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무너진 인간관계


동문기고 안호원칼럼-무너진 인간관계

작성일 2009-12-17
옛날에 어떤 노스승이 길을 걷다가 함께 동행하는 제자에게 뜻한 바 있어 길가에 떨어진 새끼를 주워서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더니 제자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심한 비린내가 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노스승이 물고기를 꿰었던 새끼라 비린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조금 지나가다 길가에 버려진 종이를 본 노스승이 주워서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제자가 이번에도 종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니 향(香)내가 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스승에게 아마도 향을 쌌던 종이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노스승이 말하기를 사람도 어떠한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울리느냐에 따라, 어떠한 생각을 품고 행동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역한 비린내를 풍기는 부정적인 면이 사회 전반에 걸쳐 급속도로 창궐하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타락한 세태의 말세론적 풍조에 대해 종교적 안목에서 볼 때 매춘과 인신매매, 마약과 폭력, 성폭행, 무차별적인 살인, 이기적인 삶 등 극도에 달한 퇴폐문화 ‘신(神)조차 부끄러워 숨어버린지 오래 된 피의 땅’으로 비춰지는 영동의 밤거리.

그 옛날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를 떠올리게 한다. 의인 열명만 있어도 여호와의 진노를 피할 수 있으련만 끝내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는 구약의 기록을 떠올리면서 이 세상 삶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요즘 세상사 돌아가는 꼴을 보노라면 느끼는 점이 너무도 많다. 어쩌면 하나 같이 비린내가 나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향을 쌌던 종이로 착각을 하는 것 같은 가당치도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나 정치권은 물론이고 기업인이나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벼운 분노마저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함께 부패의 원흉이 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거룩하고 깨끗한 척은 하지만 비린내를 풍기며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의제를 놓고 회의로 진행되어야 할 국회의사당이 시정 잡배들이 몰려와 떠들고 싸우는 투기장으로 변한지 오래다. 무조건 반대와 상대방 흠집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의인이 되기를 아예 포기한 모습들이다. 서로가 상대를 배척하면서 서로와 서로간에 인격적인 상처만 안겨주고 있다.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에 상처를 일으키는 원인은 피해의식이고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큰 고통으로 느끼는 상처는 ‘무너진 인간관계’ 라고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은 상처들은 건강한 삶을 해치고 행복하게 살 권리마저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과 이웃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쳐 가정, 학교, 직장, 사회 등 공동체까지도 아픔과 불행을 겪게 되는 것이다.

12월에 들어서면서 예전처럼 거리와 지하철에서 구세군의 자선남비가 눈에 띄고 차디찬 우리 마음을 깨는 금속성의 종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려온다. 지식인이자 사회의 리더격에 있는 분들에게 감히 ‘노블리스 오블리제’ (선비 정신) 의 정신을 주문하고 싶다.

이와 관련 조선시대 만석군인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사회적 리더들에게 큰 교훈이 된다. 최부잣집은 나름대로 가문에 규칙이 있었다. ‘흉년에 가난한 사람의 논을 사지 말 것’ ‘진사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물건은 오전에 사고 오후에는 싸게 사지 말라’ ‘흉년 때는 인근 30리 안팎에 모든 굶주린 사람에게 무조건 다 쌀을 나누어 주어라’ 등이 있다.

만석 이상은 가난한 사람에게 사회환원 하는데 소작료를 면제해주는 것으로 선행을 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래서 보통 부자는 오래가지 못하고 3대를 넘기지를 못하고 망하는 일이 많았지만 경주 최부자는 이같은 가문에 규칙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12대까지 같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사는 선비 정신이 있었기에 후대에까지 부(富)가 계승된 것이다. 오늘날 최부잣집의 일화는 리더임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다. 성경에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하는 고백의 기도가 있다. 항상 내 뜻은 생각이 짧다. 그러나 당신 뜻이 이뤄지면 그 때는 다르다. 거기에는 큰 지혜와 큰 능력이 흐른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에게 무한 지혜와 무한 능력이 흘러 넘치는 것이다.

요즘 신종인플루엔자가 창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긴장을 하고 있다. 한 연구원에게 전해들은 말은 전국에서 감염자가 가장 많은 곳이 상상외로 강남 부자 동네라고 귀뜸 한다. 그 이유는 면역성이 약하기 때문인데 너무 환경이 깨끗하고 쾌적하기 때문에 저항력이 거의 없든 것이다. 지금 40대이상은 A형 간염에 걸리는 확률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항체가 이미 다 있기 때문이란다.

또 다른 나라는 산(山) 동네 집 값이 더 비싸다. 이유는 전망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산으로 올라갈 수록 달 동네라고 해서 집 값이 집 값이 싸다. 그 이유는 수돗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 동네는 밤 12시나 되어야 겨우 찔끔찔끔 나는 수돗물을 받아야 하니 밤새 잠도 못자고 심하면 싸움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실 물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다보니 머리감고 씻을 물이 어디 있었겠는가. 모든 게 열악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한 면역력이 생긴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런 달동네가 없어졌지만 말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을 사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다. 이중 하나를 택하게 되는 데 하나는 되는 대로 그냥 저냥 살아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더 나은 삶의 길을 찾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의 절반은 자기 스스로에 달려있지만 그 행복의 절반은 남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남의 불행을 떠맡기도 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천대받고 더럽고 추한 생활에 대한 강한 면역력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이겨나갈 수 있는 저력의 힘이 있다.

머지 않아 예수 탄생의 성탄절이 다가오지만 중생제도를 위해 온갖 부귀영화를 버리고 속세를 떠난 석가모니나 우리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아주 천하고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도 떠올릴 것도 없다. 구름이 흘러가듯, 강물이 흘러가듯, 시간이 멈출수 없듯이 그렇게 흘러가는, 멈출 수 없는 나그네임을 알고 깨닫는 우리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육욕, 권세욕, 명예욕 이 세 가지 유혹을 버려야 한다. 심한 비린내가 나는 ‘새끼’가 되든 향을 쌌던 ‘종이’가 되든 그것은 자기에 달렸다.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은 보기 좋은 세상이 아니라 살기 좋은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이다.

작금의 세상을 보면서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 (欲知前生死 今生受者是: 전생의 일을 알고자하면 금생에 받는 것을 보면 된다)라는 옛 말이 생각난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