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구시초화지문


동문기고 안호원칼럼-구시초화지문

작성일 2010-11-27
말을 조심해 하라는 뜻의 구시초화지문(口是招禍之問)이란 말이 있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란 뜻으로 경망스럽게 함부로 입을 놀리면 화를 불러일으키니 입조심을 하라는 것이다. 모든 집에는 문이 있다. 모든 사람은 이 문을 통해 들어오고 나간다. 우리 몸에서 이 문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입이다. 이 입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과 사상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한번 내뱉으면 다시 담을 수 없는 게 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다시 담을 수 없는 게 말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 작은 일, 큰일을 불문하고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의 양심과 인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날카로운 칼날보다 더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말이다.

그만큼 세 치 혀가 가진 위력은 대단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 사회가 막말로 오염되고 있다. 인터넷 댓글에서나 발견되던 공격적인 말투가 어느새 일상에 자리하더니 급기야는 지상파 방송까지 점령하는 분위기다.

심지어는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교수, 경제인, 정치인들도 공식석상에서 조차 살벌한 독설(毒舌)을 주저없이 내뱉고 있다. 해서는 안될 말, 뱉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독설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새말로 공수표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풍토는 결과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신을 초래할 뿐이다.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목적과 생각이 반영돼 있다. 상대방을 흠집 내고 매도하는 악의적인 막말이 확산된다는 것은 곧 사회 전체의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본래 ‘관(棺)’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던 우리 사회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막말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언어 형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사회여론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의 언어 사용을 보면 정말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국감 때나, 청문회 때나, 국회가 열릴 때마다 똑같은 것이 있다. 저속한 말투, 무조건 터뜨리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 한 발언, 이해관계와 어긋날 때는 슬그머니 바꿔버리는 비도덕성, 유리할 때만 인정하고 불리하면 부인해 버리는 태도가 우리 사회를 막말하는 사회, 막말 전성시대로 만들어 버렸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막말을 잘하는 것이 힘의 상징인 것처럼 인식되어 버렸다. 어쩜 그 같은 공(公)은 유권자들에게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유독 정치인들이 막말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어서다. 그래서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막말과 함께 폭력을 휘두르며 고함을 지르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도 없는 막말로 끈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대중의 불쾌감을 일으켜 공인으로서의 생명을 단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어학자들은 “사람은 언어로 사고를 표현하고 언어에 반영된 대로 사고하는 존재” 라고 설명한다. 즉 언어가 생각의 산물인 동시에 생각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말이 거칠어지면 사고자체도 거칠어지기 쉽다. 막말은 결국 사회에 품격 없고 공격적인 분위기가 만연하게 되고 그 손해는 고스란히 개개인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거짓말을 밥 먹기보다 더 하는 정치인들, 내 배만 부르면 된다는 생각에 한 순간을 움켜쥐려고 안간힘을 쓰는 기업인들, 양심을 팔고 있는 학자, 지성인, 성직자들이 내뱉은 말들이 허공 중에 갈 곳을 모르는 시체가 되어 방황하고 있다. 세치 혀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지는 우리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내 경우 사람들에게 말을 할 때 특히 화가 나 있을 땐 침을 한번 삼킨 후 말을 하라고 한다. 이유는 비록 몇 초의 시간에 불과하지만 마음에 상처를 안겨주는 막말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막말을 들었을 때 가슴에 남는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막말은 그래서 분노와 폭력의 악순환을 만들어 낼 뿐이다.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흔히 사람들은 무엇인가 감추려고 하거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을 때 그것을 포장하려는 의도에서 목소리를 까닭 없이 높이고 막말을 많이 하게 된다. 입을 통해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향기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무향, 무취, 무미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독(毒) 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막말이 독화살이 되어 상대의 가슴에 꽂혀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을 되짚어보자. 아울러 그 같은 막말은 언제 어디서 부메랑이 되어 나를 향해 더 강력한 독을 품은 채 되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리 가까운 부부일지라도 말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