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 인생의 참 의미
“이 또한 지나가리라” 본래 이 말은 유대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쉬(midrash)의 다윗 왕의 반지에서 유래된 말이다.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 명했다.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이에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기는 했는데 정작 반지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 때 왕자가 일러준 글귀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다.
과거 러시아의 수도 페체르부크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결같은 대답으로 고급 외투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생의 목표인 외투를 갖기 위해 먹지도, 입지도 않고 돈을 모아 마침내 80루불짜리 고급 외투를 샀다. 흥분된 마음으로 새로 산 외투를 갖고 오는 도중 그만 강도를 만나 외투를 강탈당하고 말았다.
노인은 절망했다. 단순히 고급 외투를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그의 성공과 행복, 그리고 꿈과 성취감을 모두 강탈당한 것이다. 그 날 이후 그 노인은 식음을 전폐하며 좌절의 늪에 빠졌고 그래서 속상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야 말았다. 외투를 강탈당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모든게 다 지나가리라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고골리라는 러시아 작가가 쓴 단편소설 ‘외투’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현실 속에서도 대다수 사람들은 이 노인처럼 고급 외투를 삶의 본질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머지않은 날에 그 의미를 잃어버리며 한 순간의 만족밖에 느끼지 못하는 물질적인 것에 목표를 두고 아까운 시간을 소비한다.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찾기보다 돈, 건강, 명예, 성공 등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것은 솔로몬의 글귀처럼 언젠가는 무너지고 없어지고 흔적조차 없이 지나가는 것이다. 결국 우리 인생은 평생을 허망한 것만을 위해서 발버둥치고 허우적거리며 어리석음을 범하다 마침내 죽고 마는 것이다.
물론 물질이 무조건 의미 없고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물질적인 것에 너무 치우쳐 자신의 인생을 너무 많이 소비해 버리기에는 짧은 인생의 시간이 너무 아쉽고 짧다는 뜻이다. 성서(聖書)에 보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다. 물질적으로 빈곤한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 가난 한 사람”은 세상의 소유와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영향력이나 권력이나 특권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억압을 당한다. 또한 자신의 절대적인 무능함을 알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류들을 일컫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권력이나 돈이나 물질 등 세상 것들은 무엇이든지 있다가도 없어지고 만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기에 그것들에 대해 목을 매달거나 의존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도움을 줄 수 있고 희망과 힘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을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되다”라고 했다. 결국 성경에서 나오는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이 아니라 마음의 가난을 의미하는 것이다.
짧은 나의 인생을 걸어볼 만큼 진짜 의미 있는 삶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반문해 본다. 한 소금 인형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벌에게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나 보다 더 넓은 세상을 돌아다닌 바람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그래서 소금인형이 바람을 찾아가 물어봤다. 그랬더니 바람이 산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산을 찾아가 자신이 누구인가를 물었더니 산도 대답하기를 나 보다 훨씬 크고 넓은 바다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소금 인형은 바다를 찾아가서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바다가 소금인형을 부른다. 그는 바다로 들어갔다. 자신의 머리까지 바다에 잠길 때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또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인생의 본질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아는 것이라 했다. 40년 전 월남전(戰)에 참전하면서 고엽제 증후로 인해 늘 병원을 다니며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영관급 전우이자 친구가 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그 친구는 얼마 전까지는 왜 자기에게만 그런 시련이 오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자신이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할 일이 있고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간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
60대 중반에 아직도 할 일이 있다는 건 행복이다. 코피가 자주 난다. 그래서 병원을 3~4일에 한 번씩 가서 치료를 받는데 수술 성공률이 희박해 의사들도 수술을 꺼린다. 어쩜 평생을 치료 받아야 할 지 모른다. 그래서 일까, 마음이 무척 약해졌다.
오늘도 병원을 다녀 온 후 옷장에 걸린 옷(양복)을 바라보며 저 옷을 내년에도 입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런 생각에 미치니 스쳐 지나가는 지금 이 시간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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