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도덕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 의 흑백논리
‘봄은 처녀요.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 라는 폴란드 속담이 있다. 일년 사계절을 여성에 비유한 것이 매우 재미있다. 이 속담을 풀어보면 봄은 처녀처럼 설레며 부드럽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름은 어머니 숨결처럼 풍성하고, 가을은 홀로 된 미망인처럼 허전하고 쓸쓸하고, 겨울은 계모처럼 쌀쌀맞고 차갑다는 뜻으로 의미를 두고 싶다.
가을인가 싶더니 겨울이 눈 깜빡할 사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제 달력도 마지막 한 장만이 덜렁하니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달력마저 찢어져 버릴 12월. 무성했던 나뭇가지도 옷을 벗고 단풍으로 물들었던 잎새들도 모두 떨어져 환경미화원들의 빗자루에 쓸려 떠나고 있다.
자연인인 우리 역시 언젠가는 저 나뭇잎들처럼 떨어져 지워질 날이 오는 것을 알기에 하루하루의 마지막 삶을 가치있게 살아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후회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하면서도 후회 없이 떠난 세상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다.
“청년은 과오를 범하고 장년은 싸우고, 노년은 후회한다.”고 영국의 유명한 수상 디즈레일리는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인생이 다 흘러간 뒤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인생이 어떻게 살아가야 가치있는 삶을 살다 가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같은 깨달음이 있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때 가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을 지금 알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삶의 비극은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게 아니라 정말 자신이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데 있다. 삶의 의미는 죽음의 의미를 앎으로서 비로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옛날 ‘윤기’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산문에서 ‘차라리 벙어리로 살리라’며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한탄하는 글을 썼다. 그의 글에서 우리의 일상을 따끔하게 일깨워주는 훈계를 느낄 수가 있었고 또 그 같은 글을 통해 최근 불편한 내 심기를 그대로 드러낸 것 같아 짜릿한 기분마저 드는 것은 무슨 변고인가.
우리가 흔히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은 단지 검정 색과 흰색을 구별하는 것만큼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들이 간혹 옳은 것을 그르다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도 한다. 마음 속으로는 진실을 알면서도 분별하여 밝히고자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이쪽 저쪽에 대한 친소(親疎)관계라는 이유 때문에 고의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아무런 주장도 없고 단지 남의 말만 믿는 자도 간혹 눈에 띈다.
때로는 선입견을 굳건하게 지키며 더 이상 따지거나 밝혀내려 하지 않는 자들도 있다. 하나 같이 공명정대한 주장을 어둡게 만들고 거짓과 비방을 어둠속에 묻어 버리려만 한다. 옳음은 결국 힘에 따라 그름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 된 주장은 마침내 옳은 것으로 비춰지게 된다.
흑백 구별은 누구나 가능하다. 작금의 사회는 흑백을 둘러싼 이해 관계, 사회적 관계로 흑백에 대해 전혀 상반된 ?를 불러오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한다. 이는 진실규명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거나 개인적인 친소관계, 선입관, 눈앞의 이해관계 등에 의해 옳고 그름이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데 있다.
용산철거민 사건, 미디어법 개정, 4대강 개발사업, 노조전임자 임금, 그리고 행정도시로서의 세종시 문제와 최근 전직 대통령들의 부정과 비리 등이 바로 그렇다. 한 나라의 국가 정책을 논하기 전 정리정략에 빠지면서 무지한 힘의 논리로 흑과 백을, 옳고 그름을 선택하는 짓을 정치계의 세계에서는 반성의 기미도 없이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시야의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눈앞의 먹이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꼴이다. 불의를 자행하고 도덕 불감증에 걸린 사회지도층과 정치인들 덕분에 세상이 온통 거짓이 난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을 감시해야 할 국민들이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침묵하고 있다. 나라와 국민은 어떻게 되든 나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소수 권력자의 세계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현실세계가 바로 모순 자체인 것 만 같다.
그같은 모순의 주범은 부유층과 권력층의 무한한 탐욕과 거짓 그리고 위선에서 시작된다. ‘차라리 벙어리로 살리라’고 했던 작가.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냥 침묵만 하고 있겠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단지 그를 대변한다면 사회적 혐의와 경계를 이겨내기 위한 약자의 부득이한 방법일 것이다.
요즘 소위 잘 나가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의 표현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분수를 알고 진실하게 살며 한 순간의 그름도, 생각도 미워하며 세류에 휩쓸려 물들어 가는 것을 오히려 치욕으로 여기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가치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이제 정치도 성년이 된 만큼 바뀔 때가 된 것 같은데 여전히 함마를 휘두르며 기물을 파손하고, 거리로 뛰어나오고 여전히 어린아이 보다도 못한 짓을 한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침을 뱉는다. 그리고 당리당략에 휘몰려 국민을 우롱하며 논란과 공방을 일삼고 있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연봉을 생각하면 울분이 치솟기도 한다. 부끄럽다 못해 절망감마저 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오래된 정치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양상들이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감응하여 잘못 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를 답습하며 오류가 늘어만 간다. 이는 모든 형상과 자취를 제대로 경험하고서 이치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호오(好惡)와 친소에 따라 진실과 다르게 말을 만들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누구든지 간에 한 해가 저물고 마지막 남은 달력을 뗄 때만 되면 왜 지난 날들을 그렇게 아등바등 하면서 살아왔는지, 여유 없이 살아왔는지를 후회하게 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산 자들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모든 날들을 최선을 다해 살라는 것이며 한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살라는 것이다.
불의를 자행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정치지도자들, 기업인들, 도덕 불감증에 걸려 옳고 그름도 가질 줄도 모르고 그저 당론에 매달려 그 정책에 자기 의사표시도 제대로 못하고 거수기가 된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들의 작태를 보면서 우리 어찌 벙어리로만 되어 입을 다물고 살 수 있겠는가. 이 기회에 막대한 국비를 낭비하는 국회와 지방의회를 해산시키는 국민 운동이라도 벌리지 않아야 하겠는가. 하늘은 아는 데 제 잘난 맛에 눈만 뜨면 서로에게 침을 뱉는 게 참 답답하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