄義)하면 민복자효(民復慈孝)이며 절교기리(節巧棄利)하면 도적무유(盜賊無有)라”

이를 풀어보면 거룩의 개념을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백성들의 이득은 백배에 이를 것이며 어짊과 인의를 버린다면 백성들 모두가 효자가 되고 자비로운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말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도적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찰스 킴블은 “부처의 가르침을 절대적인 덕목으로 삼는데서 온 오기의 결과, 대속으로 죽어간 예수의 십자가를 앞세워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전쟁과 살육이 있었는가? 어떤 성스러움도 하나의 가치로 자리 잡는 순간 백성을 괴롭히는 괴물로 둔갑함을 노자는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진리에 대한 특정한 해석에만 집착하다 보면 자기네 종교의 유명한 가르침에 어긋나는 신념과 행동 등 온갖 종류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억압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노자는 “절성기지 민리백배. 절인기의 민복자효, 절교기리 하면 도적무유”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나만 거룩하니 내가 참 진리이니 하는 독선적인 자세를 버린다면 백성들은 더 큰 복을 받을 것이며 인의를 가르쳐 그런 것에 목숨 거는 백성들(전쟁 영웅, 독립운동가 등) 을 만들지 말고 그런 인물이 없어도 살기 좋은 세상, 효행자와 자애하는 사람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지도자의 참다운 리더십이 아닐까 생각된다.

내가 진리이니 나를 따르라고 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거짓의 멍에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한바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사람들을 강요하며 따르라고 한 적이 없다. 그저 스스로 몸소 실천하시면서 인간이 가진 오만과 편견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리 숙일 것을 말씀하셨을 뿐이다.

오늘 우리는 남북간의 긴장이 고조에 이르는 심히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에 있다. 일촉즉발의 위기가 우리 앞에서 사람들을 위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미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젊은이들이 죽음을 맞이했고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슬픈 현실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데도 유언비어가 난무하다.

그동안 햇볕정책이다 하며 퍼주고 감싸주기만 하다 보니 그만 안보에도 둔감해져 위기감각도 상실한 채 이상(異狀)의 꿈에 취해 있다. 지난 60여 년간 남북은 이런 긴장 속에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야수처럼 으르릉거리며 살아왔다. 정치권은 물론 종교계마저 내가 진리이니 내가 선이니, 내가 정의이니 나 이외의 반대자들은 이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심정으로 살아온 것만 같다.

요즘 우리 종교계를 보면 퇴행(退行)하는 느낌이 든다. 우선 거친 표현부터 불안하다.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앞으로 청와대, 여당의 전화는 일절 받지 말고 만나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건 너무 한 거 같다. 또 천주교 일부 사제들이 자기들의 의사와 다르다는 이유로 추기경을 비아냥거리며 종교불행 운운하는 것 또한 감히 존경받는 성직자로서 표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대선(大選)까지 생각했다는 야당의 한 의원이 ‘이명박 정권 죽여 버려야...’ 하는 등의 막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고도 자성은커녕 뻔뻔한 모습으로 국민의 이름을 파는 것을 보면서 의원의 자질과 인격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더구나 저런 사고를 갖고 있는 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하는데 까지 이르니 움찔해진다.

공인이라면 자제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독설가 반열에 오른 그가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인가? 인정에 약한 유권자인 국민들의 의식이 안타까울 뿐이다.

종교지도자나 정치인들의 경우 자신이 최고이며 자신만이 옳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언행부터 새로 배워야 할 것 같다. 이 같은 종교계나 정치권의 어이없는 행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대한민국은 자유가 있는 나라이구나 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지면 결국 지역 갈등, 이념 대립에 종교 갈등까지 포개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회를 위한 종교’ 가 아닌 ‘종교인을 위한 사회’ 로 변질되면 끔찍한 재앙이 기다린다. 정치권에 이어 종교계마저 이 모양이니 이 세상 살기가 더욱 불안하다. 올해는 한일합병 100년, 6.25 동란 60주년이 되는 해다. 그 광야의 긴 세월 동안 우리의 시련은 다 우리를 낮추시며 우리를 시험하사 마침내 우리에게 복을 주려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음을 알고 먼저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서두르지 마라. 무슨 일이든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면 불만은 사라진다. 마음에 욕망이 일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근원이요 노여움은 적이라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일을 모르면 해(害)가 그 몸에 미치게 된다. 자신을 책망할지언정 남을 책망하지 마라.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다” 평생을 치열한 전쟁터에서 삶을 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글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시간. 정치도, 종교도, 사회도 그리고 남북관계까지도 이웃 사랑의 개념을 재정립한다면 2500년 전 노자가 설파했던 절성가지와 정인기의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다가오는 신묘년은 종교지도자나 정치지도자들이 좀 더 열린 마음이 되어 이 사회가 밝고 맑은 그리고 전쟁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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