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기고
안호원칼럼-마음을 비우면 모든 것을 얻는다
"마음을 비우면 모든 것을 얻는다."
2009년 09월 10일 (목) 09:23:52 안호원
배고플 때는 모든 음식이 다 맛있게 보인다. 그러나 배가 불러지면 그 어떤 음식을 갖다 주어도 거들떠보기 싫다. 밥상 위에 음식은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그 음식들이 일단 입으로 들어갔다 나올 때면 아무리 좋은 음식물일지라도 추하고 더러운 토사물이 되어 악취를 풍기게된다. 음식뿐만 아니라 사람의 경우도 그렇다.
사랑은 아름답다. 또 사랑이란 말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특히 재물은 요술쟁이처럼 무엇이든지 이루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랑과 재물을 잘못 활용하게 되면 사람을 추하게도 만들지만 불행해지기도 한다. 누군가가 먹은 음식물을 다시 토해내는 것을 보면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며칠 전 지역에 있는 문인들의 모임에 참석을 할 기회가 있어 참석을 했다. 아름다운 마음, 향기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그런 모임이 있는 날이면 난 언제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막상 모여 술잔을 돌리며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눈 후 헤어지는 시간이 되면서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미묘한 실망감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마음이 든 것은 지난 해 한 사람의 부질없는 욕심으로 인해 몇몇 낯익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또 이 모임이 두개로 갈라져 대립에 관계가 됐기 때문이다. 해맑은 물 같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글을 쓰는 문인들이 사람을 사랑할 줄도 모르고 회장이 되기 위해 이제까지 지켜온 관례를 무시한 채 다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고, 술을 사며 불법 선거를 하고, 그런 마음으로 무슨 아름답고 맑은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비록 아름다운 글을 쓴다 한들 생명이 없는 종이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 추태를 보면서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자처하는 국회의원들의 말솜씨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향응을 베풀고 상대를 비하하는 말을 하며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 행태까지 흡사하게 닮아 마음이 허탈해진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지역 기관의 최고 수장이라는 분이 “단체도 정치”라며 “과정은 어떠하든 선거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가 죽든 말든 수단 방법 가리지 말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사고를 가지신 분이라면 지난 선거가 어떤 식으로 치러졌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아울러 다음 선거에는 이런 분을 뽑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자로서 할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임의단체라지만 예산을 지원해주는 그 단체가 분열이 되고 문제가 제기되면 그 사실을 조사해야 함에도 불구, 부하직원의 말만 듣고 구민의 진정한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그 분은 지역단체장의 자격이 없다.
불교교리가 생각난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 재판을 받을 때 세상에서 남을 모함하고 거짓말을 하고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 혀를 먼저 뽑히는 형벌을 받는다는 으스스한 이야기다.
성경에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라는 글이 기록되어있다. 또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중 ‘사람을 죽이지 말라’ 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살생은 물론 비방, 모함, 중상모략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판을 받은 수천년 전 이미 하늘마저 원치 않는 내용이 바로 그런 것이리라.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맛있는 음식,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모두 토해내면서 그 악취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욕심이 지나쳐 탐욕이 되면 자신을 망치는 독이 된다는 것을 누구든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와 색욕(色慾)과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는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다. 삶의 목표가 명예와 소유에만 있다면 결국은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 자신은 천박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흔히 남을 흉보고 비난하며 깎아 내리면 자신이 더 훌륭하고 높임을 받을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색당파와 무수한 사화(士禍)들의 불행이 바로 이 같은 이간질, 비방, 모함, 중상모략 등으로 일어났음을 우리는 기억 할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밝음이 다가오는 새벽 시간 꼼꼼히 생각해본다. 과연 우리가 날마다 눈만 뜨면 죽자살자 얻으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결국은 좋은 음식 먹고 토해낸 구토물이 아니던가. 그렇게 토해낼 것이라면 아무리 좋은 음식을 계속해 먹어도 탈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구토물을 토해내면서도 여전히 음식에 욕심을 내고 꾸역꾸역 먹어대며 식탐을 버리지 못한다. 모두가 저 악취나는 구토물을 되새김질하고 있을 뿐이다. 탐욕에 의해 토해내는 구토물이 온 세상에 가득 차 있다. 그러니 이 세상이 악취가 진동하고 역겨울 수밖에 없지 않는가. 너 나 할 것없이 속세에서 허겁지겁 저 더러운 구토물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취하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니 온갖 다툼과 고통이 생기고 세상을 더럽게 만들고 있다.
자신을 수도승(首道僧:서울에 사는 승려)이라고 자처하는 원철 스님의 모토는 시산불이(市山不二 : 도시와 산중이 둘이 아니다)다. 고요한 물에 비친 달빛보다 흔들리는 물에 비친 달빛이 더 눈부시다. 달빛이 움직이는 물에 반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활과 수행, 일과 수행도 서로에게 비춰져야 한다. 불가에서는 둘을 병행한다는게 간화선의 선풍(禪豊)이란다.
한 국가가 남북으로 갈라져 이산 가족이 생긴 것도 가슴이 아픈데 한 사람의 그릇된 행동으로 문인회가 둘로 갈라져 많은 문인들이 큰 상처를 받게되어 마음이 아프다. ‘참된 나’(自我)를 찾는 구도(求道)의 목표는 같아도 참선 수행과 염불선등 수행의 방법과 삶이 달랐듯이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모습도 다 각기 다르다.
언젠가는 누구든 악취나는 이 세상에서 떠날 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두 손을 편 채 간다. 문인이기에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 그런 마음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생각과 의식으로 느끼고 판단하는 모든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시안을 가질 때이다.
탐욕으로 인해 벌어진 수많은 어리석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어리석음과 분노. 욕망의 마음을 잘 다스리며 포용하는 마음으로 내가 달라질 때 비로소 우리 문인은 생수 같이 맑은 글,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정서적인 갈증을 해소 시켜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참여하는 그 문인모임도 다시 옛날처럼 하나가 되어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활동을 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