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칼럼-행복을 경험 한 나그네


동문기고 안호원칼럼-행복을 경험 한 나그네

작성일 2009-10-02
          행복을 경험한 나그네 
 
 2009년 10월 01일 (목) 09:21:29 안호원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듯....”

이 유행가는 오래 전 가수 최희준 씨의 18번 노래였다. 우리 인생의 목적을 생각게 하는 가사라는 생각에서 가끔 마음이 허탈해지면 이 구수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이 땅에서 영원토록 사는 존재가 아니라 유행가 가사처럼 구름이 흘러가듯 이 땅을 잠시 스쳐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한 행인이다.

흔히 인생을 나그네로 비유한다. 그러나 그 나그네는 정처없는 나그네가 아니라 목적이 있는 나그네다. 그래서 나그네로 표현하기보다는 순례자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나그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또 왜 가는지와 누구와 함께 가고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가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빠르다는 KTX도 왕복표가 있다. 그러나 인생길은 한 번 가면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편도다. 그래서 한 번 스쳐가면 다시는 되 돌아 올 수 없는 일생이기에 처음부터 목적을 잘 정하고 길을 가야한다. 목적이 있는 그런 나그네이긴 하지만 ‘의식있는 나그네’와 ‘의식없는 나그네’로 구분할 수 있다.

똑같은 여행길이라도 의식있는 나그네는 목적지를 알고 갈 수 있지만 의식이 없는 나그네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고 방황을 하며 헤매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삶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는 인생은 실패하지만 삶의 목적이 분명하고 흔들리지 않는 인생은 반드시 성공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든 저마다의 삶에 목적이 있다. 다만 어떤 사고로서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인생이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 미국인들이 낸 세금 중 10분의 1을 세금으로 낸 석유왕 록펠러가 53세때 일이다. 사업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로 항상 우울한 삶을 살아왔는데 어느 날부터 입맛이 떨어지고 몸이 마르며 쇠약해져 그 원인을 알아보니 ‘알로피사’ 라는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됐다. 그것도 앞으로 6개월 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됐다.

이런 소리를 들은 보통 사람이라면 좌절감에 빠져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록펠러는 예상외로 덤덤한 심정으로 자신이 일평생 모은 전 재산을 처분하여 5000여 교회와 시카고대학을 비롯한 수많은 대학과 병원들, 구호단체를 설립하며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 여행길을 떠났다.

그런 록펠러가 가는 곳마다 그의 목을 끌어안고 베푼 호의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노숙자 부부, 시카고 대학의 강단에 들어서자 학생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 그가 세운 리버 사이드교회에서 그를 위한 중보기도팀의 가슴 저린 기도소리, 이런 풍경을 지켜보며 록펠러는 뒤늦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난 55년의 인생동안 한 번도 맛 본 적이 없는 행복한 감동을 경험하면서 자긍심과 감사함을 갖게 되었다.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이었던 록펠러는 그 시한이 훨씬 지났는데도 오히려 입맛이 돌아왔고 샘솟는 기쁨이 넘쳐나면서 의사의 진단과는 무관하게 98세까지 장수하며 건강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는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았고 의식 있는 나그네였다.

며칠 전 모 방송국에서 신 빈곤층에 대해 방송을 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실직을 당해 어려움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압류 당한 중고차 때문에 생보자로서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끼니조차 잇지 못한 채 차라리 노숙자 보다 못하다는 그들의 절규를 들으면서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역(逆)으로 얼마 전 모임이 생각난다. 저녁 회식 값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두 사람이 음식값을 서로 내겠다고 싸움 아닌 싸움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두 사람은 사회 봉사에는 아주 인색한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는 인색하면서도 남을 의식하고 생색을 낼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면 몇 십 만원도 기꺼이 쓰는 사람들이다.

물론 자신이 갖고 있는 돈을 자신이 쓰고 싶은데 쓴다는 데 남이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격세지감을 느끼며 가슴이 아파옴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필자의 경우도 오래 전 잠시 실직을 했을 때 압류된 승용차를 갖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보험료 10여만원을 납부 한 적이 있었다.

직장에서 몇 백만원의 수입이 있을 땐 불과 몇 만원이였는데 모순되게도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보험료로 지출하는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또 싯가 1백만원도 안되는 승용차를 폐기하고 싶어도 압류된 상태이니 어찌할 수가 없어 안타까워 한 적이 있었다.

“인생은 나그네 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을 가는 인생” 유행가 가사가 아니라도 우리 인생은 두 주먹 불끈쥐고 태어났다 죽을 때는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두 손을 쫙 펴고 간다. 모두는 이 같은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면서도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망각한 채 오직 세상 물욕에만 눈이 어두워 세상을 좇아가는 의식 없는 나그네가 되어 방황의 길을 가고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이란 나도 모르게 왔으며 세상에 던져진 존재”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이 세상을 살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두 갈래 길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넉넉히 가지고 있는 것’이며 또 하나는 ‘욕망을 줄이 것’ 이다. 나그네인 우리가 행복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원하는 만큼의 재물과 명예, 권력 등이 넉넉함에 있어서가 아니라 욕망을 줄였기 때문에 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정이 많은 민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하면 외면하지 않고 십시일반으로 나눔의 정을 베풀었다. 모두를 내려놓고 가는 인생, 온갖 장식으로 치장하고 탐욕으로 배를 채우던 육신마저도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인데 이제 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풍성한 추석이 다가왔다.

진정으로 행복을 경험하는 나그네는 이웃에게 아낌없이 베풀면서 그들의 환한 모습을 보며 참 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느끼는 사람이다. 추석 때만이라도 옛날의 정이 소록소록 피어나 우리 모두가 정말로 배가 부르고 웃음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아직은 둥근 보름 달이 되지 않았지만 그 하얀 달 속에서 가난했던 신의 아들, 두 벌 옷도 준비하지 않고 이슬 젖은 들녘에서 머리 둘 곳도 없는 남루한 인자의 모습을 찾아 본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나그네임을 감히 생각해보았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찬송가를 떠올리며 나직하게 불러보았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