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희망이라는 힘
성경에 보면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있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우선 하나는 오늘 닥친 문제도 처리하기 벅찬데 내일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미래의 문제를 미리 앞당겨서 염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끝으로는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처한 삶에 대해 유익을 삼고 족한 은혜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하나의 시간이라는 공간으로 묶는다면 그 안에는 시작과 끝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붉은 꽃잎이 열흘 가기가 힘들고 세도가 10년 가기 힘들다는 옛말이 있듯이 우리가 겪는 고난도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삶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때론 곡예사가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 하기만 하다. 바람 잘 날이 없듯이 걱정이 없는 날이 전무하고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어느 것 하나도 결정하거나 결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렇게 망설이고 불안해하는 것은 지금이 아닌 내일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늘 두려움으로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삶이란 모든 이들에게 힘들기만 하다. 말로는 쉽게 ‘나는 행복하다’ ‘나는 기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얼마만큼 자신이 행복하고 어느 만큼 기쁨의 삶을 살아왔는지를 돌이켜보면 딱히 피부로 느낄 수 없을 정도다.
결국 ‘나’라는 ‘내’가 내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참 나’를 찾아 헤매다보니 행복과 기쁨을 느끼기에 앞서 고통과 자신과의 갈등, 불안감 속에서 허전함을 느끼며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우울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나’라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야 할 존재이유를 생각해본다면 그 삶은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이들에게 나름대로의 능력을 주시면서 저마다 존재 이유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행복은 돈이 많다고 해서 느낄 수 있는 값싼 감정이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힘든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끈기와 노력에서만 찾을 수가 있다. 그래서 부자 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보이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월리엄 마스턴이 시민 3천명을 대상으로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를 물었는데 설문 응답자 중 94%가 미래를 기다리면서 현재를 그저 참아내고 있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를 한 월리엄 마스턴은 이 같은 응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응답자 대다수가 그 미래에 대한 희망은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현재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모두가 오늘이라는 현재 시간의 중요함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간 어제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일을 기다리며 귀중한 오늘의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이 흘러 보낸다는 것이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콜로키움 과정 1기 원우들이 수료를 앞두고 지난 28일 연구보고서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이 개척교회 목회자들로서 중ㆍ장기 목회비전을 발표했는데 한결 같이 어려움과 고통의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가슴이 찡함을 느꼈다.
그러나 고난은 어차피 인간이라면 다 겪어야 할 과제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궁핍하고 핍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한다면 기뻐 할 수 있는 것을 알아서 일까 내 마음과는 달리 목사님들의 모습은 참으로 평온했고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이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지금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알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은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라고 노래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땅위에 사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거치는 훈련이다. 그 고난은 우리들에게 고통을 주고 괴로움을 주며 피해만 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존 밀턴은 시력을 잃고 소경이 되어 쓰라린 고통 속에서 ‘실낙원’ 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이루었고, 베토벤은 청각을 잃어버린 뒤 오히려 더 훌륭한 작품을 완성시키기도 했다. 또 모차르트의 경우 가난과 굶주림 속에 시달리면서도 불멸의 명작인 ‘진혼곡’을 작곡했다.
단테도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신곡’을 저술하기도 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인생의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끝이 있고 출구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 고행을 이기고 견디면 그 끝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단다. 그런 희망이 있기에 우리가 고난을 버티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희망이 우리를 강하게도 만드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욥과 요셉도 그랬고 이스라엘 민족도 고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코 그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족과 엄청난 재산을 잃고 사금파리로 살을 끓는 시련을 겪은 욥이나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이나 이스라엘 민족 역시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지만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어 신앙이 회복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축복받는 은총을 입었다.
결국 고난을 참고 견디며 희망을 잃지 않는 다면 우리에게 값진 것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우리의 여정을 가로막는 벽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은 이 세상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 벽은 벽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한 순간의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벽을 뛰어 넘어야 한다.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것은 가장 끈기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다.
지우가 내게 보낸 어느 9세기 왕의 충고다. ‘너무 똑똑하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지도 말라. 그리고 너무 물러서지도 말라. 너무 떠들지도 말고 너무 침묵하지도 말라. 너무 강하지도 말고 너무 약하지도 말라. 너무 똑똑하면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기대 할 것이고 너무 어리석으면 사람들이 속이려 할 것이다. 너무 거만하면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너무 겸손하면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말이 많으면 말에 무게가 없고 너무 침묵하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너무 강하면 부러질 것이요 너무 약하면 부서질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요모조모 따지다 보면 참으로 살기 힘든 세상인 것 같지만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수도 있다. 바라기는 이번에 대학원을 수료하시는 원생들이 모세가 80세가 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처럼 오늘의 당한 괴로움과 고난을 족한 은혜로 여기면서 고난 속에서 축복과 은혜의 기회로 삼는 지혜로운 사역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