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자유.평화는 거저 얻는게 아니다
지난 달 25일은 6.25 전쟁.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억조차 하기 싫은 날이지만 한편으로는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북한의 도발로 인한 천안 함 폭침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은 채 오늘을 맞는 우리의 소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남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당시 태어난 아이들이 환갑을 맞을 만큼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갔다. 현 인구 중 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는 고작 20%에 불과하고 그나마 10여년 후면 거의 소멸상태가 된다. 정권이 바뀐 탓일까 과거 10년 정부에서는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6.25행사에 고위직 관리나 정치인들의 참여가 전무한 실정이었고 대통령은 친북단체 인사들과 오찬을, 심지어는 이 모 국무총리는 골프를 치면서 행사에 참여치 않았다.
의정부 여중생 탱크 사망사건 조문에는 시민단체에 눈도장을 찍기 위해 정치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참석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60주년을 맞는 올해는 6.25행사에 이 대통령이 참석하고 또 언론과 방송사들이 마치 낡은 음반의 잊혀 진 곡들을 복원해 내듯 기억을 재생하는 프로그램을 다투어 내놓는 모양새다.
한편으로는 전쟁의 리얼리티를 있는 그대로 보이려는 기획물과 영산물이 경쟁을 하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풍요롭게 자란 전후 세대들에게는 6.25 전쟁의 참회에 대해 가슴을 때리지 못하는 사건, 비극적이지만 슬픔이 와 닿지 않는 밋밋한 스토리 정도 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6.25는 잊혀 진 전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6.25는 지난 사건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단체나 젊은 세대가 6.25를 지나간 사건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분명하게 지적한다면 아직도 우리 삶 전체가 6.25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군비지출, 병역의무, 국제관계, 이산가족들, 남북대립 모두가 6.25 전쟁이 남긴 것들이다. 아직도 이러한 무지에는 과거 10년 정부가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하면서 6.25의 실체를 국민뿐만 아니라 군의 기강해이 등으로 모호하게 만든 것이 한 몫을 톡톡히 해냈다.
일요일 새벽 기습 남침해 동족의 가슴에 총 뿌리를 들이 댄 전쟁임에도 북한은 6.25를 김일성의 탁월한 영도아래 승리한 전쟁으로 대내외적으로 각색선전하면서 아직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며 기념식을 갖는다. 이에 반해 우리(남한)의 경우 다원주의사회라 그런지 그 진실과 의미조차 십인십색(十人十色)이다.
어떤 이들은 아주 쉽게 한국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연 그 같은 6.25는 우리에게 어떤 전쟁이었을까 그것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고 자유의 땅을 지키기 위한 호국 전쟁이었다. 백선엽 예비역대장의 말처럼 평화는 그냥 온 것이 아니다. 이 땅에 다시는 6.25라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는 전쟁과 분단마저 정치적이나 이해 타산적으로 이해하는 인식과 사고 자체를 바꿔야 한다.
6.25를 모르는 전후세대와 지난 10년의 햇볕정책의 우회적인 평화는 결국 천안 함 침몰과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깨어나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를 마련했다. 위기가 기회라고 했다. 정부와 군 (軍 ) 그리고 국민은 천안 함 피격 이후의 위기를 계기로 국가 안보체제를 재정비하고 모두의 안보의식을 높이는 기회로 반전 시키도록 온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특히 6.25 한국 전쟁 60주년을 맞이한 호국보훈의 6월. 우리 모두가 잊고 지내온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나라 사랑을 되새기며 새로운 도약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난 달 29일 국회 본 회의에서 “북한의 천안 함에 대한 군사도발 규탄 결의안”이 의원 163명의 찬성으로 채택되었다. 이때도 민주당은 ‘군의 조사가 미흡하다’ 며 ‘북한 공격에 대한 규탄’ 을 ‘천안 함 침몰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으로 바꾸면서도 북한의 사과. 재발방지요구와 정부의 강력한 대응조치 촉구 등은 모두 뺐다.
왜 그랬을까.? 지금이라도 여. 야는 물론 시민단체 종교단체 모두가 정파를 떠나 6.25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성전(聖戰)이 었다는 사실을 엄숙하게 선언하고 자유 수호를 위한 결의를 굳게 다져야 할 때다. 휴일 날 몰래 기습한 것도 그렇고 또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잡아떼는 것도 똑같은 천안 함 피격사건. 그런 것들이 북한의 상투적 수법이라고 단정진다해도 정작 우리 사회에서 조차 일부 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이 정부 발표를 불신하며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정말 천안 함의 진실은 의처증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것일까?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와 정부 발표를 불신하는 야당의원들이야 말로 ‘의처증 환자’처럼 보인다. 이 땅에서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도 그 자유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조금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지금 누리고 있는 그 자유 함이 내 아버지 세대가 6.25때 바친 희생과 헌신 덕분인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막연히 북한의 수법에 말려들면 아버지의 세대가 목숨 바쳐 지킨 자유의 탑을 무너트리는 ‘자유의 반역자’ 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6.25의 진실과 의미가 중요 한 것은 오늘날 일부 정치인들과 불순 세력들이 그토록 강조해마지 않는 자유와 인권이 거기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고등학교 학생이 일간지에 게재한 글이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있는 기념 강당 로비의 대리석 벽에는 역대 전쟁에서 전사한 모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이름이 금빛 글자로 새겨져 있다고 한다. 특히 6.25 전사자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고 했다. 그 학생은 한국에서 학도병 전사자가 가장 많았던 한 대학을 찾아가 보았으나 그런 기념비를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학은 6.25때 희생된 동문들의 이름을 기념 강당 벽에 새겨 놓았는데 정작 6.25를 겪은 우리나라 대학은 우리 땅을 지켰던 동문들의 이름 조차 기억하고 있지 않다. 많은 대학들이 기부금을 낸 동문들의 이름을 커다랗게 새긴 기념 판을 벽에 부쳐놓았다. 또 4.19혁명이나 각종 시위에서 희생 된 동문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 번이라도 6.25의 의미를 알았다면 이럴 수는 없다.
과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흘린 피가 독재에 저항한 피보다 또는 기부금 액수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인가? 생각 할수록 앞날이 걱정 된다. 매년 보훈의 달을 맞이하면서 느끼는 감정이지만 북한의 주체사상 교육처럼은 아니더라도 전후 세대 젊은이들에게 예전처럼 반공. 안보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반공드라마나 영화도 방영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적의 개념과 안보의식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유는 6.25를 정확히 알 때 국가를 지키고 우리가 자유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최상의 방책은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북한의 도발을 무력하게 만드는 강력한 방위역량과 국민의 결집된 안보의식이다.
아울러 남과 북에서 기억조차 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국군포로를 합법적으로 송환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조국의 땅에서 마지막 삶을 보내며 고향 땅에 묻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보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자유를 누리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아니겠는가. 국민 45% 이상이 안보불감증에 걸려있는 현실 상항에서 안보의식 강화는 현 정부의 시급한 과제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