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것은
지난 7일 국군수도병원에서 두 시간 동안 계속된 천안함 사건 관련기자회견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란 생각이 들었다. 생사의 경계를 넘어 구출된 57명의 천안함 해군들이 함장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군복이 아닌 환자복을 입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명장으로 불리던 조지패튼 장군은 “군대의 생명은 군기(軍紀)다. 군기를 날 선 상태로 유지하거나 강화하지 못하는 지휘관은 잠재적인 살인자다”라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특히 그는 복장이 엄정하지 못한 병사는 전투에서도 승리하지 못한다며 언제나 헬멧과 각반은 물론 심지어는 전투 중에도 넥타이를 매게 했다고 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그럼에도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몰라도 현역 군인이 공개석상에 나오면서 군복이 아닌 환자복을 입고 나오게 하다니....
누가 뭐라 해도 천안 함의 침몰 사건은 너무도 비극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천안함 이란 이름만큼 그동안 국민을 편안하게 지켜온 전함이란 이름에 부응하며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해 탑승객 중 절반에 가까운 장병들이 희생되었음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애도를 표한다.
현재 인양 작업 중 외부에 의한 충격으로 밝혀지면서 북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추측 속에서 천안 함 침몰의 원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선체를 인양 한 후 조사단에 의해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지겠지만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국민의 알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자칫 적에게 자신도 모르는 채 이적행위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시시각각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보도를 한다. 그런 빠른 보도가 문제가 아니라 너무 상세히 도표까지 그려가면서. 심지어는 함선의 내부 구조라든가 병기 배치도까지 군사 기밀에 속 할 사항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경우 힘들이지 않고 정보를 손쉽게 얻는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안보문제까지 연결될 수 있는 군의 문제를 감안해서 논의 할 문제들이 정파간의 이익으로 쟁점화하려는 정치권과 앞서가는 보도에 의해 국민들의 유언비어로 인해 군의 위상이 실추되는 가운데 군을 불신하며 폄하시키는 모습들을 볼 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다.
공개를 너무 요구하는데 사실 일반인들로서는 그렇게 스포츠 중계를 하듯 세부적인 내용까지 드러나는 것은 시정해야 할 것 같다. 일반인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비록 공개를 한다 해도 외부 노출은 금하면서 제한적인 공개를 했으면 한다. 굳이 알리지 않아도 좋은 것까지 언론사들이 열띤 경쟁을 벌여가면서까지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군사기밀을 누설 하는 행위 일 뿐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북한을 생각하면 오싹 소름이 끼칠 정도다. 유가족이나 정치인들이 아무리 공개할 것을 요구를 한다 해도 군은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것은 밝혀서는 안된다. 모든 사실이 공개되어 한 점의 의구심도 갖지 않게 해야 하겠지만 국가 안위를 위해서는 선별적으로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천안 함 사건 발생 이후 연일 현장 상황이 기사화되고 보도도 되고 있지만 사지에서 의무를 다한 뒤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지만 전우들을 잃고 혼자 살아나왔다는 충격으로 지금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생존 장병들에게 국방 장관이나 고위층인사나 정치인들이 자신이 살려고 하지 않고 서로 살리려했던 이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그들에게 악몽을 잊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불어 넣어준 인사가 있었다는 기사는 한 줄도 볼 수 없었다는 데 있다.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겨우 한다는 것이 군기가 들어있는 제복을 입히기보다 허약해 보이는 환자복을 입혀 외부와 관계를 차단하고 병실에만 있게 했을 뿐이다. 강한 병사들을 겁쟁이 병사로 전락시킨 결과를 초래 한 것 같다. 그러다가 마지못해 아직도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을 환자복을 입혀 TV 앞에 세워 놓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군의 권위가 실추되고 유언비어가 나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기억하고 위로해야 할 또 한 사람이 있다.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함선과 많은 부하들을 잃은 함장이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죽는 것 보다 더 고통스럽고 괴로울 사람이 함장이다.
비록 배와 운명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도 수병들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그에게 “왜 당신은 살아 돌아 왔느냐”고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한 사람도 있다지만 그에게도 위로와 함께 용기를 불어 넣어주어야 한다. 더구나 그는 노련한 경륜의 해군 고급간부가 아니겠는가. 그에게 소외감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우리가 위로를 한다 해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는 그는 한 동안 자신이 부하들을 죽였다는 사실과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로 죄의식에 빠져 정상적인 근무를 못 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한다.
살아 돌아온 수병들과 함장에게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래야 그들의 사기가 높아짐은 물론 그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나 언론이 온갖 추측과 낭설을 여과 없이 토해내며 군을 불신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야권이나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여당을 몰아치는 식으로 기밀까지도 밝히라고 강요하며 혈안이 되어있다면 도대체 그 것을 밝혀 어쩌자는 것인지 묻고 싶다.
더욱이 비극의 장소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군사 지역에서 일어난 일임을 감안 군에서 밝히기를 꺼리는 교신내용까지 너무 밝혀내는 것은 오히려 적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효과만 가지고 올 뿐이라는 우려감 마저 든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군을 믿고 신뢰하는 선에서 국민들에게 알렸으면 한다.
이제 선체가 인양되면서 실종 장병들이 한 명 한 명 싸늘한 주검의 모습으로 드러날 때마다 유가족들은 참기 힘든 고통에 시달릴게 뻔하다. 국가를 위해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다 안타깝게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 그 가족들의 아픔을 어우러주는 것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 모두의 책무다. 그들의 거룩한 희생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해양 강국이 되어 국가 안보를 더욱 튼튼히 하는 전화위복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아직도 자기 분신과도 같은 배의 처참한 시신을 온 국민에게 공개해야 할 장병들의 참담한 심정과 기밀을 누설치 않으려는 군 고위층의 심정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함장을 비롯한 생존 장병들과 지금도 말없이 현장을 지키는 다른 장병들의 마음도 헤아려 줄 줄 아는 작은 배려가 절대적으로 아쉽다.
더욱이 똑같이 수색에 나섰다 어선이 침몰하면서 실종된 어부들의 구조 활동이나 기사가 그 날 이 후 어느 언론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프다. 실종자가족 역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명의 귀중함은 똑같은 것인데도 말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그들의 실종가족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 사건을 보면서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생각한다. 모세는 12명의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현실을 긍정하는 정탐꾼보다 믿음에 의지하는 여호수와 갈렙의 보고를 택했다. 그래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된다. 만약 추측대로 이번 침몰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난다면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이런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최고 통치자의 현명한 판단이다.
하나님께서 에스더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버려 비장한 각오를 했듯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모세와 같은 지혜를 주셔서 슬기롭게 해결 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우리가 용서는 하되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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