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 칼럼-마음의 행복


동문기고 안호원 칼럼-마음의 행복

작성일 2010-01-02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반복되는 표현이지만 우리가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은 인간 세상에 순간순간 많은 사건들을 접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특히 최근 들어 이 말이 더욱 실감을 할 정도로 우리의 삶이 너무 바빠지고 살벌해진 것 같다. 눈만 뜨면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들이 지면을 도배질 한다. 하루 한 달, 일 년 365일.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우리를 경악케 하는 일이 쉘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아들이 부모를 살해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고 부모가 핏덩어리인 자식을 거리에 버리고 선생이 제자를 성폭행하고 제자가 스승을 구타하고 심지어는 불특정다수의 연쇄살인사건 등이 심심찮게 신문 방송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흉흉한 사회가 바로 오늘의 우리 사회가 되어버렸다.

거기다 정치인들은 자기의 욕심만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신분을 망각한 채 평소에는 식물국회가 되어 거리로 뛰쳐나와 투쟁을 일삼고 개원을 하면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우는 동물 국회가 되어 으르렁거리면서도 국가 예산편성은 나 몰라라하며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이 모두가 소유에 대한 집착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수필집 중 베스트셀러가 된 ‘무소유’가 있다. 덕분에 ‘무소유’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져나간 적도 있었다. 무소유(無所有)란 세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무(無)의 처소(所)가 유(有)다. 그걸 풀이해보면 ‘없음이 있음 속에 있다’가 된다. 이를 반대로 보면 ‘있음이 없음 속에 있다’ 로 된다는 것이다.

붓다는 이를 두고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무소유=공즉시색, 유소유 = 색즉시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소유의 삶을 살며 집착하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의 지혜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고 애매한 말이다. 이 세상에는 착한 부자도 있고 악한 부자도 있을 텐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지적하는 부자는 어떤 부자였을까? 상처, 현재의 욕망,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내 마음이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있다면 그게 바로 소유의 삶이 되고 부자가 되는 것이다. 반면 무소유의 삶은 죽을힘을 다해 틀어쥐고 있던 마음의 손아귀를 푸는 것이다. 즉 내 안에서 분출되는 무한한 에너지를 ‘집착’ 이라는 이름으로 막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평화롭고 화목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행복한 마음과 생활의 기쁨은 나누어주는 나눔에서 온다. 나눔이란 것은 나눌수록 부메랑처럼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눔이란 메아리와도 같아 좋은 것을 함께 나누면 좋은 것으로 돌아오고 나쁜 것을 주면 나쁜 것이 내게 되돌아온다. 나눔이 없을 때는 마음에 공허함이 차오르고 자기 홀로 있는 무인도와도 같지만 나눔을 가질 때는 마음에 넘치는 풍성함이 차오르게 된다.

간혹 우리는 나눌 물질이 없어서 베풀지 못한다고 이유를 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물질의 빈곤보다 나눌 마음이 없는 빈곤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사람들이 성공 후에 더 고독하고 허무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부와 명성을 얻는 일에는 성공했지만 나눔의 일에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눔이 없다는 말은 이웃이 없다는 말이다. 이웃이 없으면 결국 외로울 수밖에 없고 자연히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생에서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행복이다. 그 행복은 바로 나눔에서 오는 것이다. 서로의 나눔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 자신의 인생은 행복한 삶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고독을 느끼고 허무를 느끼는 이유는 나눔의 대상이 없고 나눔의 실천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유욕에 빠지면 점차 소유가 자신의 삶에 무거운 짐으로 변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소유를 이웃에게 나누어주면 삶의 짐은 가벼워지고 행복과 기쁨 그리고 즐거움과 만족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나의 소중한 것으로 그것이 많든 적든 나누면 도움을 받는 사람은 물론 주는 사람도 즐겁고 기쁜 마음 행복을 느낄 수 가 있다는 것이다.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눌 줄 아는 자는 행복한 마음을 얻을 것이지만 자기만의 소유욕으로 충족하여 나눔이 없다면 그는 결국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다. “있을 때 잘 해”라는 노래 말이 있듯이 나누어 줄 수 있을 때 나눔으로 행복의 기쁨을 느끼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어느 시골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교훈에 “저축을 하지마라” 는 말에 대해 ‘저축을 하기에 앞서 쓸 줄을 아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지만 돈을 모으는 동안 죽기 때문에 결국 할 일을 못 한다’는 것이다. 모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쓸 줄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새롭게 들린다.

옛부터 조상들이 대대로 콩 세 알을 심었는데 그 이유를 알아보니 하나는 땅 속의 벌레 몫이고 또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이고 나머지 하나가 사람의 몫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벌레와 새와 사람이 모두 자연의 주인이며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 동반자로 보았던 조상들의 아름다운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날로 인심이 각박해져 숨 쉴 틈조차 없는 현실에서는 먼 옛날의 잃어버린 미덕으로 지워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단 한 사람의 의인도 없더란 말이냐” 분노하시는 예수님의 격한 목소리가 들려올 것 만 같은 두려움에 가슴이 절로 움츠러 드는 기분이 든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따뜻한 사회. 바르고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숙한 단 한 명의 의인을 길러 낼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할 의미가 우리에게 있음을 늦게라도 알았으면 한다.

그 동안 우리는 사는 것에 짓눌려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산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회복해야 할 때다. 경제사정이 나빠지고 나라꼴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일찍 포기하고 남을 탓해서는 안 된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한 해가 저물어가고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리는 이 계절에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때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래도 자신의 것으로 가난한 이웃에게 베품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 겨울도 춥지 않은 겨울을 맞이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기에 이 땅이 아직도 징벌을 받지 않고 밝은 세상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