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뒤집혀져 새로운 하늘을 보자
뒤집혀져 새로운 하늘을 보자
2009년 10월 15일 (목) 09:39:25 안호원
유일하게 돼지는 죽을 때까지 하늘을 쳐다볼 수가 없다. 구조상 목뼈가 아래 쪽으로 너무 굽어 있어서 고개를 들어도 하늘은 볼 수가 없게 되어있다. 그 같은 돼지를 보면서 우리의 인생도 때로는 돼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평생 땅 바닥, 구두 코끝만 쳐다보며 살아가는 인생이 너무 많은 것 같은 세상이다. 일상의 안주로 인해서 새로운 세계를 볼 기회조차 잃고 마치 눈 먼 사람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서 나름대로 상상하고 코끼리의 형상을 각기 말하는 것 같은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단지 이 세상에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서만 발버둥치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남이사 죽든지 말든지 오직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려드는 인생이라면 결국 돼지 수준의 인생에 불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돼지에게도 하늘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은 그 돼지가 넘어져서 발라당 뒤집혀져 있을 때다. 뒤집힌 돼지는 비로소 넓고도 푸른 하늘을 보게 되고 그래서 새로운 세계를 맛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땅만 있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하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돼지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에게도 간혹 뒤집히는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렇게 발라당 뒤집혀야만 보이는 세계도 있다는 것을 알고 뒤집힌 것을 속상해 하지말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아드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원함은 아니었지만 뒤집힘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고, 새로운 깨달음을 발견하면서 무한한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뒤집힘을 두고 ‘광야’ 또는 ‘고난’ 이라고도 부른다. 원치 않는 질병, 원치 않는 가정 붕괴, 원치 않는 경제파탄으로 인한 실직 등이 바로 뒤집히는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턴으로 임상목회 실습을 할 때 말기암 선고를 받았던 한 젊은이를 상담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의사로부터 ‘암’ 이라는 말, 그것도 ‘말기’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랗게 보였지만 곧 바로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암 말기 선고를 받고 그동안 아무 의미도 찾지 못했던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삶에 대한 애착으로 질병을 기적적으로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또 대학을 다니다 휴학을 하고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한 제자가 “사회에서 무의미하게 보내다 막상 군에 입대하니 새로운 세상, 넓은 세상을 보게되고 생각이 달라졌다” 고 했다. 이 두 사람의 말처럼 때로는 이렇게 뒤집혀짐으로 안 보이던 것, 모르는 것을 보게되고 깨닫게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환난과 고난은 어느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때로는 병에 걸리거나 돈 때문에 곤경에 빠진다거나 실의에 깊이 빠져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가족이 아프거나 불의의 사고로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 자녀들의 학자금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 같이 우리가 시련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것은 인간인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유명한 설교자이자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히틀러에 저항하다 아쉽게도 나치가 패망하기 1주일 전 사형을 당했는데 그 때 그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교도관에게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니다. 또 다른 나의 시작이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할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인 죽음의 순간을 또 다른 삶의 시작으로 바라보는 본회퍼의 담대한 믿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 숙연해지는 마음이 된다. 그런 믿음이야말로 희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인간을 호모에스페란스(Homoes Perans : 희망하는 인간) 라고도 지칭한다.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인간이라면 꿈과 희망을 갖고 산다.
아울러 인간은 한 순간이라도 희망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약을 먹으면 임산부가 자칫 기형아를 낳을 위험이 따르고 음식점에서 사 먹는 음식을 잘못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위험도가 높을 수도 있다고 늘 생각한다면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것도 입에 넣을 수가 없게 된다.
생각해 보자. 생면부지의 사람이 정비 한 차를 타고 다니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운전자에게 생명을 맡긴 채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를 내며 고속도로를 질주 할 때도 차내에서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비록 알지는 못하지만 마음 속에 타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절망은 우리에게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가져다 주지만 희망은 내일을 밝혀주는 등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 같이 일생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초만원의 전철에 시달리면서도, 또 타인으로부터 멸시 천대를 받아도 그 고통을 참아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나이든 사람들의 경우 자식들이 잘 되라는 일루(一縷)의 바램을 안고 힘든 것도 모두 잊은 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실직을 하고 부인이 생계를 위해 전업주부로 바뀌면서 실의에 빠져 있는 후배를 만나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후배에게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이 들어도 희망 하나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어쩜 우리에게 막연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희망마저 잃는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어려울 때일수록 돼지처럼 뒤집혀져 하늘을 보면서 이 세상의 새로움을 발견해 보자. 또한 어둠속에서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존재하듯 희망도 우리 안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용기를 잃지 말고 머언 날 돌아 올 축복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희망의 힘은 위대하다. 따라서 희망이 없으면 삶에 대한 열정도 그만큼 식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먹고 마시고 입는데 너무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또 성경에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기억하자.
글로벌 경제 위기가 우리 삶을 위축시킬지라도 희망을 갖고 그 희망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다.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보상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희망은 믿음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